“70대 하루키가 청년 하루키를 만나 세계관 완성”

이호재 기자 2023. 9. 5.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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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 6년만의 장편소설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은…
내일 출간 앞두고 예판만으로 1위
이현자 “단절의 시대속 교류 보여줘”… 김난주 “심리 묘사, 초기작 매력 담겨”
하루키 “벽이 무엇인지 그 의미 생각”
일본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74) 열풍이 다시 불까.

국내에 6일 출간되는 하루키의 새 장편소설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문학동네·홍은주 옮김·사진)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6년 만의 새 장편소설인 신간은 예약 판매만으로 온라인서점 예스24에서 8월 다섯째 주 종합 1위에 올랐다. 문학동네에 따르면 작가의 직전 장편소설 ‘기사단장 죽이기’(전 2권·문학동네·2017년) 1권보다 온라인서점 예약 판매량이 2, 3배로 늘었다.

‘기사단장 죽이기’ 출간 후에도 ‘오래되고 멋진 클래식 레코드’(문학동네·2022년), ‘일인칭 단수’(문학동네·2020년)가 나왔지만 각각 에세이와 소설집이었다.

● “70대 하루키, 청년 시절 자신 만나 세계관 완성”

신작은 30대 남자 주인공 ‘나’가 10대 시절에 글쓰기라는 취미를 공유했던 여자친구를 떠올린 뒤 ‘사방이 높은 벽에 둘러싸인, 아득히 먼 수수께끼의 도시’를 찾아가는 이야기다. 하루키가 1980년 문예지에 발표했지만 책으로 발간되지 않은 동명의 중편소설을 고쳐 쓴 작품이다. 앞서 하루키는 이 중편에 나온 ‘벽에 둘러싸인 마을’이라는 설정을 1985년 장편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전 2권·민음사)에 등장시킨 적이 있다.

이현자 문학동네 편집국장은 신작을 “70대의 하루키가 43년이라는 시간의 벽을 넘어 청년 하루키를 만나 자신의 세계관을 완성한 소설”이라고 했다. 이어 “하루키가 천착해온 상실과 재생이라는 주제를 다룬다”며 “작가는 특히 코로나19로 인한 사람들 간의 단절 속에서도 과거 세대와 현재 세대가 교류한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했다”고 말했다.

● “심리묘사 집중, 초기작 매력 담겨”

‘세계의 끝과…’를 포함해 하루키 작품을 다수 번역한 김난주 번역가는 신작에 하루키 초기작의 매력이 담겼다고 평가했다. 하루키는 1979년 중편소설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문학사상사)로 등단한 뒤 주로 개인의 내면을 섬세하게 그렸다. 이후 1995년 옴진리교의 도쿄 지하철역 사린가스 테러가 일어나자 1997년 논픽션 ‘언더그라운드’(전 2권·문학동네)를 펴내는 등 사회 문제에도 관심을 기울여왔다. 김 번역가는 “신간은 여자친구에 대한 ‘나’의 감정 등 심리 묘사에 집중한다”며 “작가가 아쉬웠던 숙제(책 출간)를 매듭짓고, 하고 싶었던 말을 마무리하려 한 것 같다”고 했다.

하루키는 후기에서 “나에게 이 작품은 줄곧 목에 걸린 생선 가시처럼 신경 쓰이는 존재였다”고 했다. 그는 올해 4월 신작이 일본에서 출간됐을 때 인터뷰에서 “벽이 무엇인지 그 의미를 생각하며 썼다”며 “(1980년 중편소설을 쓸 당시에 비해) 쓰고 싶은 것을 쓸 만큼 실력이 늘었고 다시 써야 할 때가 됐다”고 말했다.

신작이 ‘하루키 월드’의 집대성에 가깝다는 평가도 나온다. 2002년 장편 ‘해변의 카프카’(전 2권·문학사상사)처럼 소년이 주인공이고, 2009년 장편 ‘1Q84’(전 3권·문학동네)처럼 현실과 유사한 평행세계가 등장하는 등 그의 작품세계가 강하게 녹아 있다는 것. 신작을 미리 읽은 김겨울 작가는 “벽으로 둘러싸인 미지의 도시가 등장하고, 자신의 그림자를 버려야 그 도시로 넘어갈 수 있다는 설정은 하루키 독자라면 익숙할 것”이라고 했다.

신간은 일본에서 출간 2개월 만에 40만 부가 팔렸고, 일본 오리콘 차트가 집계한 올 상반기(1∼6월) 서적 판매 1위에 올랐다. “일본어 원서를 받자마자 밤새 읽었다”는 김 번역가는 “소설적 재미를 추구하지는 않았지만 작가의 긴 역사 속에서 충분히 읽을 만한 작품”이라고 말했다. 김 작가는 “서사적 측면을 중요시하는 독자는 지루할 것이고, 묘사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신작을 즐길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밝혔다. 표정훈 출판평론가는 “판매량과는 별개로 독자들이 신작의 문학적 성취 여부를 중요하게 평가할 것”이라고 했다.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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