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칼럼] ‘서울 이긴 버스요금’만 남을 수 있다
엑스포·신공항이 변명은 안돼
진창 길을 벗어나면 흙길도 꽃길처럼 느껴지는 ‘기저효과(基底效果)’는 경제에만 있는 게 아니다. 박형준 부산시장은 이를테면 전임자들의 기저효과를 누리는 사람이다. 그의 전전임인 서병수 시장 때는 시장 측근 비리로 9번이나 부산시 청사가 압수수색 당하고 정무특보와 경제특보가 구속됐다. 전임 오거돈 시장 때는 누가 시장인지 모를 정도로 정무라인 전횡에 시정이 흔들리다 시장이 성범죄를 저지르고 중도 사퇴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이 무너지고 일그러진 토대 위에 등장한 박 시장은 웬 만큼만 해도 성공한 시장이라 평가받을 조건은 갖췄다. 게다가 차분한 토론 능력에 태도마저 젠틀하니 변호사 출신 미남 정치인 서울시장과 비견될 만 하다. 그런데 거기까지다. 청와대 수석과 국회 사무총장을 거친 경력은 가려지고 교수 출신 단체장의 한계를 느낀다는 이들이 주변에 점점 늘어난다.
‘인천에도 밀렸다’던 부산이 최근 서울을 앞지르는 ‘이변’이 발생했다. 성인 기준 버스요금이 1550원(카드 기준)으로 350원이나 올라 서울(1500원)보다 50원 비싸진 것이다. 두 단계 인상을 거치는 도시철도 기본요금도 서울보다 50원 더 내게 됐다. 시내버스가 10년, 도시철도가 6년 간 요금을 동결해 누적적자가 7000억 원이 넘는다니 부산시 고충을 이해 못 할 바는 아니다. 급하게 내민 동백패스 환급제는 시민 부담을 줄이려는 고육책일 것이다. 그러나 이는 전국 어느 지자체든 안고 있는 난제다. 부산만의 문제가 아니다.
2007년 시내버스 준공영제 도입 당시 연 300억 원 수준이던 부산시 지원금은 15년 만에 3600억 원 이상으로 불어났다. 이쯤 되면 세금 먹는 하마가 따로 없다. 시민단체는 진작부터 “시내버스를 완전공영제로 바꾸든지, 터널이나 도로를 확충하는 자가용 위주 정책을 폐기하든지 하라”고 요구해왔다. 부산시가 대범하게(?) 툭 던진 최고 요금에서 이런 고민의 흔적을 누가 떠올릴 수 있겠는가. 인상 요인이 있으니까 올린다는 건 학자의 논리이지 시정의 선후경중(先後輕重)을 따지는 행정은 아니다. “서울을 이기자 이기자 하더니 드디어 이겼다, 버스요금으로”란 비아냥이 당연히 따른다.
박 시장은 2021년 4월 보궐선거로 당선됐다가 지난해 재선에 성공했다. 시장직 수행 3년차다. 4년 임기로 치면 절반 이상이 지나간 셈으로, 공약 한 두가지는 결실을 맺어야 할 시점이다. 그런데 ‘박형준표 사업’이란 게 선뜻 눈에 띄지 않는다. 도시를 15분 이동권으로 묶는다는 신개념 교통수단 ‘어반루프’, 조 단위 글로벌 투자 유치를 위한 ‘요즈마 펀드’, 세계적인 미술 콘텐츠 기업인 ‘소더비 부산’ 설립 등은 실체가 모호하거나 실패로 귀결됐다. 그 구상의 신선함과 다양함에 ‘정치인이나 관료 출신과는 다르다’며 품었던 기대는 어느새 실망과 냉소로 바뀌고 있다.
더 안타까운 건 부산 울산 경남이 돌연 특별연합(메가시티)을 폐기하고 부산 경남간 행정통합과 부울경 초광역경제동맹을 새로 추진하는 과정에서 부산시장의 리더십이 전혀 발휘되지 못했다는 점이다. 수도권 일극집중의 나라에서 국가 균형발전을 위한 부산의 비중과 부산시장의 존재감은 생각보다 훨씬 크다. 더구나 윤석열 정부는 역대 어느 정부보다 지방 살리기에 진심이라고 공언하는 상황이다. 박 시장은 경남지사와 울산시장이 약속이나 한 듯 기존 연합 논의를 뒤엎는데도 시종 끌려다니는 모습으로 비쳤다. 행정통합에 대한 부산 경남 주민 여론이 영 신통찮아 사실상 무산되는 분위기로 흐르자 그제서야 “처음부터 뭘 할지 명료하게 정리하지 못했다”고 실토했다.
지금 부산을 온통 뒤덮은 화두는 이론의 여지없이 2030세계박람회(엑스포)와 가덕신공항이다. 이때문에 시정의 크고 작은 성과가 묻히는 지점은 분명 있을 것이다. “부산시는 엑스포 때문인지 이렇게 중요한 문제에 별 관심이 없어 보여요.” 전기요금 차등부과 근거 입법에 매진하던 모 국회의원실에서 소극적인 부산시를 아쉬워하며 했던 말이다. 박 시장이 엑스포 부산 유치를 위해 누구보다 열심히 뛰는 건 인정한다. 그러나 냉정하게 말하면 엑스포 유치에 성공하더라도 그건 현 정부의 성과이고, 가덕신공항 역시 이전 정부의 공이 가장 크다. 만약 엑스포 유치에 실패한다면 시민 허탈감이 오히려 화살이 돼 날아올 수 있다.
박 시장이 가지는 기저효과는 그가 원해서 생긴 게 아니다. 정치적 운에 따라 주어졌을 뿐이다. 전임 시장들과 달라 보이는 그가 비교적 수월하게 시장이 될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지금 비교대상은 앞선 시장들이 아니다. 1년차, 2년차이던 박 시장 자신이고 다른 광역단체장들이다. 시민이 원하는 건 차곡차곡 쌓아가는 득점이지, 엉뚱한데서 서울을 이기는 황당함이 아닐 것이다.
강필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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