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72 경비정의 순직 승조원 유가족은 조국에 묻는다
경찰은 법의 집행과 범죄예방, 수사 및 대테러작전에 관한 임무 등을 수행하면서 자국 국민에 대하여 기본적인 인권을 보호해 주는 국가의 행정기관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1897년 대한제국 이후 근대적인 경찰제도가 도입되었다. 해양경찰은 1953년 12월 14일 내무부 치안국 경비과 소속으로 부산에서 ‘해양경찰대’라는 명칭을 통해 창설됐다. 해양경찰의 주 임무는 해상 경비와 안전, 대간첩작전, 대테러작전, 해상구조, 구난, 오염방제, 그리고 해상에서 발생하는 각종 범죄예방과 범죄수사 및 밀수, 밀항단속 등이다.
창설 당시 해양경찰대의 순찰용 경비정과 해상 장비들은 6·25 때 미 해군이 사용하던 소해정 등을 잉여(剩餘)를 통해 우리 해군에서 운용하다 물려받은 것이다. 해양경찰대에서 사용하던 연안 경비정과 함정 등은 수적으로나, 질적으로 삼면이 바다인 우리나라에서 매우 빈약하고 초라했다.
현재 우리나라 해양경찰은 5000t급의 대형 함정이 먼 대양까지 항해하여 해상작전을 펼칠 정도로 막강하게 발전했을 뿐만 아니라 특수정과 초계기(항공), 헬기 등을 보유하며 비약적으로 규모가 확대 개편됐다. 1년 예산 규모도 엄청나게 커져 우리 해양경찰은 질적으로나 규모 면에서 주변 국가에 결코 뒤지지 않을 정도로 변화됐다. 그 과정에서 침몰사고 등 안전사고가 발생한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최근 언론을 통해 보도된 안타까운 소식을 소개하자면 해양경찰 소속 72 경비정이 1980년 1월 23일 오전 5시 23분께 강원 고성군 거진항 부근 동해 해상에서 국민의 생명과 재산보호, 대간첩작전, 어로보호 등의 임무를 받고 해상순찰 중 예상하지 못한 안전사고로 침몰해 해양경찰 9명과 전투경찰 8명 등 승조원 17명이 순직했다.
이 사고로부터 43년이 지난 현재까지 속절없는 세월이 흘러갔지만, 아직도 사고 해상에서 72 경비정과 순직한 승조원 17명의 유해는 육상으로 인양되지 못하고 있다. 유가족들에게 마음의 고통과 상처만 남겨놓고 있는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는 침몰사고가 발생했을 때의 가난한 나라가 아니다. 더욱이 해상사고로 침몰한 선박을 구조·구난하기 위한 선박과 장비도 43년 전과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매우 우수하다. 72 경비정의 순직 승조원 유가족들은 이처럼 뛰어난 구조·구난 장비를 보유하고도 아직 차디찬 동해에 침몰돼 있는 경비정을 육상으로 인양을 하지 못하고, 계속해서 방치해 놓고 있는 상태에 대해 안타까운 심정을 떠나 국가와 해양경찰의 수뇌부를 향해 원망하고 있다.
필자는 해양경찰의 수뇌부가 인양작업에 대한 구체적인 불굴의 의지를 보여야 한다고 본다.
해양경찰의 수뇌부는 72 경비정의 침몰사고와 관련해 인양에 필요한 예산 타령만 할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인양에 관한 의지만 있다면 순직 해양경찰과 전투경찰 등 승조원 17명을 침몰사고 해저에 방치해 놓지 말아야 한다.
젊은 나이에 순직해 아직도 차디찬 동해 물속에서 편하게 잠들지 못한 영혼들을 깊이 생각해야 한다. 또한 생존 유가족들의 억울하고 안타까운 마음의 고통을 진정으로 헤아려야 한다.
거대한 해양경찰청 조직의 수뇌부가 진정 지도자라고 한다면 순직한 부하들을 아끼고 사랑해야 하며, 또한 부하들을 끝까지 보호해야 할 책무가 있다. 특히 다산 정약용이 집필한 ‘목민심서’의 ‘율기 6조 (律己六條)’를 꼭 살펴보기 바란다. 그러면 순직한 해양경찰 72 경비정 승조원들의 유가족들이 작금에 심히 겪고 있는 마음의 큰 고통들에 대해 조금이나마 진정으로 공감을 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해양경찰 72 경비정의 순직자 유가족들은 승조원들의 유해와 유품들을 육상으로 인양케 하는 임무와 행정기관의 책무와 관련해서 조국에 평생 희망사항으로 간청하면서 묻고 있다.
“국가와 국민을 위해 순직한 17명들의 영혼들을 언제쯤 그리운 조국의 땅에 묻어 주려고 하십니까”라고 말이다.
이제 국가는 유가족들이 겪고 있는 절박하고 간절한 심정의 피 끓는 호소에 대답을 해야 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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