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한국에 없는 소형機 맞춰 설계한 울릉공항, 또 재설계 추진
2025년 개항을 목표로 이미 30%가량 공사가 진행된 울릉공항이 또다시 설계 변경을 추진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한국에 한 대도 없는 50인승 소형 항공기에 맞춰 설계했지만, 항공시장 여건상 그보다 큰 항공기 투입이 필요해 활주로 등을 더 넓혀야 하는 것이다.
4일 본보 취재를 종합하면 국토교통부 등은 현재 80인까지 탑승이 가능한 ‘ATR 72’ 항공기와 ‘E190-E2’ 항공기의 울릉도 취항을 고려하고 있다. 하지만 현재 건설 중인 공항은 그보다 작은 ‘ATR 42’나 ‘DHC-8-300(Q300)’ 등 50인승 항공기가 이착륙할 수 있는 크기(2C급)다. 항공업계에서는 50인 이하 항공기는 경제성이 없어 현재 보유한 곳도, 도입을 계획 중인 곳도 없다. Q300은 심지어 2009년 단종됐다.
정부는 앞서 2013년 2C급 공항을 기준으로 예비타당성 조사를 진행했다. 이대로 공사를 끝낸다면 항공사들이 취항을 하지 않는 ‘유령 공항’이 될 가능성이 높다.
뒤늦게 사태를 파악한 정부는 80인승 항공기가 이착륙할 수 있는 공항 기준에 맞도록 활주로 양옆 안전구역(착륙대) 등을 확장하는 쪽으로 설계를 변경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총 사업비도 현재 6651억 원에서 최소 수십억 원, 많게는 수백억 원이 더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울릉공항 착륙대 폭 80→140→150m… 사업비 900억+α 추가
개항 2년 앞두고 설계변경 불가피
2010년 150m로 신청… 예타 퇴짜
사업비 줄이려 80m로 수정해 통과
안전 문제 제기되자 140m 되돌려
4일 항공업계에 따르면 항공기는 이륙하기 위한 최소 거리와 항공기 날개폭 등에 따라 등급이 나뉜다. 국토교통부가 현재 울릉공항 취항 가능성을 염두에 둔 프랑스 ATR의 ‘ATR 72’와 브라질 엠브라에르의 ‘E190-E2’ 항공기는 최소 이륙 거리가 1200m가 넘고, 날개폭이 24∼36m로 ‘3C’ 등급으로 분류된다. ‘공항·비행장 시설 및 이착륙장 설치 기준’에 따라 공항도 3C 등급에 맞게 건설돼야 한다.
울릉공항은 현재 1200m의 활주로 주변으로 착륙대(활주로 양옆에 설치된 안전구역)가 지어지고 있다. 활주로 양 끝에는 길이 60m의 착륙대가, 활주로를 따라서는 폭 140m 착륙대가 건설 중이다. 계획 중인 활주로 운영은 각종 항행 시설의 도움으로 이착륙을 할 수 있는 ‘계기활주로’(정밀 진입 비행)다.
그런데 3C 등급 공항이 되려면 계기활주로 기준 폭 280m 이상의 착륙대가 필요하다. 착륙대 끝엔 최소 90m 이상의 종단안전구역(240m 권고)도 설치해야 한다. 현재 울릉공항의 크기보다 착륙대의 폭과 길이가 모두 2배 이상 커져야 한다는 얘기다.
울릉공항은 특히 바다를 매립해 만들고 있다. 착륙대 폭과 활주로 끝단을 늘리려면 바다를 추가로 매립해야 할 수도 있다. 사업비 조정액이 일정 수준 이상으로 커질 경우 예비타당성 조사를 다시 받을 가능성도 있다.
문제는 시계비행 방식으로 변경할 경우 악천후나 안개, 야간 등에는 이착륙이 어려워질 수 있다는 것이다. 기계의 도움으로 정밀한 이착륙이 가능한 계기비행에 비해 시계비행은 상대적으로 안전도가 떨어진다는 평가가 나온다. 현재 국내에서 시계비행으로 운영되는 공항은 한 곳도 없다. 울릉공항 인근 한 주민은 “울릉도는 해무가 끼면 불이 났다고 착각할 정도로 앞이 안 보이는데 비행기를 사람 눈에 의지해 운항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라며 “설계를 지금 또 바꾸면 공사 기간이 더 늘어나는 건 아닌지도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울릉공항 설계 변경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10년 11월 울릉공항은 활주로 1200m와 착륙대 폭 150m로 예비타당성 조사를 받았는데 통과하지 못했다. 이후 사업비를 줄이려고 활주로 길이 1100m, 착륙대 폭은 80m로 수정한 채로 2013년 3월 예비타당성 조사를 통과했다. 안전성 문제가 불거지자 2015년 11월 고시된 공항 개발 기본계획에서는 활주로 길이가 다시 1200m로 되돌아갔다. 2019년 5월 총사업비도 5755억 원에서 6633억 원으로 878억 원 늘리면서 착륙대 폭도 140m로 복구됐다. 착륙대 폭을 150m로 다시 넓히면, 결국 최종 설계안은 예타를 통과하지 못한 2010년 당시와 거의 같아진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근시안적 공항 정책으로 계획이 계속 수정되는 ‘누더기 공항’이 됐다”며 “공항 안전과 효율성을 다시 따져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변종국 기자 bjk@donga.com
이원주 기자 takeoff@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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