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손'으로 끝난 정상회담…푸틴·에르도안 '브로맨스' 식었나
러, 에르도안 친서방 노선 강화후 정상회담에 '미온적' 반응 일관
흑해곡물협정 복원 불발에 흑해 교전 격화 우려…나토와 충돌 위험도
(이스탄불=연합뉴스) 조성흠 특파원 =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의 정상회담이 사실상 아무 성과 없이 끝나면서 돈독했던 두 정상의 관계에 금이 간 것 아니냐는 평가가 나온다.
4일(현지시간) 외신에 따르면 이날 열린 푸틴 대통령과 에르도안 대통령의 정상회담은 지난 7월 러시아가 파기를 선언한 흑해곡물협정의 복원 문제가 핵심 의제로 다뤄질 것으로 예상된 만큼 세계 식량 시장에 미칠 영향과 관련해 큰 주목을 받았다.
"에르도안, 푸틴 설득할 수 있는 유일한 인물" 기대감
서방에서는 전쟁 중에도 우크라이나 및 러시아 양국 모두와 우호적인 관계를 맺어온 튀르키예의 에르도안 대통령이 푸틴 대통령을 설득할 수 있을 것이라는 예상이 없지 않았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지난해 전쟁 발발 직후인 3월 양국 평화회담을 주선하는가 하면 이번 회담의 핵심 의제인 흑해곡물협정 체결에서도 유엔과 함께 핵심 중재자 역할을 했다.
이런 과정에서 에르도안 대통령은 서방과의 갈등을 불사하면서도 푸틴 대통령과 신뢰를 구축했고, 푸틴 대통령은 지난 5월 튀르키예 대선에서 에르도안 대통령을 공개 지지하는 등 '브로맨스'를 숨기지 않았다.
드미트로 쿨레바 우크라이나 외무장관은 "푸틴 대통령을 흑해곡물협정에 복귀시킬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이 에르도안 대통령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번 회담 장소인 러시아 남부 휴양도시 소치가 약 13개월 전인 지난해 8월 5일 양국 단독 정상회담에서 적잖은 결실을 보았던 곳이라는 기억도 기대를 갖게 만드는 부분이었다.
지난해 두 정상은 4시간여 동안 회담한 뒤 양국 경제 및 통상 관계를 새로운 단계로 격상하기로 합의했다. 튀르키예는 러시아산 가스 수입 대금의 루블화 결제를 시작하기로 했다.
이를 두고 서방의 제재를 우회하기 위해 튀르키예와의 경협 강화가 필요한 러시아나, 전쟁 후 세계적 에너지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러시아의 협조가 필요한 튀르키예 모두 '윈윈'한 결과라는 평가가 나왔다.
에르도안, 1년 만에 러시아 재방문에도 '빈손' 신세
에르도안 대통령이 러시아를 찾아 푸틴을 만나는 것 자체가 사전 협의가 잘 진행된 결과라는 관측도 나왔다. 그러나 이날 회담 결과 이 같은 희망들은 완전히 빗나간 것으로 드러났다.
에르도안 대통령이 흑해곡물협정과 관련해 새로운 제시안을 내놨지만 푸틴 대통령은 협정 내용이 완전히 이행되면 복귀할 수 있다는 기존 입장만 되풀이했다.
튀르키예에 가스 허브를 구축하는 방안에 대해서도 "조만간 협의가 이뤄질 것"이라는 모호한 언급만 했을 뿐이다.
다수의 기대를 저버린 회담 결과를 놓고 지난 7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정상회의를 전후해 에르도안 대통령이 친서방 노선으로 급선회한 것이 푸틴 대통령과의 관계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나토 정상회의를 앞두고 스웨덴의 나토 가입에 동의했을 뿐만 아니라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을 지지하는 발언을 하는 등 러시아와 서방 사이의 외교 노선에서 서방 쪽으로 급격히 무게중심을 옮기는 모습을 보였다.
이는 재선 이후에도 계속된 경제 위기를 타개하기 위한 지원을 얻고 F-16 전투기 구매라는 실속을 챙기기 위한 행보라는 분석이 나왔지만, 푸틴 대통령으로서는 에르도안 대통령에게 '배신감'을 느꼈을 가능성도 있다.
실제로 러시아는 지난 7월 에르도안 대통령이 푸틴 대통령이 튀르키예를 방문해 정상회담을 할 것이라고 밝힌 이후에도 "결정된 것이 없다"며 회담에 대해 분명한 입장을 내놓지 않고 차일피일 시간을 끌었다.
또한 푸틴 대통령은 자신이 튀르키예를 방문하는 대신 러시아를 회담 장소로 제시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결국 지난해에 이어 두 번 연속으로 러시아를 찾았으나 이번에는 빈손으로 돌아오게 됐다.
러 우크라 항만 공습 지속 예상…인접국 루마니아도 '긴장'
회담이 성과를 내지 못하면서 흑해를 둘러싼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교전도 계속해서 격화할 우려가 커졌다.
러시아는 지난달 흑해곡물협정을 파기한 후 우크라이나 남부 오데사 지역의 항만 일대를 연일 공습하면서 흑해를 재봉쇄했다.
공습 대상에는 우크라이나가 흑해의 대체 수송로로 사용해온 다뉴브강 일대 항만까지 포함됐다.
다뉴브강은 우크라이나 남부 지역과 나토 회원국인 루마니아의 국경선으로서, 러시아의 공습 과정에서 나토와의 직접 충돌 위험도 고조되고 있다.
러시아는 이날 회담을 앞두고도 다뉴브강의 우크라이나 이즈마일 항만을 공습했고, 이 과정에서 강 건너편 루마니아에 러시아 드론이 추락해 폭발했다는 우크라이나 측 주장이 제기됐다.
해당 주장이 사실일 경우 나토에 대한 도발로 간주될 수 있는 사안이지만, 루마니아가 이를 강하게 부인하자 우크라이나가 "증거가 있다"고 재반박하는 등 양국 간 때아닌 진실게임 양상까지 벌어졌다.
jos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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