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병로의 산야초 톡Ⅱ] 64. 여뀌 - 맵고 독한 성분 족대질 신명나게 해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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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위가 한풀 꺾였습니다.
맵고 독한 여뀌의 성분이 물고기를 마취시켜 아이들을 들뜨게 했습니다.
실제로 여뀌는 매운맛이 강한 식물이지만 15세기 중엽에 편찬된 요리서 '산가요록'은 "어린잎을 데치거나 삶아서 먹었다"며 쓰임이 다양한 식물로 소개합니다.
'모래밭에 떼거리로 서서' 한여름 더위와 맞짱 뜨던 아이들! 그 아이들의 '비밀 무기'였던 여뀌도 아스라이 잊히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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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위가 한풀 꺾였습니다. 하늘이 한 뼘씩 더 높아지고, 만 산은 차례로 옷을 갈아입습니다. 그러나 고요합니다. 나른한 한낮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들녘. 날이 저물 때까지 그림자의 크기만 달라질 뿐 움직임이 없지요. 그렇습니다. 굳이 ‘소멸의 시대’라 칭하지 않아도 소도시와 농촌지역은 인적이 끊긴 지 오래입니다. 우르르 떼로 몰려다니던 아이들은 어디로 갔을까요. 추수를 앞두고 막바지 더위를 물리치던 동네 천렵마저 사라진 지 오래입니다. 여름을 맛깔스럽게 반죽하던 족대질과 보쌈 놀이도 자취를 감췄습니다.
천렵이 실종된 시대! ‘여뀌’를 떠올립니다. 아이들에게 여름은 곧 천렵이었지요. 냇가에 무성하게 자라는 ‘여뀌’를 짓찧어 물웅덩이에 풀면 버들치 매자 미꾸라지 메기 등 물고기들이 비실비실 떠올랐습니다. 맵고 독한 여뀌의 성분이 물고기를 마취시켜 아이들을 들뜨게 했습니다. 이렇게 잡힌 물고기는 아이들의 허기진 배를 든든하게 채웠습니다. 영어로 ‘물후추(Water Pepper)’인 여뀌가 신나는 여름을 선사한 것이지요. 실제로 여뀌는 매운맛이 강한 식물이지만 15세기 중엽에 편찬된 요리서 ‘산가요록’은 “어린잎을 데치거나 삶아서 먹었다”며 쓰임이 다양한 식물로 소개합니다.
여뀌는 물가 어디서나 잘 자랐고, 예부터 다양한 요리 재료로 쓰였습니다. 생선의 비린내를 잡아주고, 즙을 내어 술을 빚으면 술맛이 변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국내 자생종은 30여 종으로 개여뀌, 이삭여뀌, 털여뀌, 가시여뀌, 물여뀌, 기생여뀌, 바보여뀌, 붉은 여뀌 등 다양하며 약재로서의 가치 또한 뛰어납니다. 학계에서는 항염, 항산화 효과를 입증했고, 민간에서는 혈압을 떨어뜨리거나 속을 편안하게 하기 위해 달여 마셨습니다. 한방에서는 혈액순환을 돕는 치료제로 처방합니다.
날 생각해주렴! 여뀌의 꽃말입니다. 소멸의 시대, 무언가를 떠올려 기억하는 건 가슴 아픈 일이지요. 이런 마음을 정병근 시인은 ‘여뀌’에 빗대어 읊었습니다. “다 필요 없어/제발 버려줘 잊어줘/우리끼리 잘도 자랄 테니깐/…/눈 밖에서 더 잘 크는 놈들/모가지에 벌겋게 독 오른 놈들/목젖 가득 차오는 폐단을 주체할 수 없어/아무나 잡고 맞짱 뜨자는 놈들/모래밭에 떼거리로 서서/온몸을 긁고 있었다”라고. 아이들이 사라지면서 어른들의 천렵은 빛을 잃었습니다. ‘모래밭에 떼거리로 서서’ 한여름 더위와 맞짱 뜨던 아이들! 그 아이들의 ‘비밀 무기’였던 여뀌도 아스라이 잊히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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