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승룡의 시선(詩線)] ① 얼굴과 얼굴이 만나 만든 실크로드
중앙아시아 대표 음식 라그만
실크로드 한반도까지 이어져
중국·한국으로 전해져 라면으로
카자흐스탄 마트 한국제품 즐비
다시 한국라면 중앙아시아로
옛 사람처럼 광활한 대륙 활용을
알타이 산맥에서 카스피해까지, 광활한 초원이 펼쳐진 땅 카자흐스탄에 왔다. 2004년 여름, 중국 13개 왕조의 도읍지였던 시안에서 중국 서부 카슈가르까지 실크로드 여행을 했다. 모든 걸 삼킬 듯한 모래폭풍이 부는 타클라마칸 사막을 건넜다. 멀리 톈산산맥과 나란히 끝없이 피어있는 해바라기 길을 지났다. 석양을 담은 밤기차를 탔다. 처음 실크로드 여행을 계획하고 출발할 때의 설렘은 시 읽는 마음이었다. 실크로드, 이름에서도 시가 묻어났다.
막고굴의 고장 둔황을 지나 서역으로 가면서 시 읽는 마음보다는 갯벌에 발이 빠지듯 고된 날이 늘어났다. 고온 건조한 날씨와 모래바람, 황량한 벌판을 지나 드문드문 마을이 나타났다. 마을과 마을은 점이었다. 마을과 마을을 길이 이어주었다. 길은 선이었다. 기원전 3000년 전부터 교역로와 교역로, 마을과 마을, 서로 다른 얼굴과 얼굴이 만나고 이어지면서 길이 됐다. 실크로드가 됐다. 시 읽는 마음, 점 잇는 선이 만나 시선(詩線)이 됐다.
카자흐스탄의 마트에 들렀다. 한국제품이 많다. 특히 라면. 한국 라면이 층층이 쌓여 있다. 식당에 들렀다. 중앙아시아의 대표 음식 라그만을 주문했다. 라그만은 내가 사는 강릉에서도 가끔 먹었다. 강릉역에서 옛 터미널로 지나가는 여관 골목이 이제는 중앙아시아에서 온 노동자들의 숙소로 바뀌었다. 중앙아시아에서 온 노동자들이 많아지면서 중앙아시아 할랄 식당이 하나둘 생기더니 강릉외국인노동자센터 부근에 다섯 곳이 있다. 중앙아시아의 빵인 난과 화덕만두인 삼사를 파는 빵집도 생겼다.
라그만은 양고기와 채소를 넣은 볶음국수로 중국에 전해져 라미엔(拉面)이 됐다. 라(拉)는 잡아당긴다, 미엔(面)은 명사로 밀가루란 뜻이다. 라미엔은 밀가루 반죽을 손으로 잡아당겨 만든 국수이다. 우리는 잡아당기는 동작보다는 바닥에 치는 동작에 주목해 수타면이라고 부른다. 라미엔(拉面)이 한국과 일본으로 전해져 라면이 됐다. 중앙아시아에서 밀가루가 전해졌기에 음식도 그렇게 전해졌을 거로 추측한다. 예전에는 중앙아시아에서 라그만이 전해졌지만, 이제는 라면이 중앙아시아로 전해져 이곳 마트에 한국 라면이 넘친다.
1973년 경주 계림로 유적에서 길이 36cm의 황금보검이 출토됐다. 많은 사람이 놀랐다. 1928년 카자흐스탄 보로보에에서 출토된 보검과 모양과 재질이 거의 같았기 때문이다. 실크로드학 대가인 정수일 박사는 실크로드는 중국과 로마를 넘어 한반도까지 이어졌다고 주장한다. 신라의 경주까지 이어졌음을 오래전부터 연구하면서 실크로드학의 기초를 수립했다.
정 박사는 신라 원성왕(재위 785~798년) 때 제작한 ‘무인상’이 전형적인 서역인 모습이고, 황성동 돌방무덤에서 나온 토용에도 서역인의 상이 있는 걸로 봐서 서역인들이 신라에 들어와 활동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도 설명한다. 신라 천마총의 천마도가 지금의 러시아나 몽골에서 자라는 자작나무에 그려진 것에서도 한반도가 북방의 초원로에 사는 흉노 등의 민족과도 활발하게 교류했음을 증명한다. 신라의 유리 제품은 4세기 팔레스타인 유리공예 제품과 같은 양식이라고 한다. 지금도 인도네시아의 동자바섬의 장인들이 신라의 유리 제품과 같은 제작 기술로 만들고 있다고 한다. 이 또한 한반도가 해양 실크로드를 통해 교류해 왔음을 보여준다.
중앙아시아의 라그만이 우리에게 ‘라면’으로 전해졌지만, 지금은 우리 라면이 중앙아시아로 전해지고 있다. 신실크로드가 펼쳐지고 있다. 하지만 다른 점은 예전에는 실크로드로 오갔지만 지금은 그러지 못하고 있다는 것.
우리 옛사람들은 지금 우리보다 훨씬 개방성이 넘쳤다. 유라시아 중앙로인 실크로드와 시베리아횡단열차가 다니는 북방 초원로를 ‘플랫폼’으로 활용했다. 그리하여 신라의 경주는 북방과 교류하고 서역과 통했다. 하지만 지금은 북으로 막혀 있고, 중국과 몽골, 러시아, 중앙아시아를 거쳐 유럽으로 가는 철의 실크로드를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 김유익 작가는 ‘차이나 리터러시’에서 “중국을 하나의 플랫폼으로 간주하고 잘 활용할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한다. ‘중국과 러시아를 플랫폼으로’, 상상만으로도 뭉클함이 광활한 대륙을 내달리는 듯하다.
옛날에는 중앙아시아 사람들이 서역인이라 불리며 신라 경주에 와서 우리 문화를 다채롭게 했다. 지금은 외국인 노동자, 이주노동자라는 이름으로 우리 경제를 풍요롭게 하고 있다. 이들을 따뜻한 시선(視線)으로 맞이하고 교류하는 마음이 서로의 문화를 풍요롭게 한다.
한반도가 유라시아의 시작점이자 종착점이라는 걸 머리만이 아니라 우리 삶에도 체화되기를, 시선(視線)이 시선(詩線)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기를 실크로드 여행 시작 카자흐스탄에서 기원한다.
◇최승룡= 중등사회교사, 강원도교육청 대변인, 교육과정과장, 강원도교육연수원장으로 일했다. 실크로드, 유라시아에 호기심이 많아 이곳을 안내하는 책, 여행을 좋아한다. 8월 중순~9월 말 중앙아시아 몇 나라를 여행하며 이곳의 지리와 문화, 우리와의 친연성을 6차례의 연재를 통해 강원도민일보에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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