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물결' 휩싸인 여의도…"존중받는 교육 환경 조성해달라"
전국 5만여 명 교사 여의도 집결
[더팩트ㅣ이장원·황지향 인턴기자] 습한 가을 무더위가 이어지던 4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사당 앞 대로에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 둘씩 모이기 시작했다. 이내 이들은 커다란 물결이 돼 인근 1.3km 도로를 검게 물들였다.
지난달 18일 서이초 교내에서 숨진 A씨를 추모하기 위해 전국에서 5만여 명의 교사가 여의도에 모였다. 검은색 옷을 입고, 검은색 마스크와 모자로 무장한 이들은 하나같이 숙연한 표정이었다. 일부 교사들은 북받쳐 오르는 감정을 이기지 못하고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A씨의 49재를 맞아 이날 국회의사당 앞에서 열린 '9·4 공교육 멈춤의 날'은 여타 추모·집회와는 다소 다른 모습이었다. A씨에게 헌화하려는 사람들 손에는 국화가 아닌 다양한 색깔의 카네이션이 들려 있었다. 더 이상 스승의 날에 카네이션을 받을 수 없게 된 A씨에 대한 애도와 존경의 차원이다.
고인의 동료 교사와 유족들은 A씨가 학부모들의 악성 민원에 힘들어 했다고 진술했다. 이날 집회에 참가한 교사들 중엔 A씨와 비슷한 경험을 한 이들이 있었다.
경기도에서 근무하던 초등교사 최모 씨는 한 학부모의 악성 민원으로 학교를 떠났다. 학부모 면담에서 "아이의 성장을 위해 학부모님이 조금만 더 챙겨주시면 좋을 것 같다"고 말한 것이 화근이었다. 이틀 뒤 학교 교장에게 전화를 건 학부모는 최씨의 해임을 요구했다. 최씨는 "학교에 제가 어떤 상황과 맥락 속에서 어떤 상담을 했는지 말씀드리려고 하니 교감 선생님이 '그건 내가 알 필요 없고'라고 하시더라. 그 말에 완전히 무너져 버렸다"고 말했다.
이후 우울증 진단을 받아 병가를 낸 최씨는 "저는 열정을 다했기 때문에 후회가 없다"며 "교직으로 돌아갈 마음은 전혀 없다"고 밝혔다.
이같은 상황은 고등학교에서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서울 노원구 모 고등학교에서 근무하는 8년차 교사 이모 씨는 "작년에 한 학생이 수업 중에 교실을 나가는 일이 있었다. 너무 각박하게 무단 결과로 처리하고 싶지 않아 그 학생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너 왜 그랬니'라고 물어봤는데, 그걸 학교 폭력이라고 하더라"고 말했다.
이씨는 "결과는 당연히 (학교 폭력이) 아닌 것으로 나왔지만 굉장히 회의감이 들었다"며 "선생님들이 보호받을 수 있는 공간이 너무 협소하다"고 털어놨다.
이날 집회에 참여한 교사들 중엔 아이들을 데리고 온 이들도 있었다. 이들은 학부모로서 아이들이 안전하고 좋은 환경에서 교육받기를 원하는 마음을 이해한다면서도 학교와 교사를 믿어달라고 호소했다.
초등학교 3학년 아들을 둔 박모(41) 씨는 인천의 모 초등학교에서 특수교사로 일하고 있다. 박씨는 "작고 사소한 일 하나하나 학부모님들이 염려하고 확인하고 계시는 게 교육 활동엔 굉장히 부담이 된다"며 "학교 안에서의 활동은 저희가 선생님으로서, 그리고 부모로서 잘 책임질 테니 의심의 눈이 아니라 지지와 신뢰의 눈길로 봐주시길 바란다"고 밝혔다.
교사들은 교권 회복을 위해선 아동학대 관련법들의 조속한 개정이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행 법제도상 아동 학대에 해당하는 '정서적 학대'의 규정이 지나치게 모호하다는 것이다. 최재영 충남교사노동조합 위원장은 "누구든지 걸면 다 걸린다"며 "경찰에서 무혐의 결정이 나더라도 거기까지의 과정이 되게 지난하다"고 지적했다.
인천의 모 고등학교에서 교감, 교장을 역임하고 2017년 퇴직한 박승남(68) 씨는 "사범대학이나 교육대학을 나왔다고 해서 바로 훌륭한 교사가 되는 것은 아니다"라면서 "적어도 10년이 넘어가야 교직관도 뚜렷해지는데, 그때까지 조금은 참고 기다리는 인내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교육부에 따르면 이날 재량휴업을 지정한 전국 초등학교는 총 38곳으로 집계됐다. 앞서 교육부는 재량휴업을 지정하거나 연가·병가를 쓰고 집회에 참여하는 학교 및 교사들에 대해 최대 파면 등의 강한 중징계를 내리겠다고 밝힌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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