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 사상 최악의 테러 ‘뮌헨 참사’…50년 만에 배상 합의 [그해 오늘]
이스라엘 선수단 인질로 잡고 자국 수감자 석방 요구
서독 정부와의 대치 과정서 인질 전원·경찰 1명 숨져
테러범 8명 중 5명 사망…3명은 두 달 뒤 본국으로 가
유족, 참사 50년 만에 독일정부로부터 400억원대 배상
[이데일리 이재은 기자] 1972년 9월 5일 새벽 독일 뮌헨 올림픽 선수촌에 무장 괴한이 들이닥쳤다.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 분파 조직인 ‘검은 9월단‘ 테러범들이 가방 안에 총기를 넣은 채 침입한 것이었다. 이들은 이스라엘 대표팀을 인질로 붙잡고 이스라엘에 수감된 팔레스타인 게릴라 등을 풀어달라고 요구했다.
이스라엘 측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서독 정부의 구출 작전이 실패하며 인질 모두가 숨지는 참담한 결말을 맞이했다. 올림픽 역사상 최악의 참사가 벌어진 순간이었다.
대회 폐막을 6일 앞두고 벌어진 이 참사는 검은 9월단 테러범 8명이 선수촌 건물에 잠입하며 시작됐다. 이들은 저항하는 이스라엘 역도 선수 1명과 레슬링 코치 1명을 살해한 뒤 육상, 펜싱 등 종목의 선수와 코치 9명을 인질로 잡았다. 테러범들은 이스라엘 정부를 향해 팔레스타인 게릴라 등 236명을 석방하지 않으면 인질들을 죽이겠다고 협박했다. 서독 당국은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움직였고 경기는 예정대로 진행됐다가 인질극 발생 7시간여 만에 중단됐다.
테러범들이 살아서 서독을 빠져나갈 수 있는 방법은 인질 협상에 성공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골다 메이어 당시 이스라엘 총리는 테러범 측 요구를 거부했고 개최국인 서독에 해당 사안을 해결할 책임이 있다고 판단했다. 이스라엘 측은 자국 군대를 투입하겠다고도 했지만 서독은 이를 거절하고 인질 협상을 진행했다.
서독 당국은 테러범과 협상해 이들을 이집트로 보내주겠다고 한 뒤 조직원 사살 및 인질 구출 작전을 개시했다. 테러범들이 서독 측에서 제공한 비행기에 탑승하면 승무원으로 위장한 경찰이 이들을 제압하는 방안도 거론됐지만 위험성 등을 이유로 진행되지 않았다. 당국은 테러범들이 비행기를 타려고 할 때 사살하는 계획을 실행했지만 인질 전원이 사망하며 실패로 돌아갔다.
이날 인질 9명과 서독 경찰 1명이 숨졌고 테러범 8명 중 5명은 현장에서 사살됐다. 탈출했던 테러범 3명은 곧 서독 당국에 의해 체포됐다. 상황 종료 후에는 당국이 테러범의 인원조차 파악하지 못했고 이들을 제압할 때 적절한 무기를 사용하지 않은 사실이 알려져 부실 대응에 대한 비판이 이어졌다. 선수촌 보안부터 테러범을 진압하기까지 사실상 제대로 된 대비책이 없었던 셈이다.
그러나 체포된 테러범 3명은 곧 풀려났다. 검은 9월단 관련자들이 독일 항공편을 납치해 테러범 3명의 석방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같은 해 10월 29일 서독에 구금된 테러범 3명을 풀어달라며 튀르키예 상공에서 루프트한자 항공기를 납치했다. 이에 서독 정부는 이들 3명을 교도소에서 빼낸 뒤 인질들과 교환했다.
이스라엘은 시리아와 레바논 등지의 PLO 캠프에 수차례 폭격을 가했고 자국 대외정보부인 모사드를 통해 검은 9월단에 보복했다. 모사드의 작전은 ‘신의 분노’라는 이름으로 20여년간 이어졌다. 이 과정에서 모사드 암살팀이 모로코 출신 청년을 검은 9월단 조직원으로 착각해 노르웨이에서 살해하는 일도 벌어졌다. 암살팀을 지휘했던 모사드 요원 마이크 하라리는 이 사건으로 1998년 노르웨이 검찰에 기소된 바 있다. 이 기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양국 간의 갈등은 계속됐다.
이스라엘 대표팀의 유족들은 사실 관계 등을 파악하기 위해 오랜 기간 목소리를 내야 했고 참사 발생 20년이 지나서야 독일 정부로부터 사건에 대한 보고서를 받게 됐다.
유족들은 2015년 미국 뉴욕타임즈(NYT)와의 인터뷰에서 1992년 독일 당국으로부터 받은 80장 분량의 경찰 보고서를 공개했다. 그전까지는 20시간가량의 대치 상황에서 테러범들이 어떻게 인질을 다뤘는지에 대해 알려지지 않은 상태였다. 이 보고서에는 테러범들이 인질의 신체를 산 채로 절단하는 등 잔혹했던 사건의 전모가 담겨 있었다. 수록된 사진은 그 참혹함을 고려해 기사에 넣지 못할 정도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숨진 이스라엘 선수단의 펜싱 코치 안드레 스피처의 부인은 보고서에 수록된 사진을 두고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끔찍했다“고 표현했다. 이어 “테러범들은 ‘누구도 죽이려 한 것이 아니고 동료를 이스라엘 감옥에서 석방하려는 것일 뿐’이라고 주장했으나 이는 거짓말”이라며 “그들은 사람을 죽이려고 범행했다”고 말했다.
유족들과 독일 정부 간 배상 합의는 뮌헨 올림픽 참사 50주기인 지난해에 이뤄졌다. 배상액은 2800만유로(약 4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프랑크-발터 슈타인마이어 독일 대통령은 같은 해 9월 5일 개최된 뮌헨 참사 50주기 추모식에서 유족을 향해 사과하기도 했다. 그는 “독일을 대표해 뮌헨 올림픽 당시 이스라엘 선수들에 대한 보호와 이후 진상규명이 부족했던 것에 대해 용서를 구한다”며 “적절한 배상을 합의하는 데 50년이 걸렸다. 그러나 지금에서야 구한 합의도 모든 상처를 봉합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했다.
마흐무드 압바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은 같은 해 8월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와의 회담 이후 검은 9월단 테러에 대한 사죄 여부에 즉답을 피했다. 그는 회담 이후 ‘검은 9월단 테러와 관련해 독일과 이스라엘에 사과할 계획이 있는가’라는 기자들의 질문에 “과거를 돌아보고 싶다면 해보자. 이스라엘은 1947년 이후 (팔레스타인을 상대로) 50건에 달하는 학살을 자행했다”고 답했다.
뮌헨 올림픽 참사는 프랑스, 영국, 미국 등이 대테러 전담 부대를 꾸리고 올림픽 개최국이 대회에 대한 안전 비용을 늘리는 계기가 됐다. 다만 당시 테러범의 인질극이 생중계된 것을 두고 테러리스트 단체가 증가한 것과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도 나왔다. 테러범들이 인질극을 벌이며 자신들의 요구 사항을 일부 실현한 것이 전 세계로 방송된 탓이었다.
이재은 (jaeeun@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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