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한규섭]‘언론 피해자’ 구제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

한규섭 객원논설위원·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2023. 9. 4. 2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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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규섭 객원논설위원·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언론 피해자.’ 10여 년 전만 해도 낯선 단어였으나 이제는 누구나 친숙하다. 억울한 사람들을 대변해야 할 언론이 오히려 억울한 피해자를 양산해 내는 기관으로 인식된다. 정치인, 정부 각료 등 공인뿐 아니라 연예인이나 사회적 명망가, 일반인까지 피해자층도 다양하다. 기업들은 기사를 무기로 광고나 협찬을 요구하는 소위 ‘유사 언론’들의 ‘협박’에 몸살을 앓고 벤처기업들은 언론의 일방적 의혹 제기로 주가가 반토막 나기도 한다.

2017년부터 2023년 5월까지 언론중재위원회(언중위)에 접수된 조정신청이 무려 2164개 언론사, 2만3367건에 달했다. 매년 평균 3600여 건, 즉 하루에 거의 10건씩 조정신청이 언중위에 접수된 셈이다.

이들 조정신청이 대부분 자기 변명에 불과할까. 2만3367건의 조정신청 중 실제로 ‘조정’ 결정이 내려진 사례가 무려 7096건에 달했다. 전체 신청 중 3분의 1 정도지만 여전히 엄청난 수다. 특히 이 기간은 소위 ‘적폐 청산’의 광풍이 불던 시기여서 ‘언론 자유’와 ‘공익’이라는 미명하에 언중위가 ‘조정’ 결정에 미온적이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고려하면 더 그렇다.

조정신청이라도 할 수 있었다면 그나마 비교적 자기 방어력을 가진 편에 속한다. 피해를 당하고도 보복이 두렵거나 언론사를 상대로 싸울 엄두가 나지 않아 조정신청 자체를 포기한 잠재적 피해자가 더 많을지 모른다.

문화체육관광부 등록 기준 ‘1만 언론사 시대’다 보니 일부 ‘사이비 언론사’의 문제라고 생각할 독자도 있을 것이다. 실상은 달랐다. 조정신청 및 ‘조정’ 결정을 가장 많이 받은 언론사들은 대부분 유력 언론사들이었다.

우선 충격적이게도 2017년부터 2023년 5월까지 가장 많은 조정신청을 받은 1∼20위 언론사 가운데 1·2위는 준공영 방송인 MBC(407건)와 자회사인 iMBC(388건)였다. 매주 3건 수준이다. 공영방송인 인터넷 KBS도 267건으로 7위, KBS 1TV는 232건으로 12위에 올랐다. 이 중 MBC는 106건(3위), iMBC는 99건(5위)에 대해 ‘조정’ 결정이 내려졌고 인터넷 KBS 92건(6위), KBS 1TV 91건(7위)에 대해서도 ‘조정’ 결정이 내려졌다.

이념적 선명성 경쟁이 가장 문제다. 조정신청 건수로 보면 MBC와 iMBC에 이어 조선닷컴(351건)이 3위에 올랐고 조선일보도 14위(221건)에 올랐다. 마찬가지로 손석희 사장 영입 후 진보 방송으로 정체성 변화를 꾀한 jtbc가 11위(235건)에 올랐다. ‘조정’ 결정 빈도로 보면 조선닷컴(133건), SBS(110건), MBC(106건), 조선일보(105건), iMBC(99건), 인터넷 KBS(92건), KBS 1TV(91건), 뉴스1과 인터넷 한겨레(이상 79건), jtbc(76건) 등이 1∼10위를 차지했다. 모두 이념적 색채가 강한 언론사로 분류될 수 있는 곳들이다.

유력 언론들의 인터넷판 자회사들이 상위권에 대거 포진한 점도 흥미롭다. 조정신청 건수를 기준으로 상위 20위에 포진한 iMBC(388건·2위), 조선닷컴(351건·3위), 인터넷 KBS(267건·7위), 인터넷 YTN(226건·13위), 인터넷 국민일보(209건·15위), 인터넷 한겨레(194건·17위), 인터넷 중앙일보(187건·19위), 인터넷 경향신문(185건·20위) 등이 모두 유력 언론사의 인터넷판이었다. ‘조정’ 결정 기준으로도 상위 20위 중 절반가량이 유력 언론사의 인터넷판이었다. 유력 언론들이 인터넷판을 클릭 전쟁의 ‘용병’으로 활용하는 것 아닌지 의심스럽다.

언중위 조정신청 및 ‘조정’ 결정 현황을 보면 우리 언론의 현실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언론사들은 이념적 선명성 경쟁에 나서고 중립을 유지해야 할 공영·준공영 방송이 오히려 이 싸움의 선봉에 서는 기이한 현상이 벌어진다. 클릭 전쟁이 치열하다 보니 유력 언론사들은 인터넷판을 만들어 더 “센” 기사 만들기에 몰두한다. 언중위의 ‘조정’ 결정이나 명예훼손 소송의 수백만 원 벌금형은 전혀 억지 효과가 없다. 일부 강성 언론에서는 법원의 명예훼손 판결을 오히려 ‘훈장’으로 여기는 분위기마저 있다고 한다. ‘언론 피해자’ 구제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절실하다.

한규섭 객원논설위원·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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