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의 DNA’ 등 근거 없는 치료 좇다간 정상 발달 기회 놓쳐[의학카페]
그런데 신경발달장애는 매우 광범위해서, 어려서 잠깐 말이 늦었다가 말이 트이는, 소위 말이 늦은 아이(발달성 언어장애)부터 지적장애나 자폐스펙트럼장애와 같이 발달의 여러 영역에 걸친 지연을 보이는 질환까지 모두 포함한다. 또 언어, 운동, 인지, 사회성 발달의 지연은 없으면서 자기도 모르게 몸을 움직이거나 소리를 내게 되는 틱장애나 주의력 결핍, 과잉 행동, 충동성 등의 증상을 보이는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도 모두 뇌 발달의 문제로 생기는 질환이기 때문에 신경발달장애에 속한다.
이렇게 신경발달장애는 종류도 다양하고 같은 질환이라고 해도 아이마다 임상 양상도 다르다. 질병의 종류나 치료, 경과와 예후도 다르다. 그렇지만 처음 진단을 받을 때 부모의 마음이 무너지는 것은 모두 같다. 내 아이가 정상적인 발달을 하는 아이가 아닌 것 같은 상실감, 혹시 부모가 뭔가를 잘못해서 신경발달장애가 생긴 것은 아닌가 하는 죄책감, 앞으로 아이가 독립적인 생활을 하는 어른으로 성장할 수 있을까 하는 불안과 걱정 같은 감정들이 부모의 마음을 무겁게 한다. 그래서 혹시 진단이 잘못된 것은 아닌가 고민해 보기도 하고, 다른 병원을 찾아서 한 번 더 진단을 확인해 보게 된다. 검사를 여러 번 반복하는 분들도 있다.
치료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틱장애는 치료가 필요 없는 병이지만, 아이가 눈을 깜박이고 얼굴을 찡그리는 모습을 보면 혹시 학교에서 놀림이라도 당하지 않을지 걱정이 되고, 뭐라도 해서 틱 증상을 없애고 싶은 마음이 든다. ADHD는 약물 치료의 효과가 좋은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뇌에 작용하는 약이라고 하니 괜히 불안하고 부작용이 걱정된다.
지적장애나 자폐스펙트럼장애로 아이가 진단을 받게 되면 부모의 불안과 부담은 더욱 커진다. 학교에 입학하기 전 어린 나이에 집중적인 치료와 특수교육이 필요한데, 치료비가 한 달에 수백만 원까지로 굉장히 많이 들고, 그나마 잘한다고 알려진 치료기관은 몇 달씩 대기해야 한다. 자폐스펙트럼장애의 치료로 가장 효과가 좋은 것은 응용행동분석(ABA)인데, ABA 치료기관이 아예 없는 시군구도 많다. 발달 문제와 더불어 과잉 행동, 감정 기복, 공격성, 자해 등의 행동 문제가 동반된 경우에는 부모가 겪어야 하는 어려움이 다시 몇 배로 늘어난다.
그래서인지 부모들 가운데는 효과가 입증되지 않은 치료법에 빠져들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최근에 ADHD 아이에 대해서 ‘왕의 DNA를 가졌다’며 약물 치료 없이 완치한다는 연구소도 의학적 근거는 없이 부모의 불안과 부담감을 악용한 것이다. ADHD를 약 없이 치료한다거나, 자폐스펙트럼장애나 지적장애를 단기간에 완치시킨다는 치료 가운데는 이렇게 의학적 근거가 없는 치료가 많다.
의학적 근거가 없는 치료들이 보호자들을 유혹하는 것은 외국도 마찬가지여서 외국의 발달장애 보호자 단체나 치료기관의 안내자료를 보면 효과가 증명되지 않은 치료가 어떤 것인지에 대한 내용이 항상 들어 있다. 미국소아과학회의 자폐스펙트럼장애에 대한 가이드라인에서도 어떤 치료는 효과가 없고 아이들에게 해로울 수 있는지 명백하게 밝힌다.
이런 의학적 근거가 없는 치료들은 그 자체가 아이들의 발달과 정신건강에 해로울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도 효과가 입증된 치료를 통해 아이들이 정상 발달에 가까워질 기회를 놓치게 한다는 점에서 위험하다. 발달장애가 있는 아이들의 경우 아이들의 진단과 영역별 발달 수준, 동반된 행동 문제 등에 대해 정확히 평가하고, 우리 아이에게 맞는 의학적으로 효과가 입증된 치료를 시행하는 것이 중요하다.
더불어 발달장애가 있는 아이들도 우리 사회의 건강한 일원으로 잘 자랄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사회 전체의 노력이 필요하다. 발달장애 아이들을 위한 치료 및 교육기관이 확충되어야 하며, 서울시교육청에서 시행하는 행동중재특별지원단과 같은 제도를 확대하여 발달장애 아이들이 교실에서 일반 아동 및 교사와 함께 생활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가야 한다. 발달장애가 있는 아이를 키우는 부모를 위한 안내 및 인식 개선과 더불어, 발달이 느리거나 조금 다른 아이들도 차별받지 않고 받아들여지는 사회 분위기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김효원 서울아산병원 소아청소년정신건강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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