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계 ‘단비’ 기업 메세나… “후원 규모·영역 확대 절실”

이강은 2023. 9. 4. 2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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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 키워나가는 예술 인재들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우승 김태한
고3 시절 받은 신한음악상 덕 ‘톡톡’
“다양한 특전 통해 기량 발전” 밝혀
코로나 이후 지원금 다시 회복 추세
“장르 간 균형 발전 고려한 모델 필요”
#지난 5월25∼28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2023 조형아트서울(PLAN).’ 국내외 90여개 갤러리가 참여한 전시장의 중앙에 한성자동차 갤러리가 눈길을 끌었다. 중고생들이 미디어아티스트 양민하 서울시립대 교수와 협업해 만든 작품 ‘꿈의 물결’이 대형 스크린에 띄워졌기 때문이다. 학생들이 ‘10년 후의 나에게 가장 소중한 것’을 글로 입력하면 그 이미지가 구현되는데 이를 모두 모아 대형 스크린에 표현한 작품이다. 미디어 아트와 인공지능(AI) 드로잉 기법을 활용했다. 갤러리 한쪽에는 학생 40명이 각자 AI 드로잉으로 제작한 이미지에 영상 변환 기술을 적용한 작품을 볼 수 있는 아이패드도 전시돼 관람객 발길을 붙들었다.
현대차 정몽구재단 후원으로 지난 5월 열린 제9회 계촌클래식축제 '별빛 콘서트' 모습. 비가 내리는데도 전국 각지에서 많은 관객이 클래식 공연을 즐기고 있다. 현대차 정몽구재단 제공
이 전시에 참여했던 김민성(17)군은 “인공지능을 처음 접할 때는 우리(인간)를 대체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컸는데 이번 작업에서 인공지능이 예술가들의 창작을 돕는 기술적 도구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며 “예술을 표현하는 방식도 다양하다는 것을 알게 돼 앞으로 새 도구를 사용하는 데 자신감이 생겼다”고 전했다.

김군 등 참가 학생들은 메르세데스-벤츠 공식 딜러업체 한성자동차의 미술영재 장학사업인 ‘드림그림’ 프로그램 장학생이다. 2012년 생긴 이 프로그램은 선발된 중고생들이 고교 졸업 때까지 안정적으로 미술에 전념하면서 재능을 가꿀 수 있도록 지원한다. 지금까지 참여한 장학생과 이들을 지도한 예술가를 합치면 280명에 달한다.

올 초 졸업한 드림그림 11기 대표 임다솔(19)양은 “다양한 분야의 아티스트 멘토링 수업은 막막했던 저에게 삶의 길잡이가 됐다”며 드림그림 프로그램에 고마움을 표시했다.
이처럼 기업의 ‘메세나(문화예술 분야 후원)’에 대한 적극적인 관심과 활동은 예술 꿈나무와 인재를 키우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지난 6월 세계적인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에서 우승한 바리톤 김태한(23)도 고3이던 2018년 성악 부문에서 받은 ‘신한음악상’ 덕을 톡톡히 봤다. 2009년 신한은행 직원들의 기부금으로 시작된 신한음악상은 만 19세 이하 순수 국내파 클래식 유망주를 발굴하고 지원하는 게 목적이다. 수상자에게는 △매년 400만원씩 4년간 장학금 1600만원 △해외 유명 연주자에게 가르침을 받는 마스터클래스 △세종체임버홀 정기연주 기회 등 다양한 혜택을 준다. 김태한은 “신한음악상이 지원하는 다양한 특전을 통해 연주자로서 기량을 발전시킬 수 있었다”고 전했다.
기업 메세나는 척박한 문화예술계에도 단비 같은 존재다. 상업성과 거리가 먼 연극·미술·음악·무용·국악·문학 등 기초(순수) 문화예술 분야는 형편이 열악해 어려움을 겪는 예술인이 많기 때문이다. 정부가 기초예술분야를 지원하지만 예산이 크게 부족한 데다 지원 대상도 제한적이다. 다행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움츠러들었던 국내 기업의 메세나 규모는 빠르게 회복 중이다.
4일 한국메세나협회의 ‘2022년 기업의 문화예술 지원 현황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기업의 문화예술 지원 총액은 2073억 4400만원으로, 코로나19 발생 직전인 2019년의 99.6% 수준에 근접했다. 국내 매출액 기준 500대 기업과 기업 출연 문화재단 등 722개사를 대상으로 이뤄진 이번 조사에서 지원 총액은 전년 대비 15.8%(약 283억원) 증가했다. 지원기업 수(566개)와 지원 건수(1318건)도 각각 14.8%, 25.4% 늘었다. 다만 지난해 지원 총액 중 인프라(공연장·복합문화공간·미술관 등) 분야가 57.1%(약 1185억원)나 차지하고, 미술·전시와 클래식 음악, 비주류·다원예술 외에 나머지 분야 지원 규모가 준 것은 아쉬운 대목이다. 예술인과 예술 단체에 직접적 도움이 되는 지원 규모가 상대적으로 작고 이마저도 특정 장르에 쏠리는 양상이어서다. 이에 예술인과 단체가 보다 안정적으로 창작·공연 활동을 하고 많은 시민이 양질의 문화예술을 쉽게 향유할 수 있는 방향으로 기업들이 문화예술 후원 규모와 영역을 확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예컨대 한화그룹이 2000년부터 후원해온 예술의전당 ‘교향악축제’는 메세나 모범 사례로 꼽힌다. 예술의전당 관계자는 “한화그룹의 지속적인 후원 확대로 전국의 여러 교향악단과 연주자들이 교향악축제에 참가하면서 기량이 향상되고, 관객들은 부담 없이 다양한 클래식 공연을 즐길 수 있게 됐다”며 “국내 클래식 저변 확대에 기여한 바가 크다”고 평가했다. 현대차 정몽구재단이 ‘예술마을 프로젝트’로 강원 평창 계촌리에서 2015년부터 시작한 ‘계촌클래식축제’도 지역을 대표하는 축제로 자리 잡았다.

이와 관련, 한국메세나협회는 “문화예술 인프라 못지않게 소프트웨어의 중요성이 부각되는 시대인 만큼 문화예술 장르 간 균형 발전을 고려한 선도적인 메세나 모델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고 기업들에 당부했다.

이강은 선임기자 kele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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