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에서는 선생님 하지 마세요”…‘공교육 멈춤의 날’ 일렁이는 추모 물결 [사사건건]
“선생님 하늘나라 가서 푹 쉬고 행복하세요. 저는 선생님 말 잘 들을게요. 1학년 학생 올림.”
이날 오전 11시쯤 추모공간 벽면은 초등학생들이 삐뚤빼뚤 남긴 글씨부터 변화를 다짐하는 동료 교사들의 편지까지 수백장의 쪽지로 빼곡했다. 분홍색 머리띠를 하고 추모 공간을 서성이던 한 학생은 고인을 기리는 마음들이 날아갈 새라 쪽지들의 접착면을 차례로 꾹꾹 누르고서야 자리를 떠났다.
오후 3시부터는 고인을 기리는 추모식이 서이초 강당에서 열렸다. 유족, 교직원, 교육청 관계자 등 150명이 참석해 고인의 생전 모습이 담긴 영상을 보며 편지를 낭독했다. 한 동료 교사는 “친구 하나 만들기 어려운 이 세상에서 너를 동기로 만나서 감사하고 행복하다”며 “다시 만날 날을 기다리며 그곳에서만큼은 행복하길 기도한다”고 눈물을 쏟아내 참석자들을 숙연케 했다.
또 한 명의 교사가 세상을 등진 서울 양천구 A초등학교 정문 앞에도 오전부터 추모 발길이 이어졌다. 정문 앞 300여m 남짓한 길 양옆으로 근조 화환이 겹겹이 놓였지만, 화환을 실은 트럭 행렬은 그칠 줄 몰랐다. 가족과 함께 왔다는 시민 정모(47)씨는 “돌아가신 선생님과 함께 근무한 적 있어 아내가 특히 남 일처럼 느끼지 못하고 힘들어한다”며 “사람들이 화를 표출할 데가 없는데 아무것도 못 하는 교사들에게 쏟아내도 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울분을 토해냈다.
A초등학교 교정에 마련된 추모 공간에는 동료 교사와 학생, 학부모와 주민들이 붙인 쪽지들이 가득했다. 서울 동료 교사라고 밝힌 한 추모객은 쪽지에 ‘그곳에서는 선생님 하지 마세요’라고 적었다. A초등학교에 다니는 한 학생은 ‘○반 친구들이 선생님 좋아하고 기다렸어요. 저도 기다렸는데 돌아가셨다고 해서 너무 슬펐어요. 계속 눈물이 날 것 같아요’라고 쪽지에 썼다.
이들은 성명서에서 “수많은 교사가 민원과 고소의 위협으로 무너져 갈 때 교육부는 어디에 있었느냐”며 ‘교육부는 징계 협박을 당장 철회하고 본분에 맞게 교사들을 보호하라“고 촉구했다. 이어 ‘다시는 어떤 교사도 홀로 죽음을 택하지 않도록 우리가 지키고 바꾸겠다’며 ‘대한민국 교사의 이름으로 오늘을 공교육 정상화 시작의 날로 선포한다’고 밝혔다.
이날 서울 영등포구 국회 앞을 비롯해 전국 각지에서도 고인을 기리는 새하얀 국화꽃 물결이 일렁였다. 주최 측에 따르면 서울을 제외한 지역에서도 7만여명(경찰 추산 1만4000여명)이 모여 추모에 동참했다고 밝혔다. 울산시 한 초등학교 교사 박모(25)씨는 “교육부의 징계 발표 이후 부장 선생님은 소신껏 행동하되 교사 본인이 피해를 보지 않도록 주의하라 당부하고 있다”며 “그러나 진상규명과 교권보호 합의안 의결 등 뚜렷한 변화가 느껴지지 않아 집회에 함께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전국 곳곳에서 집회의 열기가 고조되는 와중에 국회 앞 집회 현장에선 숨진 서이초 교사의 어머니가 쓴 편지가 대독됐다. 편지에 따르면 유족은 “네 빈자리를 받아들이는 것조차 힘들지만 그럼에도 진실을 찾는 데 노력하겠다”며 “그것만이 전국의 선생님들이 너에게 보내준 추모 화환에 보답하는 길이고 교사들의 사기 진작을 위한 희망의 불씨이자 작은 위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뜨거운 아스팔트의 열기 속에도 교사들은 연달아 구호를 외치며 서로의 손을 맞잡았다.
김나현·윤준호·이민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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