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 가득 메운 외침 “바라는 건 단 하나, 제대로 된 수업”
“선배로서 미안” “남일 같지 않다” “아동학대법 개정이 1순위”
자발적 질서 유지 속 차분한 추모…큰 충돌·잡음 없이 마무리
서울 서초구의 한 초등학교 교사가 숨진 지 49일째 되는 날인 4일, 전국 교사들이 여의도 국회의사당과 각 지역 교육청 앞으로 모여들었다. 교육부는 집단행동에 참여한 이들을 징계할 수 있다며 압박했으나 교사들은 추모집회를 예정대로 진행했다. 지난 7월 서초구의 한 초등교사가 교내에서 숨진 데 이어 최근 교사 3명이 연달아 극단적 선택을 했다는 소식까지 전해지면서 추모제에 예상보다 더 많은 인원이 몰렸다.
4일 오후 4시30분부터 6시까지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국회의사당역 인근에서는 ‘한마음으로 함께하는 모두’라는 구호를 내건 교사들이 서초구 한 초등교사의 49재 추모집회를 열었다. 주최 측은 국회 앞 추모제에 5만명가량 모였으며 전국 교육청 앞에 모인 이들까지 합하면 12만명으로 추산된다고 밝혔다. 교사들은 국회의사당역 2번 출구에서 여의도 공원까지 400m 가까운 거리를 가득 메웠다. 교사들은 이날을 ‘공교육 멈춤의 날’로 명명하고 “아동학대법 개정” 등을 강력히 요구했다.
거리에 나온 교사들은 지난 7월 숨진 서초구 초등교사를 눈물로 추모했다. 무대에 카네이션을 놓던 28년차 초등교사 조지영씨(54)는 “선생님이 살아계셨다면 앞으로 받았을 카네이션이라고 생각하니 눈물이 난다”며 울먹였다. 7세 아들과 함께 집회에 온 20년차 경기도 초등교사 A씨도 “지난해 보충학습 도중 학부모가 갑자기 문을 벌컥 열고 소리를 지른 이후 우울증 약을 복용하고 있다”면서 “교사들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남 일 같지 않게 느껴졌다”고 했다.
현장에서는 숨진 교사의 어머니가 보내는 편지가 주최 측을 통해 전해지기도 했다. 고인의 어머니는 “네가 너무 많은 기쁨과 든든함을 주었기에 하늘에서 일찍 데려가시나보다. 네 빈자리를 받아들이는 것조차 힘들지만 떠나야만 했던 너의 한을 꼭 풀어주고 싶다”고 했다.
선배 교사들은 고인에 대한 부채감도 드러냈다. 학교가 재량휴업을 해 집회에 왔다는 서울의 한 초등교사 박모씨(56)는 “나이 많은 우리들이 너무 참기만 해서 이런 일이 일어난 것만 같다”면서 “이제 막 교직에 들어와 레드카펫 위를 걸어야 할 후배가 누더기 같은 길을 걷다가 넘어진 것 같아 미안하다”고 말했다.
교사들은 악성 민원과 무고성 아동학대 신고에 대한 실질적인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경기도의 한 중학교에서 일한다는 박모씨(46)는 “바라는 것은 딱 하나, 제대로 수업을 하고 싶은 것뿐”이라며 “문제 행동을 하는 학생을 제재할 방법이 없으니 교사로서 아이들을 제대로 교육할 수가 없다”고 했다. 강원도의 한 초등학교에서 일하는 최모씨(25)는 “마음에 안 들면 아동학대로 신고하겠다, 직위해제하겠다는 무고성 고발이 넘친다”면서 “아동학대법 개정이 1순위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다수의 교사들은 연가·병가를 내는 방식으로 집회에 참여했다. 전국 초등학교 30여곳은 학교장이 임시휴업을 결정하기도 했다. 의정부의 한 중학교에서 일하는 장모씨(51)는 “교육부 징계 방침 때문에 집회 참여가 아닌 다른 사유를 써서 연가를 냈다”면서 “교장 선생님이 두 번이나 전화를 해서 어떤 이유인지 확인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박씨도 “정당한 권리로 병가를 썼기 때문에 승인이 됐는지 안 됐는지 확인하지도 않았다”면서 “나중에 무단결근 처리할지도 모르지만 두렵지 않다”고 했다.
이날 집회에는 앞서 주말마다 진행된 7번의 집회와 달리 일반 시민의 발길도 이어졌다. 충남 태안에서 서울까지 왔다는 이성우씨(30)는 “교사인 친구가 아이들을 관리하는 것을 많이 어려워하는 것 같아서 함께 왔다”면서 “교사들의 인권이 제대로 보호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경기 평택의 한 병설 유치원에서 일한다는 박모씨(30)는 “유치원과 어린이집에서 학부모의 악성 민원이 시작된다”면서 “유치원도 돌봄만 제공하는 게 아니라 교육이 이뤄지는 곳이라는 것을 말하고 싶어서 나왔다”고 했다.
추모제는 별다른 충돌이나 잡음 없이 질서정연하게 진행됐다. 교사들은 자발적으로 질서유지 요원으로 참여하거나 현장에서 추모용 국화꽃을 나눠주는 데 동참하기도 했다. 현장 인원을 통제하던 전모씨는 “교사들은 최대한 규칙을 지키려고 하는 사람들이지 않나”라면서 “법과 원칙을 지켜야 한다는 말을 스스로 많이 하기 때문에 집회 역시 질서를 잘 지키며 진행하는 것 같다”고 했다.
강은·전지현 기자 ee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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