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현진만 나오면 수비 집단 히스테리… MLB에서 오직 류현진만 경험한 불운이 있다
[스포티비뉴스=김태우 기자] 팔꿈치인대재건수술(토미존 서저리)을 마치고 메이저리그 무대에 돌아온 류현진(36‧토론토)은 말 그대로 자신의 ‘클래스’를 증명하고 있다. 요즘 시대에는 느리다 못해 너무 느린 80마일대 후반의 패스트볼을 가지고도 승승장구 중이다.
구속에 의존하지 않는 류현진 특유의 장점이 빛을 발하고 있다. 최고 90마일 초반에 형성되는 포심패스트볼, 80마일대의 커터와 싱커, 70마일대의 체인지업, 60마일대의 커브를 자유자재로 던진다. 그냥 던질 수 있는 수준이 아니라 원하는 곳에 언제든지 던질 수 있다. 포심을 던졌던 곳에, 그 다음에 체인지업이 똑같은 위치에 떨어지니 타자로서는 환장할 노릇이다. 방망이가 나가는 순간, 류현진의 노련함에 지는 경우가 많다.
복귀 후 6경기를 치른 류현진의 피안타율은 0.213에 불과하다. 원래부터 4사구가 많은 선수가 아니니 1.03의 빼어난 이닝당출루허용수(WHIP)는 자연히 따라온다. 세부적으로도 긍정적인 지표가 많다. 류현진의 올 시즌 평균 타구 속도는 시속 86.9마일(139.9㎞)에 불과하다. 이는 류현진 최전성기로 기억되는 2019년의 86.6마일과 큰 차이가 없다. 점점 더 타구가 강해지는 시대에, 류현진은 효율적인 투구로 미친 듯한 힘을 찍어 누르고 있는 것이다.
복귀전이자, 마운드에서의 감각이 완전하지 않았을 2일 볼티모어전에서 5이닝 4실점을 기록한 뒤로는 승승장구다. 류현진은 이후 5경기에서 24이닝을 던지며 3승 평균자책점 1.50의 빼어난 피칭을 선보이고 있다. 아직 6이닝 소화는 없지만 이닝당 투구 수는 15.41개로 효율적이다. 아직 100% 컨디션이 아닌 류현진을 아끼려는 벤치의 전략적인 속셈도 읽힌다. 지금의 투구 내용이라면, 이닝은 자연스럽게 불어날 것이라 예상하는 게 합리적이다.
류현진의 최근 5경기 투구 내용은 올해 메이저리그에서도 그렇게 많지 않았던 수준의 클래스였다. 2023년 기준으로 5경기 구간에서 24이닝 이상을 던지며 자책점이 4점 이하였던 사례는 총 61차례(한 선수의 복수 사례 포함)밖에 없었다. 이뤄낸 투수의 숫자만 따지면 이보다 더 줄어든다. 류현진도 당당하게 이 리스트에 포함되어 있다. 그런데 하나의 이상한 수치가 읽힌다. 실점과 자책점의 차이가 가장 큰 선수다.
류현진은 이 기간 자책점이 4점이었지만, 실점은 9점이었다. 61번의 사례에서 실점과 자책점이 5점 이상 차이 나는 유일한 사례가 바로 지난 류현진의 5경기였다. 즉, 동료들의 실책이 잦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실책만 조금 더 줄이면, 류현진의 투구 결과는 더 좋아졌을 수도 있었다.
8월 14일 시카고 컵스와 홈경기부터 실책 퍼레이드가 시작됐다. 1회 1사 1루에서 햅의 평범한 1루 땅볼 때 1루수 벨트가 이를 잡지 못하며 1,2루가 됐다. 류현진이 2사 후 스완슨에게 적시 2타점 2루타를 맞아 2실점했다. 벨트의 실책이 없었다면 실점은 없었을 것이기에 모두 비자책점 처리됐다.
8월 21일 신시내티와 원정 경기에서는 1사 1,3루에서 마르테의 얕은 좌익수 뜬공 때 이를 커트해 주자를 견제하려던 채프먼의 송구가 빗나가며 두 명의 주자가 한꺼번에 홈을 밟았다. 역시 송구 실책이 없었다면, 그냥 가만히만 있었다면 없었을 실점이기에 비자책점 처리됐다.
8월 27일 클리블랜드전에서도 6회 무사 1루에서 라미레스와 곤살레스의 타구가 내야에서 연이은 실책으로 이어지며 무사 만루가 됐다. 차분하게 아웃카운트 하나씩만 처리했다면 잘해봐야 2사 3루였고, 두 번째 투수 가르시아가 히메네스를 삼진 처리하는 순간 실점 없이 이닝이 끝날 판이었다. 역시 비자책점으로 처리됐다.
타선 지원은 박하지 않다. 그러나 유독 류현진의 등판 때마다 수비 지원이 안 된다. 토론토 수비진이 원래부터 형편 없는 수비진이었다고 하면 이는 류현진이 받아들여야 할 숙명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또 그렇지 않다. 채프먼은 리그 최고의 3루 수비수고, 나머지 내야수들도 평균은 하는 수비수들이다. 케빈 키어마이어와 달튼 바쇼가 버티는 외야는 단연 리그 최강의 수비진이다. 그런데도 류현진만 등판하면 집단 난조다.
비자책점은 평균자책점 계산에는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그러나 실점은 남고, 대체선수대비 승리기여도(WAR) 등 일부 계산에 악영향을 준다. 무엇보다 자책점만 가지고 승패를 가리는 게 아니기 때문에 류현진은 물론 팀 패배로 이어질 수 있다. 그래서 꼭 류현진을 위해서가 아닌, 실책은 줄이면 줄일수록 좋다.
앞으로 일정이 만만치 않은 토론토이기에 더 그렇다. 치열한 아메리칸리그 와일드카드 레이스를 진행 중인 토론토는 4일 현재 4위를 달리고 있다. 3위 휴스턴과 경기차는 1.5경기다. 매 경기가 살얼음판이다. 5일부터 오클랜드, 캔자스시티라는 리그 최약체들과 6연전을 벌이는 데 최대한 많이 이겨야 한다. 류현진은 7일 오전 4시37분부터 열리는 오클랜드와 시리즈 3연전 마지막 경기에 등판한다.
그 다음부터는 텍사스, 보스턴, 뉴욕 양키스, 탬파베이라는 만만치 않은 팀들이 줄줄이 대기한다. 5할 미만 승률 팀은 양키스가 유일한데, 그 양키스마저도 4일 현재 68승69패(.496)로 5할에 근접한 팀이다. 5할 미만 팀이라고 해도 양키스를 무시할 수 있는 팀은 없다. 류현진과 수비수들의 조화, 나아가 마운드와 수비수들의 조화가 반드시 필요한 토론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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