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칼럼] 부모님, 그래도 뒷돈은 안 됩니다

김세훈 기자 2023. 9. 4. 2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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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는 요즘 축구선수 스카우트 관련 뒷돈 거래를 취재하며 기사를 쓰고 있다. 고교·대학 지도자와 에이전트가 학부모로부터 돈을 받아 선수 영입을 전제로 프로구단 지도자, 프로구단 고위층에게 검은돈을 건넨다는 게 골자다. 검찰은 현재 안산 프로축구단 뒷돈 거래를 조사 중이며 에이전트와 프로 감독 등을 기소했다. 그런데 서울중앙지검이 하는 수사치고는 범위와 결과, 파급력이 영 신통치 않다. ‘태산명동서일필’이 수사 결과여서는 안 된다.

김세훈 스포츠부 부장

기자는 몇몇 선수 부모들로부터 제보를 받았다. 부모로서 자식 앞길을 열어준 지도자에게, 잘못된 일인 줄 알면서도 돈을 줄 수밖에 없었다는 증언이 다수다. 그런데 지도자는 거액을 요구했고 부모도 거부하지 못했다. 졸업 후 실업자가 될 수도 있는 자녀에게 좋은 직장을 마련해주겠다는 제안은 달콤한 유혹이었다. 동시에 프로구단으로부터 거액의 계약금을 받을 테니 돈 걱정은 하지 말라는 감독의 꾐에도 솔깃했다. 그렇게 부모들은 앞으로 받을 계약금 중 상당액을 감독에게 미리 건넸고 그 돈은 프로구단 지도자와 고위층에게 들어갔다. 프로구단은 계약금을 주고 해당 선수를 영입함으로써 ‘보답’했다.

이런 검은 거래에 ‘흔쾌히’ 가담하려는 부모는 많지 않다. 부모들은 고민을 거듭했다. 잘못된 것인 줄 알면서도 검은손을 잡았고 결국 뇌물 공여자가 됐다. 부모들은 자식이 프로구단에 들어가도 불이익을 받지 않을까 계속 숨을 죽인다. 돈을 준 대가가 주어지지 않아도 따질 수도, 싸울 수도 없다.

자식을 위해서라면 뭐든지 해주고 싶은 게 부모 마음이다. 그래도 검은돈을 건넨 건 분명히 잘못된 행동이다. 돈도, 힘도 없는 다른 선수로부터 기회를 빼앗는 짓이다. 동시에 검은 거래가 근절되지 않고 독버섯처럼 번지는 데도 결과적으로 한몫했다. 어떤 부모는 “뒷돈을 줘야 할지 말지 오래 고민했다. 액수가 적었다면 응했을 것”이라고 했다. 어떤 부모는 “부모가 뒷돈을 건넸고 자식이 많은 계약금을 받고 좋은 구단에 가는 걸 보면, 내가 혹시 잘못한 게 아닌지 되돌아보기도 한다”고 털어놓았다.

뒷돈을 준 부모들은 대부분 철저하게 함구한다. 자신이 잘못한 걸 알기 때문이기도 하고, 지금 현역으로 뛰고 있는 자식에게 어떤 식으로든 피해가 갈 수도 있다는 걱정 때문이기도 하다. 어차피 주고받는 거래였고 목적을 달성했기에 입을 열지 않는 부모도 있다. 반대로 돈을 건네고도 대가를 받지 못한 부모들은 뇌물수수를 폭로하겠다며 뒤늦게 감독에게 환불을 요구한다. 뒷돈 의혹이 사실로 드러나는 과정에서 목소리를 내는 건 돈을 주고도 목적을 이루지 못했거나 뒷돈을 아예 주지 않은 부모들이다.

학생 선수를 둔 부모들에게 부탁한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게 부모 마음이라 해도 뒷돈은 안 된다. 검은 거래는 사라져야 하고 스카우트판은 정화돼야 한다. 자식 잘되길 바라는 부모 마음을 이용해 사리사욕을 채우는 지도자와 에이전트, 그 돈을 받은 뒤 공금으로 ‘답례’하는 프로구단 지도자와 구단 고위층에게도 경고한다. 당신들은 축구판을 더럽히는 장본인이며 어떤 식으로든 벌을 받게 될 것이다. 부당한 이익보다 사회 정의를 중시해달라는 요구는 정녕 헛된 것일까.

김세훈 스포츠부 부장 sh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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