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설] 학교를 끝까지 함께 다니고 싶다

기자 2023. 9. 4. 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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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시절의 기억. 어느날부터 ‘바나나 우유’를 학교에서 볼 수 없게 됐다. 그저 뚱뚱하고 키가 작다는 이유만으로 발달장애인 초등학생인 그의 이름은 바나나 우유로 정해졌다. 당시 선생님들조차 나머지 학생들이 발달장애인인 그를 바나나 우유라고 놀리는데 혼내지 않았다. 그는 이름이 있었지만 없는 존재와도 같았다.

변재원 작가·소수자정책연구자

그러던 어느 밤에 잠이 들었다가 영원히 잠들었다는 사연을 끝으로 그의 책상이 비워졌다. 그가 세상을 떠나고 나서 죽음의 이유를 되묻는 약간의 웅성거림이 있었지만, 이름 없던 그는 한순간에 잊혀졌다.

중·고등학교 시절의 기억. 집게가 학교를 졸업했고, 절뚝이는 학교를 그만뒀다. 내가 다니던 학교에는 두 명의 지체장애인 학생이 있었다. 내 친구는 집게였고, 나는 절뚝이였다. 목발을 짚지 않던 시절 내가 발을 꺾으며 걷는 모습을 보았던 친구 누군가 나를 절뚝이라 부르면서 그게 한동안 내 별명이 되었다.

반면, 내 친구는 양다리가 움직이긴 하지만 어설프게 걷는 장애인이어서 나보다는 비교적 덜 모욕적인 집게라는 별명을 가질 수 있었다. 나의 절뚝거림은 엘리베이터 없는 학교를 좇지 못했고, 사춘기 또래 남자 친구들 사이에서 어울리지 못해 학업 레이스를 끝내 완주하지 못했다. 나중에 듣자하니, 걸음이 느린 집게는 책상에 앉아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는 재주 덕에 조용히 학교를 졸업해 어느 전문대학에 진학해서 기계 고치는 기술을 배우게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처럼 수많은 중증 장애학생들은 지금 이 시간에도 학교에 있지만 남과 다른 생김새로 기억될 뿐, 마치 이름 없는 이들과도 같다. 선생님조차 장애학생에게 더 많은 관심을 보내야 한다는 직업적 책임감을 느끼면서도 학교 자원은 턱없이 부족하고 주어진 과업은 너무도 많아 이들의 학내 적응은 나중 숙제로 미뤄지고 만다.

그래서일까. 학교에서 장애학생에게 귀하게 베풀 수 있는 친절의 모든 양식은 ‘열외’로 발음된다. 체육 열외, 소풍 열외, 수행평가 열외. 열외, 열외, 열외. 열외는 사랑의 이름 아래 반복되기에 장애 당사자는 무조건 감내해야만 한다.

최근 장애학생의 교육권에 관한 모든 고민이 공간 분리를 최종 해결책처럼 여겨지는 추세다.

체육 시간을 따라올 수 없으면 특수학교로, 정규 시간 외 학습을 따라올 수 없으면 특수학교로, 친구와 어울릴 수 없으면 특수학교로, 학교 측에 별도의 도움을 요청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특수학교로. 학내 열외를 떠나 학교 밖 분리로 언급되는 특수학교의 용도는 진정 장애학생의 별도 교육 환경을 고려한 교육기관이 아닌, 당장 비장애인에게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격리시키는 ‘노장애인존’을 합리화하는 목적으로 오용되고 있다.

열외와 분리로 갈음되는 해결책은 친구들과 학교를 끝까지 다니고 싶다는 열망의 대안이 될 수 없다.

학교에 이름 없이 앉아 있는 장애학생조차 비장애학생과 학교를 끝까지 함께 다니고 싶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고민해야 할 특수교육 정책의 방향은 포용과 통합의 조치이지, 열외와 분리 처치가 아니다.

변재원 작가·소수자정책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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