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래군의 인권과 삶] 오송 참사와 ‘단 두 평의 분향소’
오송 궁평2지하차도 참사가 발생한 지 지난 9월1일로 49일째, 그날 참사 현장에서는 오후 5시부터 ‘49재 위령제’가 열렸다. 충청북도 부지사도, 세월호 참사·이태원 참사 유가족들도 함께한 위령제에서 오송 참사 유가족들은 단 두 평이라도 분향소를 유지해달라고 충북도와 청주시에 호소했다.
위령제를 마치고 청주시 도시재생지원센터 1층에 있던 분향소로 돌아가려던 유가족과 시민대책위 관계자들이 들은 소식은 분향소가 철거되었다는 것. 충북도와 청주시는 그날 위령제가 끝나길 기다렸다는 듯이 오후 8시40분부터 철거를 시작해 9시20분에 완료했다. 충북도나 청주시는 분향소를 49재까지 운영하기로 했고, 49재가 끝났으니 철거가 당연하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위령제에 참석해 오열하는 유가족들을 보았을 텐데도 ‘엄정하게’ 행정력을 집행한 것이다.
저런 행정력이 왜 참사 당일에는 없었을까? 만약 단호하게 위험을 인지하고 선제적으로 대처했다면, 아니 차량의 지하차도 진입만이라도 막았다면, 최소한 인명피해는 없었을 것이 아닌가? 있어야 할 때와 장소에서는 보이지 않은 행정력이 가족을 잃고 오열하는 유가족이나 피해자들 앞에서는 그처럼 단호하게 엄정한 집행으로 나타났다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
‘극한호우’로 인해 미호강이 범람하던 그 시간에 충북도지사는 괴산에 있는 자신의 땅을 둘러보러 갔다는 의혹을 샀고, 오송의 상황을 보고받고도 자신이 간다고 달라질 게 뭐 있냐면서 책임을 회피했다. 이런 태도는 이미 대통령이 보였던 태도다. 대통령은 다른 참사 지역은 둘러보고도 굳이 오송 참사 현장은 방문하지 않고, 외면했다.
윤 정부의 참사를 대하는 다른 모습
윤석열 정부에서 예전과 다른, 참사를 대하는 광경을 보게 된다. 그래도 이전 정부까지는 참사가 발생하면 합동분향소를 만들었고, 유가족이나 피해자들의 요구를 듣고, 협상을 진행한 뒤 합동장례식을 치렀다. 세월호 참사 이후 정부 합동분향소는 4주기 때까지 유지됐다. 체육관에서라도 유가족이나 피해자들이 모여 지내도록 지원하기도 했다. 그런데 10·29 이태원 참사에서도, 이번 7·15 오송 지하차도 참사에서도 예전 정부가 행했던 최소한의 모습조차도 보이지 않는다.
지난 4월에는 정부 관계부처 합동으로 ‘국가 안전시스템 개편 종합대책’을 마련했다. 이태원 참사 뒤에 만들어진 ‘범정부 국가 안전시스템 개편 TF’의 결과였다. “지구온난화·기상이변으로 태풍, 집중호우, 가뭄, 폭염 등 재난이 과거 경험을 뛰어넘는 수준으로 강해지고, 일상화된 형태로 반복” 등이 문제임을 진단했다. 그에 따라 새로운 위험 예측 및 상시 대비체계 강화, 현장에서 작동하는 재난안전관리 체계 전환 등 5개 추진전략을 마련했다. 관점, 방식, 행동(실천)의 대전환을 통해 ‘모두의 일상이 안전한 대한민국’을 만들겠다는 비전을 발표했다. 그래서 세부과제로 65개 분야를 선정했고, 상시적인 점검을 해가기로 했다.
그런데 이런 비전과 전략과 과제들은 새롭지 않다. 예전에도 참사 이후에는 안전시스템 점검이 있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실천이 따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윤석열 정부가 종합대책을 실천할 것으로 보이지 않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두 평의 분향소도 허용하지 않으려는 완강한 권력 행사의 모습에서 무슨 비전과 전략이 실현되기를 바랄까? 참사 50일이 지난 지금까지 책임자들에 대한 수사는 깜깜이고, 오송참사시민대책위가 주장하는 ‘중대시민재해’로 “재해 예방과 대응에 미흡했던 지방정부에 책임을” 물으려는 적극성조차 찾을 길이 없다.
‘생명안전기본법’이 절실한 이유
제 사람 감싸기에 급급한 조사와 수사로는 반복되는 재난 참사를 막을 수 없다. 원인 규명을 제대로 하지 않고는 재발방지 대책은 모두 공허한 염불일 뿐이다. 그래서 ‘생명안전기본법’ 제정을 요구한다. 참사 피해자들에게는 어떤 권리가 있으며, 국가와 지방정부의 책무는 무엇인지 분명히 해야 한다. 독립적이고 전문적인 조사기구를 꾸려 원인을 규명하고 재발방지 대책도 마련해야 한다. 생명안전기본법은 법과 제도, 정책을 시행할 때 안전을 후퇴시키지 못하도록 안전영향평가제도를 도입하는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이런 법안이 3년째 국회에 발의된 채 논의조차 안 되고 있다. 생명안전기본법 제정을 위한 국민동의 청원이 진행 중인 지금, 시민들이 나설 때 국회는 더 이상 외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생명안전을 지키기 위한 시민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바란다.
박래군 인권재단 사람 이사, 4·16재단 상임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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