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더는 분필을 쥘 수 없습니다”…‘공교육 멈춘 날’ 거리로 나온 교사들

변문우 기자·이승주 인턴기자 2023. 9. 4.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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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앞 4만 인파 집결…서이초 교사 49재에 ‘카네이션 1000송이’ 헌화
집단행동 막으려는 교육부에 분노도…“교사 보호하는 대표 기관 맞나”

(시사저널=변문우 기자·이승주 인턴기자)

숨진 서울 서초구 서이초등학교 교사 49재인 4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 약 4만여 명의 교사들이 모여 추모집회를 하고 있다. ⓒ시사저널 이종현

"하늘로 간 동료교사들이 외롭지 않게 연차를 쓰고 왔습니다."

"현장을 이해하지 못하는 교육부에 더는 참을 수 없었습니다."

4일, 서울 서초구 서이초등학교의 20대 A교사가 극단적 선택을 한지 49일이 지났다. 하지만 교육 현장에서 달라진 부분은 없었다. 오히려 최근 사나흘 사이 다른 교사들(서울 양천구·전북 군산시·경기 용인시 등)마저 세상과 등졌다. 이에 전국의 교사들은 분노가 임계점에 달했다며 이날을 '공교육 멈춤의 날'로 지정, 추모색인 '블랙 드레스코드'로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 집결해 이같이 외쳤다.

이날 오후 지하철 9호선 국회의사당역 3번 출구 인근엔 교사와 학생들이 집회 시작 한 시간 전부터 삼삼오오 모여들었다. 경찰과 집회 주최 측에 따르면, 이날은 평일임에도 6시 기준 약 4만여 명의 인원이 집회에 참여했다. 현장엔 영유아·장애인·임산부 배려존이 갖춰져 있었고, 집회자들도 봉사자들의 안내에 따라 질서를 지키는 분위기였다.

집회 현장의 바리케이트와 나무 등 곳곳엔 "안전하고 존중받는 교육환경 조성하라", "공교육 정상화! 그날까지 함께하자"는 등의 현수막이 걸려있었다. 집회자들은 "(교사들을 죽음에 이르게 한 원인) 진상규명이 추모다", "교권보호 합의안을 지금 당장 의결하라"는 문구가 적힌 팸플릿을 손에 꼭 쥐고 있었다. 주최 측은 정부에 실질적 대책을 강구하는 입장을 표명한 문구라고 설명했다.

이날 현장엔 자녀를 비롯한 가족들을 데리고 온 교사들도 많았다. 초등학생 아들과 함께 온 경기도 초등학교 교사 김아무개씨는 "연차를 쓰고 왔다"며 "그 과정에서 학교의 압박도 있었다. 떳떳하게 오고 싶었는데 아쉬웠다"고 토로했다. 이어 "우리 아이는 학생 학습권 침해도 없었고 운이 좋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싶었다"라며 "엄마가 교사니까 이런 일에 행동으로 나서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전했다.

숨진 서울 서초구 서이초등학교 교사 49재인 4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 약 4만여 명의 교사들이 모여 추모집회를 하고 있다. ⓒ시사저널 이종현

"연가 낸 선생님들 징계하면 다시 힘 보탤 것"

이날 집회는 교사들이 서이초 A교사를 추모하며 '카네이션 1000송이'를 헌화하는 것으로 시작됐다. 너무 젊은 나이에 생을 달리한 만큼, 더 많은 제자들을 보고 가지 못한 아쉬움을 달래려는 취지에서다. 일부 헌화자들은 헌화 후 묵념하는 과정에서 흐르는 눈물을 손수건으로 닦기도 했다. 한 남성 헌화자는 땅바닥에 주저앉아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집회가 본격 시작되자, 집회자들은 "무너진 교실의 모습이 교사들의 죽음으로 드러났다"며 교육당국을 강하게 질타했다. 이들은 악성 민원과 무고성 아동학대 신고에 대한 실질적인 대책을 촉구해왔지만 달라진 게 없다는 이유에서다. A교사의 죽음 이후 교육부는 교권 회복 강화 방안을 내놓았으나, 교사들은 현장에 적용하기 어려운, 탁상행정에 불과하다며 성토했다.

이날 집회 연설자 중엔 서이초 A교사를 처음 지도했던 교육대 교수도 있었다. 그는 "A선생님을 제 마음속에 영원히 간직하겠다"며 눈물을 삼켰다. 이어 "무너진 공교육 정상화를 꼭 이루겠다"며 "선생님들의 교육활동을 방해하는 모든 도전과 싸우겠다. 제 제자들인 선생님들을 꼭 지키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에 집회자들도 "감사합니다 선생님"이라고 큰 소리로 외쳤다.

집회 중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을 규탄하는 고성도 재차 나왔다. 집회 진행자는 "우리는 한 걸음씩 나아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우리의 오만이었고, 또 다른 동료의 죽음이 반복되고 있다"며 "이런 위기의 교사들을 지켜줘야 할 국회와 교육부는 낯 부끄러운 간담회를 하고 교사들을 병풍 세웠다"고 비판했다. 이 부총리를 향해서는 "우리를 지켜야 할 교육부의 대표가 맞는 걸까"라고 반문했다.

이에 집회자들도 한목소리로 "학교현장에 혼란을 초래한 이주호 장관은 반성하라", "징계를 운운하며 권한 남용한 이주호 장관은 사과하라"고 외쳤다. 서울의 한 초등학교 교사인 집회 자원봉사자 김아무개씨도 "교육부의 행태에 참을 수 없어서 직접 자원해서 나섰다"며 "더는 분필을 들기 어렵다"고 토로했다.

일부 교사들은 최근 정부가 교사들의 집단행동을 막기 위해 '징계' 수단까지 거론하며 압박한 모습에 분노하기도 했다. 인천의 한 초등학교 교사 정아무개씨는 "선이 모여 면이 되듯, 같은 목소리를 내는 사람이 많아져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연가를 내야하는 선생님은 심적 부담이 클 것이다. 만약 이분들을 징계하거나 한다면 (반대 촉구에) 다시 힘을 보탤 것"이라고 강조했다.

숨진 서울 서초구 서이초등학교 교사 49재인 4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추모집회를 시작하기 전, 교사들이 카네이션 헌화를 하고 있다. ⓒ시사저널 이승주

"기간제 교사의 목소리에도 관심을" "학생인권조례 무력화, 능사 아냐"

한편, 이날 집회에선 개인이 아닌 단체 자격으로 온 교사들도 눈에 띄었다. 당초 이번 집회는 다른 단체의 개입 없이 교사 개개인이 카카오톡 익명채팅방을 통해 자발적으로 참여해 만들었다는 것이 주최 측 설명이다. 교육 현장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순수한 의도가 정치적으로 변질될 것을 우려해서다.

하지만 이 자리엔 교권 문제에 공감한 교육노동자현장실천과 노동자연대, 4대종교단체 등 일부 단체들도 참석해 힘을 보탰다. 중학교 기간제 교사였던 노동자연대 소속 박아무개씨는 "각종 민원에 시달리다가 얼마 전에 학교를 떠났다"며 "특히 더 불리한 상황에 놓여있는 기간제 교사들의 목소리를 내러 나왔다"고 밝혔다.

박씨는 "지금 문제가 되는 '업무 폭탄'은 교사가 부족한 탓"이라고 진단했다. 이어 "민원 창고를 만들겠다는 교육부의 대책은 공무원들에게 강도 높은 업무가 하나가 더 추가되는 것뿐"이라고 꼬집었다.

교육노동자현장실천 소속 교사 김아무개씨는 "교육부가 학생과 학부모를 적으로 돌리고 있다"며 "교사들은 학생인권조례를 무력화시키려는 대책을 원하지 않는다. 이것만이 능사가 아니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교실에서 학생을 즉시 분리한 뒤에는 어떻게 교육 한다는 건지 모르겠다"며 사실상 대책이 제대로 마련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숨진 서울 서초구 서이초등학교 교사 49재인 4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 교사들이 모여 추모집회를 하는 가운데, 한 학생이 '선생님 사랑합니다'라는 문구가 적힌 팻말을 들고 있다. ⓒ시사저널 변문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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