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이초 교사 떠난 지 49일째…동료들 편지 읽다 울음바다, 전국서 추모
조희연 “부끄러운 마음으로 깊이 반성”
교사 1만5000명, 국회 앞에서 추모 집회
서울 서이초등학교에서 2년차 교사가 아무도 없는 교실에서 스스로 세상을 떠난지 49일째인 4일, 고인을 추모하고 교권 보호를 촉구하는 행사가 전국에서 열렸다. 서이초에서 열린 추모식에서는 동료 교사들이 편지를 읽자 울음바다가 됐다.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도 추모사를 읽다 눈물을 흘리며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일부 교사들은 연가나 병가를 내고 ‘공교육 멈춤의 날’에 참여했다. 일부 학교는 임시휴업을 실시했고, 단축 수업이나 합반 수업을 하기도 했다. 교육부는 교원 연가나 임시휴업 모두 불허했었다. 교육부는 교육 현장에 큰 혼란은 없었다고 했다.
◇검은 옷, 하얀 국화…전국 곳곳서 추모
서울시교육청은 이날 오후 3시부터 서이초 강당에서 추모제를 진행했다. 검은 옷을 입고 마스크를 쓴 180여 명이 추모제에 참석했다. 교사의 생전 모습과 시민들이 추모하는 모습 등이 담긴 영상을 보던 사람들은 눈물을 글썽였다. 서이초 동료 교사와 대학 후배가 편지를 낭독하자 곳곳에서 울음이 터져 나왔다.
서이초 앞에는 ‘이제라도 바꾸기 위해 노력할게요’라는 글귀가 담긴 근조 화환이 수십여 개 늘어섰다. 서이초는 이날 휴업하고 운동장에 시민들을 위한 추모 공간을 마련했다. 오전 9시 수업 시작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렸고 검은 옷을 입고 하얀 국화를 든 학생과 학부모, 교사의 헌화와 추모가 이어졌다. ‘지켜주지 못해, 함께하지 못해 죄송합니다’ ‘진상 규명 끝까지 하겠습니다’ 등의 문구가 추모 공간에 붙어있었다.
추모제에는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과 조희연 서울시교육감, 임태희 경기도교육감 등도 참석했다. 이 부총리는 추모사에서 “7월 18일은 꽃다운 나이의 선생님께서 청춘을 바쳐 이룬 간절했던 꿈과 함께 우리 곁을 떠난 슬픈 날이자 교육계는 물론 우리 사회 전체에 경종을 울린 날”이라고 했다. 떨리는 목소리로 추모사를 하던 이 부총리는 눈물을 흘리며 말을 잇지 못하다가 “선생님의 부재로 헤아릴 수 없는 슬픔을 겪고 계실 유가족 여러분께 위로의 말씀을 전하며,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고 했다.
조 교육감은 추도사에서 “학교와 선생님 없이는 우리 사회의 미래도 없다는 당연한 사실을 종종 잊었다”며 “소중한 교훈을 고인을 떠나보낸 뒤에야 깨우쳤다. 부끄러운 마음으로 깊이 반성한다”고 말했다. 이 부총리와 조 교육감 등은 추모제를 마친 뒤 고인이 근무한 1학년 6반에서 묵념하고 교실을 빠져 나왔다.
교사 1만5000여 명(주최 측 추산)은 이날 오후 4시 30분쯤 검은 옷을 입고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 모여 교사 모임 ‘한마음으로 함께하는 모두’가 개최한 추모 집회에 참석했다. 이들은 성명서에서 “더 이상 교사를 죽이지 말고 억울한 죽음의 진상을 하루 빨리 촉구한다”며 교사 사망 진상 규명, 교원 보호 합의안 의결, 안전하고 존중받는 교육 환경 조성을 요구했다. 이어 “다시는 어떤 교사도 홀로 죽음을 택하지 않도록 우리가 지키고 바꾸겠다”며 “대한민국 교사의 이름으로 오늘을 공교육 정상화 시작의 날로 선포한다”고 했다.
주최 측은 서이초 교사의 어머니가 쓴 편지를 대독하기도 했다. 어머니는 “네 빈자리를 받아들이는 것조차 힘들지만 그럼에도 진실을 찾는 데 노력하겠다”며 “그것만이 전국 선생님들이 너에게 보내준 추모 화환에 보답하는 길이고 교사들의 사기 진작을 위한 희망의 불씨이자 작은 위로가 될 것”이라고 했다.
충남·대구·제주·인천·충북교육청, 대구 2·28 기념공원, 광주 5·18민주광장, 대전 보라매공원 등에서도 비슷한 시각에 추모 집회가 열렸다. 서울교대·경인교대·춘천교대·한국교원대 등 교육대학교에서도 오후 7시에 추모 집회가 열렸다. 앞서 지난 2일에도 교사 20만여 명이 국회 앞에서 서이초 교사를 추모하고 교권 보호를 호소하는 집회를 열었다.
◇전국 초등학교 38곳 입시 휴업, 교사들 연가·병가
교육당국에 따르면 이날 상당수 교사들이 연가·병가를 냈다. 부산은 초등교사 1500여 명이, 경남 지역은 초등교사 1300여 명이 연가·병가 등으로 결근한 것으로 추산된다. 강원 지역은 600여 명, 광주광역시는 360명 이상 교사가 연가·병가를 사용하며 추모에 동참했다.
전국 초등학교 38곳은 이날 임시 휴업을 실시했다. 서울 12곳, 세종 8곳, 광주광역시 7곳, 충남 7곳, 인천 3곳, 울산 1곳 등으로 전국 초등학교(6286곳)의 0.6% 수준이다. 단축 수업 등을 하는 학교도 있었다. 서울의 한 초등학교는 정상 수업을 한다고 밝혔다가 이날 오전 10시 40분쯤 ‘대다수 교사의 병가로 안정적인 교육 과정 운영에 어려움이 발생했다. 점심 후 전 학년이 귀가해야 한다’고 안내했다.
이 부총리는 추모식에서 취재진이 연가를 낸 교사를 징계한다는 입장에 변화가 있는지 묻자 “오늘은 추모의 날”이라며 “이 상황에 대한 분석을 교육부가 하고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일부 추모식 참석자는 항의 표시로 의자를 뒤로 돌려 이 부총리를 등지기도 했다.
일부 학부모들도 서이초 교사 추모에 동참해 자녀를 학교에 보내는 대신 체험 학습을 신청했다. 아이에게 검은 옷을 입히는 방식으로 추모의 뜻을 함께하는 경우도 있었다. 학부모가 의무 교육을 하지 않으면 초·중등교육법에 따라 과태료를 부과받지만, 교육부는 등교 대신 체험 학습을 하는 경우 수업으로 인정한다는 방침이다.
전국에서 추모가 이어진 가운데 이날 제주도 서귀포시에서는 교사 출신의 현직 제주도 교육청 과장이 차량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전날과 지난 1일, 지난달 31일에는 경기도 용인의 고등학교 교사와 전북 군산의 초등학교 교사, 서울 양천구의 초등학교 교사가 사망한 채 발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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