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하의 '그런데'] 맹탕인 CCTV 의무화

2023. 9. 4.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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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떨어지듯 뚝뚝 떨어지고 피를 엄청 흘렸음에도 나가버렸어요. 다른 방에 또 다른 환자를 수술하기 위해서…. 동시에 3명을 (수술)했거든요." - 이나금 / 고 권대희 씨 어머니

2016년. 수술대에 누워 있던 25살 권대희 군은 안면윤곽 수술을 받다 과다출혈로 숨졌습니다.

유족들은 당시 수술실 CCTV를 통해 집도의가 다른 환자도 동시에 수술하러 가는, '공장식 수술' 정황을 파악했고, 이 사건을 계기로 수술실 CCTV 의무화법이 8년 만인 지난해 국회를 통과해, 오는 25일 시행을 앞두고 있습니다.

환자 단체가 CCTV 설치를 요구하는 이유는 의료 사고나 범죄가 발생했을 때 소송에서 입증할 책임이 환자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마취돼 누워있는 환자의 당시 상황은 CCTV로 확인할 수밖에 없는데, 수술실은 CCTV가 설치되지 않은 곳이 대부분이거든요.

그럼 문제가 생겼을 때 앞으로는 환자 측이 다 수술실 CCTV를 확보할 수 있느냐, 아닙니다.

1. 응급환자 2. 생명에 위협이 되거나 신체기능의 장애를 초래하는 질환을 앓는 환자 3. 전문 진료 질병군에 해당할 경우 4. 전공의 수련을 현저히 저해할 우려가 있다고 판단하는 경우 5. 수술 직전 촬영이 기술적으로 어려운 경우 6. 천재지변 등 불가항력적 사유가 있을 땐, 병원이 환자의 동영상 촬영 요구를 거부할 수 있거든요.

그런데 규정 자체가 모호하고 예외도 너무 많죠.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가 될 수 있는 겁니다.

더욱이 촬영된 동영상을 제공받거나 열람하려면 수술 참여 의료진 등 영상에 등장하는 모든 사람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니, 이게 쉬울까요.

위험부담을 안고 수술을 하는 의사를 위축시킬 수 있다는 의료계의 입장도 충분히 이해는 됩니다. 심리적 부담감으로 집중력이 낮아지면 이 피해 역시 환자의 몫이 될 테니까요.

그런데도, 법 시행을 20여 일 앞둔 지금까지도 CCTV 촬영을 위한 구체적인 지침이 없다니요. 이건 되레 의료계와 환자 간 불신을 부채질하는 또 하나의 불씨가 될 수 있습니다.

법을 만든 이들이 이걸 모르는 걸까요. 아니면 모르는 척하는 걸까요.

어느 항구로 항해해야 할지 모른다면 순풍이 불어도 소용없다.

우리가 가야 할 항구가 어딘지, 알고는 계신 겁니까.

김주하의 그런데, 오늘은 '맹탕인 CCTV 의무화'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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