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백지신탁 불복 소송
공무원은 헌법 제7조 규정처럼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이다. 국가공무원법은 공무원이 직무와 관련해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사례·증여·향응을 주거나 받을 수 없도록 했다. 그렇지 않으면 업무 과정에서 공익보다 사익을 우선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이해충돌이 규율되지 않으면 정부는 부패한다.
공직자 이해충돌 방지를 위해 시행 중인 ‘주식 백지신탁’ 제도는 고위공직자의 3000만원 초과 보유 주식을 금융기관에 맡겨 60일 안에 처분토록 하고 있다. 이 제도를 규정한 공직자윤리법은 1978년 제정된 미국 정부윤리법이 모델이다. 1953년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대통령 때 재정 관련 이해충돌 이슈가 논란된 걸 계기로 고위공직자들이 자발적으로 주식을 백지신탁한 것이 기원이다. 관행이 먼저 정착된 뒤 추후 입법화된 것이다. 한국의 백지신탁 대상이 주식으로 한정돼 있는 반면 미국은 채권·부동산·펀드까지 포함해 광범위하게 규율한다. 채권·부동산 보유 역시 이해충돌 소지가 있다고 본 것이다.
한국은 2005년부터 공직자윤리법에 근거해 백지신탁 제도가 시행되고 있지만, 실상은 ‘무력화’돼 있다. 경향신문이 지난 3월 말 공개된 입법·사법·행정부 전·현직 고위공직자 2555명의 재산공개 자료를 전수 분석해보니 3000만원 이상 주식을 보유한 685명 중 106명(15.5%)만 백지신탁 혹은 매각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경향신문 4월27일 보도). 주식을 계속 보유하려면 직무관련성 심사를 통과해야 하는데 심사가 지연될 뿐 아니라 그 결과도 수긍하기 어려운 경우가 적지 않다.
최근 이 제도에 도전하는 공직자들이 등장했다. 유병호 감사원 사무총장은 배우자가 보유한 8억원대 바이오회사 주식을 처분하라는 정부 결정이 재산권 침해라며 소송을 벌이고 있다. 박성근 국무총리 비서실장은 배우자의 회사 지분을 백지신탁하라는 인사혁신처 결정에 불복해 행정심판을 냈다가 기각되자 지난달 말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두 사람은 ‘실세’로 분류되는 이들이다. ‘권력과 돈’ 두 마리 토끼를 잡겠다는 심산 외에 설명할 길이 없다. 주식을 포기 못하겠다면 애초 공직을 맡지 말았어야 하는 게 상식 아닌가. 윤석열 정부 들어 상식을 뛰어넘는 일들이 도처에서 벌어지고 있다.
서의동 논설실장 phil21@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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