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교육부 파면 협박에 울분, 20년 만에 병가를 쓰다
“그동안 아파도 아이들 담임이기 때문에 책임감으로 버텼습니다. 교사들 겁박하는 교육부 때문에 20년 교직 생활을 하면서 오늘 처음 병가를 써봤습니다.”
4일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사당 앞에서 만난 서울 소재 초등학교 교사 ㄱ(45)씨와 동료 교사 3명은 “도대체 교육부는 누구의 편이냐”며 울분을 토했다. ㄱ씨는 “병가·연가를 쓰면 파면하겠다고 교사들을 겁주고 협박하는 교육부를 보면서 우리랑 같은 일을 하는 곳이 아님을 깨달았다. 오히려 대부분의 학부모는 집회를 지지한다며 체험학습 신청서를 많이 내주셨다. 아이들이 눈에 밟히고 징계 부담도 있지만, 우리가 움직여야 바꿀 수 있다는 생각에 병가를 쓰고 집회에 나왔다”고 했다.
이날 오후 4시30분부터 6시까지 ‘한마음으로 함께하는 모두’라는 이름의 교사 모임은 국회 앞 대로에서 서울 서초구 한 초등학교에서 숨진 교사의 49재 추모집회를 열었다. 저녁 6시 기준 주최 쪽은 약 5만명이 모였다고 추산했다. 이들은 서초구 교사 사건의 진상규명 요구와 함께 교사의 정당한 교육행위를 아동학대로 처벌할 수 없도록 국회에 관련 법 개정을 촉구했다. 교사 모임은 “다시는 어떤 교사도 홀로 죽음을 택하지 않도록 우리가 지키고 바꾸겠다”며 “9월4일은 공교육 정상화 시작의 날로 선포한다”고 밝혔다.
주최 쪽은 숨진 교사의 어머니가 쓴 편지를 대독하기도 했다. 유족은 편지에서 “네 빈자리를 받아들이는 것조차 힘들지만 진실찾기에 더 신경을 쓰겠다”며 “그것만이 전국의 선생님들이 너에게 보내준 추모 화환에 보답하는 길이고, 교사들의 사기 진작을 위한 희망의 불씨이며 작은 위로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교사들은 이날 학교에 연가나 병가 등을 내는 방식으로 ‘공교육 멈춤의 날’에 동참했다. 숨진 교사가 몸담았던 학교를 포함한 전국 초등학교 38곳은 학교장이 임시휴업(재량휴업)을 결정하기도 했다. 교육부의 ‘압박’이 이어지는 가운데 최근 나흘 새 교사 3명이 또 스스로 목숨을 끊자 추모집회 열기는 더욱 뜨거워졌다.
집회 발언대에서 마이크를 잡은 한 초등학교 교사는 “서초구 초등학교 선생님 얘기를 듣고 악성 민원으로 고통받던 6년 전이 떠올랐다”며 “시나브로 무너지던 교사 공동체는 결국 한 사람의 삶이 학교에서 와르르 무너지고 나서야 화들짝 놀라 서로를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우리가 우리를 지키지 못하면 매일 동료 교사의 초상을 치르고 49재를 지내야할지도 모른다”고 했다.
아이들과 함께 현장학습 신청서를 내고 집회를 찾은 학부모들도 있었다. 초등학교 3학년 쌍둥이 자녀와 함께 국회 앞 추모집회를 찾은 이아무개(36)씨는 “연이어 선생님들이 안타깝게 숨졌다는 소식을 듣고 이번 기회를 통해 아이들이 선생님들을 존경하는 마음을 갖고, 선생님들이 겪는 어려움을 눈으로 보게 하고 싶었다”고 했다.
경기 김포시에 사는 김아무개(43)씨도 자녀 설지원(11)양과 함께 현장을 찾았다. 김씨는 “나도 사설 유치원에서 영어교사로 근무하고 있어서 학부모 민원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공감한다. 아이에게도 부당한 일에 당당히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주고 싶어서 체험학습을 신청하고 왔다”고 했다. 설양도 “하루빨리 선생님들을 보호할 수 있는 법안을 국회에서 마련해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날 각 시·도 교육청 앞을 비롯한 전국 곳곳에서도 추모행사가 진행됐다. 경남교육청 앞에 3천명, 전남교육청 앞에 1천명 등이 모였고, 충남교육청, 대구교육청, 대구 2·28 기념공원, 광주 5·18민주광장, 제주교육청, 인천교육청, 충북교육청, 충남교육청, 대전 보라매공원 앞 등에서도 교사들이 모여 추모집회를 열었다. 서울교대·경인교대·춘천교대·한국교원대 등 교육대학교에서도 이날 저녁 7시께부터 추모집회가 열렸다.
박지영 기자 jyp@hani.co.kr 고병찬 기자 kick@hani.co.kr 최예린 기자 floy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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