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럼] 그들을 위한 `작은 파티`

2023. 9. 4. 1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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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태 월간객석 발행인

올 여름은 날씨의 온갖 변수를 다 보여준 것 같습니다. 7월엔 주구장창 비가 내리더니 8월은 한차례의 태풍을 전후로 매일 33도를 웃도는 한증막 같은 무더위로 우리를 지치게 만들었습니다.

8월 둘째 주말, 이런 무더위를 뚫고 저는 오랜만에 국제음악영화제가 열리는 충북 제천에 다녀왔습니다. 올해로 19회째를 맞은 제천국제음악영화제(8.10~15)는 매년 한 명의 영화음악 작곡가를 선정해 그의 음악을 집중 조명합니다. 올해는 지난 봄 작고한 일본의 영화음악 작곡가 류이치 사카모토(1952~2023)가 주인공이었죠.

국내에도 많은 팬을 보유한 그는 영화 '전장의 크리스마스'(록스타 데이비드 보위와 공동 주연)에 출연한 것을 계기로 영화음악 작곡에 뛰어들어 '마지막 황제'로 아카데미 영화음악상까지 수상했던 실력파 뮤지션입니다. 젊은 날에는 YMO(옐로 매직 오케스트라)라는 록그룹의 일원으로 큰 인기를 모았고, 중년 이후에는 환경문제 등 사회참여 활동에도 열심이어서 큰 반향을 몰고온 사람이었죠.

류이치 사카모토에게 헌정하는 콘서트는 제천 시내 한 체육관에서 진행되었습니다. 제천엔 아직 제대로 된 전용 콘서트홀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음향도 썩 좋지 않은데다 날씨마저 무더워 어수선했지만, 그의 음악을 사랑하는 젊은 팬들의 환호로 그 불편함이 메워졌습니다.

현재 오스트리아 린츠 극장 지휘자로 재직 중인 한주헌이 피아노를 맡고, 바이올리니스트 양정윤과 유튜브에서 '첼로댁'으로 통하는 조윤경이 합을 이룬 트리오는 무려 16곡이나 되는 류이치의 영화음악을 연주하더군요.

나름 팬이라고 생각했는데 잘 몰랐던 그의 음악('레인', 'Energy Flow', '별이 된 소년' 등)이 많아서 흥미로운 시간이었습니다. 연주 전 상영했던 그의 2017년 다큐멘터리 영화 '코다'의 감동과 여운도 여전했고, 이번 음악영화제를 방문한 류이치의 외동딸 사카모토 미우를 만난 것도 퍽 의미 있었습니다. 아버지를 닮아 눈에 띄는 미모를 갖춘 그녀는 뮤지션인 부모의 재능을 물려받았는지 현재 직업이 가수라고 합니다.

그녀 옆에는 류이치의 소속사 관계자와 음반 제작자도 함께 있었는데, 그들 모두 제천국제음악영화제의 취지와 콘서트에 강한 인상을 받은 듯 했습니다. 조만간 같은 멤버로 서울과 도쿄에서 기념 콘서트를 열면 어떻겠느냐는 대화가 오간 것 같더군요.

저의 방문기간 동안 작은 도시 제천은 그야말로 축제 분위기였습니다. 시내 곳곳의 극장과 시민회관에서 수십 편의 화제작이 상영되고 매일 밤 각종 영화음악 관련 콘서트도 열렸으니까요. 저는 시외버스를 타고 그 도시에 갔는데요, 제가 탄 버스의 승객들 중 절반 이상이 영화제 참석자였습니다. 그만큼 음악과 영화에 대한 관심이 지방의 한 소도시를 홍보하고 또 부흥시키는 멋진 이벤트였습니다. 제천시는 현재 짓고 있는 전용 홀(제천예술의전당)을 내년에 개관한다고 하니 국제음악영화제의 20주년이 더 기대됩니다.

그렇게 저녁 공연이 끝나고, 청풍리조트 풀사이드에서 열린 파티의 분위기도 부러웠습니다. 음식이 고급이어서가 아니라, 영화감독, 연주자 등의 참석자들이 자발적으로 나와 밤 늦게까지 연주하고, 노래 부르는 분위기가 마치 한편의 영화를 보는 것 같았습니다. 그야말로 '아름다운 밤'이었지요.

저는 지금까지 많은 음악축제 현장의 연회장에 다녔지만 이렇게 자유로운 분위기는 처음이었습니다. 재정적인 여유가 돋보이는 몇몇 축제도 까나페와 와인 등의 음료를 준비한 스탠딩 파티였고, 그나마 한시간 내로 끝내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대부분의 뒤풀이는 커다란 뷔페 식당의 한쪽 구석이나 대형 한정식집의 어느 방, 혹은 작은 노포식당을 빌려서 촘촘히 마주 앉아 있었던 기억뿐입니다.

한 번은 어느 후원자가 넓은 자기 집으로 초대한 적이 있었는데, 음악과는 별 관련도 없는 일장 연설에 이어 자기 집 자랑을 어찌나 하는지, 정말 창피한 심정이었습니다.언젠가는 우리 음악축제도 연주자들의 노고를 위로하며 자연스럽게 서로 어울리는, 그런 멋진 파티를 하는 때가 오겠지요?

우리나라에는 개인이나 기업, 또는 나라가 운영하는 수많은 문화재단이 있습니다. 그러나 단 몇 곳을 제외하고는 정작 음악가들을 위한 후원이나 기부는 터무니없이 적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더 안타까운 것은 많은 기업들이 미술품 구입에는 서로 경쟁하듯 가격에 구애를 받지 않지만, 필요한 악기를 사서 젊은 음악가에게 빌려주는 곳은 기존의 2~3개 기업 말고는 아직 한 곳도 늘지 않았다는 사실이죠.

올 여름에도 해외에서 활약하는 젊은 연주자들이 대거 귀국해, 그동안 갈고 닦은 실력을 유감없이 보여주는 좋은 연주회가 많이 열렸습니다. 부디 많이 참석하셔서 그들의 사기를 올려주세요! 그것이야말로 연주자들이 가장 먼저 바라는 '멋진 파티'가 될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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