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실의 서가] 남산 밑 해방촌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

박영서 2023. 9. 4. 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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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에 몽마르트르 언덕이 있다면 서울에는 해방촌이 있다.

해발 100미터 남짓한 언덕인 몽마르트르에 사크레쾨르 성당이 있다면 남산 바로 밑 해방촌엔 해방교회와 해방촌성당이 있다.

저자의 부모님도 서울에 올라와 해방촌에 자리를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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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살던 해방촌 1963~1981
이종수 지음 / 하움출판사 펴냄

파리에 몽마르트르 언덕이 있다면 서울에는 해방촌이 있다. 해발 100미터 남짓한 언덕인 몽마르트르에 사크레쾨르 성당이 있다면 남산 바로 밑 해방촌엔 해방교회와 해방촌성당이 있다.

해방촌은 저자의 고향이다. 저자는 1963년 해방촌에서 태어났다. 초등학교와 중·고등학교를 거쳐 대학에 입학한 후 군에 입대했던 1983년까지 20여년을 오롯이 해방촌서 살았다. 초등학교 1학년 때인 1969년 추운 겨울날 집이 철거 당해 경기도 광주(현 성남시)로 쫓겨나 4~5개월 천막살이 한 것을 빼고는 계속 해방촌서 살았다.

저자는 그 기간 동안 친구들과 함께 놀았던 해방촌의 골목길과 삶 그리고 해방촌의 역사까지를 모두 책에 담았다.

책은 해방촌 토박이인 저자의 자전적 성장 에세이다. 60년대 이미 서울은 만원(滿員)이었다. 먹고 살기위해 무수한 사람들이 남부여대(男負女戴)하고 무작정 상경했다. 저자의 부모님도 서울에 올라와 해방촌에 자리를 잡았다. 해방촌 주민들이 대부분 그랬듯이 저자의 집 역시 가난했다.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고등학교 3학년 봄까지 신문 배달을 하면서 학교를 다녔다. 이런 기억과 추억은 씨줄과 낱줄로 짜인 베옷처럼 저자의 마음에 질기게 남아 있다. 저자는 이를 기록해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싶었다.

책은 어렴풋이 기억이 나는 6살 무렵부터 15년 간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책은 시멘트 블록 집, 공동 수도, 개 잡는 어른들, 소독차, 테레비방과 만화방, 뻔데기 장수, 육성회비, 송충이 잡기, 신문 배달, 남산 아래 교회들, 후암동 108계단, 용산 미군기지 등 60년대~80년대 해방촌의 다채로운 모습, 그 곳 주민들의 삶, 그리고 현대사의 질곡까지를 소환해 냈다. 해방촌에 대해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거나 저자와 비슷한 시대를 살아온 독자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들이다.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술술 읽게되지만 또 한번 보고 싶은 영화 같은 책이다. 힘들었지만 공동체가 살아 숨쉬고 있었던 '그 시절'을 밝고 가벼운 마음으로 풀어낸 저자의 글은 그동안 참 많은 것들을 잊거나 외면했던 우리들을 뒤돌아보게 만든다. 박영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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