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기금고갈 방지가 핵심…못 막으면 경제 붕괴 [홍길용의 화식열전]
운용성과 부진에도 제고 노력 부족
기금소진 시작되면 자산시장 대폭락
초고령화로 완전부과방식 감당 못해
加 보험료+기금운용수익=연금재원
독립된 전문기관운, 연 10% 수익률
지난 1일 보건복지부 산하 국민연금재정계산위원회(재계위)가 제도개선 방향을 발표한 이후 많은 보도들이 쏟아졌다. 거의 전부가 ‘더 내고 더 늦게 받는다’에 주목했다. 언뜻 가입자에게 가장 중요한 듯 보인다. 질문을 던져보자. 왜 더 내고 더 늦게 받아야만 할까? 더 내고 더 늦게 받으면 문제가 해결될까? 국민연금 기금이 고갈되면 어떻게 될까?
더 내고 더 늦게 받는 논의가 나온 이유는 2055년으로 다가온 국민연금 기금 고갈을 늦추기 위해서다. 2040년까지는 연금보험료 수입이 연금지급액 보다 많아 적립금이 1755조원까지 쌓이겠지만 2041년부터는 수입보다 지급이 많아져 적립금을 헐어야 한다. 하지만 더 내고 더 늦게 받아도 적립금 고갈은 시간문제일 뿐 피할 수 없다.
2041년부터는 적립된 자산을 팔아 연금재원을 마련해야 한다. 단순 계산으로 1년에 117조원어치씩 15년을 계속 내다 팔기만 해야 한다. 이 만한 매물을 충분히 받아낼 세력이 있을까? 주식, 채권, 부동산 등 자산시장이 쑥대밭이 될 게 뻔하다. 해외자산 비중이 절반 이상으로 늘린다고 해도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매년 막대한 달러화를 원화로 바꿔야 한다. 외환시장에 엄청난 부담이 될 수 있다. 기금운용본부가 아무리 출구전략을 잘 실행한다고 해도 일단 국민연금의 자산매각이 시작되면 자산가격이 급락할 가능성도 크다. 15년도 채 안돼 기금이 고갈될 수도 있다.
적립된 자산을 팔기 시작하면서 내야할 보험료도 가파르게 늘어난다. 2055년 기금이 완전 고갈되면 가입자가 그해 납입한 보험료로만 연금을 지급하는 완전부과방식으로 바뀌게 된다. 19세기에 연금제도를 도입한 선진국 상당수가 걸어온 길이다. 하지만 재계위 아래 기금운용발전전문위원회(기발위)는 우리나라는 국민연금 기금이 고갈되더라고 다른 선진국들처럼 완전부과방식으로 연금제도를 유지하기 어렵다고 봤다.
기금이 완전히 고갈될 것으로 예상되는 2055년 부과방식비용율 전망치는 25%다. 소득의 25%를 국민연금 보험료로 내야 한다는 뜻이다. 우리나라는 고령화 속도가 워낙 빨라 2060년이면 생산가능인구(15~64세)가 절반 아래로 떨어지고 2070년이 되면 고령자 인구도 밑돌 전망이다. 이렇게 되면 근로자 1명이 은퇴자 1명 이상을 부양하기 위해 소득의 30% 이상을 국민연금 보험료로 내야 한다. 정부가 재정을 투입하면 가입자의 보험료 부담을 조금 덜 수는 있겠지만 결국 증세가 필요하다. 국민연금 급여부담을 분산시키는 효과는 있겠지만 국가 전체적인 부담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사실상 경제가 망할 수 밖에 없는 구조다.
가입자와 재정의 부담을 줄이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적립된 기금의 고갈을 막는데 있다. 다들 지금보다 조금씩 더 부담을 져야 한다. 기금운용을 좀 더 잘하고 정부도 연금재정에 기여해야 한다. 이 중 그나마 가장 쉬운 길이 기금의 운용수익률 제고다. 1988년부터 2022년까지 수익률은 연평균 5%다. 보건복지부의 국민연금 재정추계에서 향후 예상치는 연평균 4.5%다. 지금까지 정도도 하기 어려운 것일까? 그동안 성과가 그리 뛰어났던 것일까?
해외 주요 공적연금과 10년 수익률 변화 추이를 비교해보면 국민연금은 압도적인 꼴찌다. 코로나19 이후에는 일본 만도 못하다. 가장 높은 곳은 캐나다로 2022년 기준 5년간 연평균 목표수익률이 6.11%인데 최근 10년 실재 기록한 수익률은 연평균 10% 이상이다. 올해 국민연금 적립금은 1000조원에 육박할 전망이다. 연간 1%포인트만 더 벌어도 10조원이다. 올 연금지급액의 25%다.
캐나다연금플랜(CPP)은 1997년 재정계산 평가기간인 75년간 연간 지출비용 대비 5~6배의 적립금을 유지하기 위한 개혁을 단행했다. 먼저 충분한 적립금 확보를 위해 보험료율을 6.4%에서 9.9%로 높였다. 주목할 부분은 연금급여 지급에 필요한 총비용의 60%는 미래세대가 납부하는 보험료로 나머지 40%는 적립 기금의 운용수익으로 충당하는 구조를 짠 데 있다.
정상상태적립(Steady State Funding)이란 일정수준의 적립금을 안정적으로 유지해 부과방식비용율의 부담을 지속적으로 덜어주는 방식이다. 적립금을 효율적으로 운용하는 게 관건이다. 캐나다는 전문운용기관(CPP Investment Board)에 적립금을 맡기고 정부의 간섭은 최소화했다. 위험자산 비중이 85%에 달하지만 지난해 폭락장에서도 10% 이상의 10년 수익률을 지켜냈다.
연금과 같은 초대형·초장기자산을 운용할 중요한 것이 전략적자산배분(SAA)이다. 전체 운용성과의 90%이상을 좌우할 정도다. 투자철학을 바탕으로 투자목적을 정하고 투자대상 자산군을 정의하고 이에 걸맞는 비교지표(benchmark)를 설정하며 시작된다. 국민연금은 SAA가 정교하지 못해 주식,채권 등 전통적자산의 비중이 높고 이 때문에 시장 부침에 크게 흔들린다는 게 기발위 진단이다.
국민연금 기금운용의 최고의사결정기구는 기금운용위원회다. 위원장인 보건복지부 장관을 비롯해 기획재정부·농림축산식품부·산업통상자원부·고용노동부의 차관, 공단 이사장, 그리고 사용자와 근로자 대표 각 3명, 지역가입자 대표 6명, 위원장이 임명하는 관계전문가 2명 등이다. 이번 공청회에서 기발위는 캐나다 방식의 접근을 포함한 전문성 제고 방안을 제안했다.
기금운용기능의 고효율화는 누가 봐도 필요한데 깊이 있는 논의가 이뤄진 적이 없다. 독립하면 통제가 어렵다는 이유다. 현재 국민연금 기금의 관리·운용권자는 보건복지부장관이다. 950조원짜리 초대형 기금의 운용권한을 내놓을리 만무하다. 행정안전부도 사실상 금융기관인 새마을금고에 대한 관할권을 포기하고 있지 않다. 공공사업에 사용할 기금의 비율과 우선순위를 강제한 법 체계도 문제다.
국민연금 개혁은 국민과 국가의 미래가 걸린 과제다. 오늘날 연금의 문제는 가입자 탓이 아니다. 관리에 실패한 정부의 책임이다. 소득대체율이 주요국 꼴찌인데 또다시 개혁 논의가 가입자 부담만 높여 기금을 연명하는 데만 초점이 맞춰지면 곤란하다. 국민연금이 실제 노후경제의 안전판 역할을 하면서도 우리 경제가 지속가능한 성장을 하기 위해서는 급여재원을 다양화해야 한다.
적립금 고갈을 막기 위해 보험료율을 높이되 정부도 재정을 좀 보태 가입자 부담을 줄여야 한다. 수령시기를 늦추려면 정년연장과 소득대체율 상향 등의 보완책도 고민해야 한다. 이런 점에서 이번 기발위의 제안을 진지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 지난 4월 11일 화식열전(‘연금지옥’ 대재앙까지 불과 18년…선진국들 다하는 재정보조 왜 안되나)와도 일맥상통한다.
kyho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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