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년간 집요한 국가 소송…‘원고 대한민국’의 후안무치
[왜냐면] 서범진 | 금속노조 법률원 변호사
아직도 생생히 기억한다. 2009년 한여름, 티브이(TV)뉴스는 공장 옥상에서 경찰특공대가 노동자를 둘러싸고 곤봉으로 집단 구타하는 장면을 보여주고 있었다. 헬기가 공중에서 어마어마한 양의 최루액을 사람에게 살포하는 모습, 거대한 기중기가 빈 컨테이너를 들어 올려 노동자들을 향해 휘두르는 모습도 방송됐다. 하루아침에 아무 잘못 없이 일자리를 잃게 된 쌍용차 노동자들의 절규를 대한민국은 잔혹한 폭력으로 응답했던 것이다.
파업이 이렇게 중단되고 나서도, 쌍용차 노동자들의 고통에는 마침표가 찍히지 않았다. 정부는 노동자들이 진압에 저항하는 바람에 경찰이 공격 무기로 사용한 헬기와 기중기가 크게 파손됐다며 자신이 피해자라고 주장했다. 1심과 2심 법원도 ‘원고 대한민국’의 손을 들어주면서 노동자들에게 약 30억 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노동자 30여 명이 절망 끝에 스스로 생을 등진 뒤에야, 경찰은 쌍용차 파업 진압이 국가폭력이었다고 시인했다. 그러나 ‘원고 대한민국’은 2019년 경찰청장이 공식적으로 사과한 뒤에도, 대법원이 노동자들의 저항을 국가폭력에 맞선 정당방위로 인정한 뒤에도 손해배상 소송을 중단하려 하지 않았다. 대법원이 고등법원으로 사건을 돌려보낸 뒤에도 마찬가지였다. 고등법원이 노동조합 단체만 손해배상 책임을 지고 노동자 개인들에게는 책임을 면제하자는 조정 방안을 제시했지만, ‘원고 대한민국’은 조정안에 대한 판단 권한이 법무부에 있는지 경찰에 있는지도 잘 모르겠다고 얼버무리다가 조정안 수용을 거부했다.
결국 지난 8월25일 고등법원은 노동자들이 대한민국에게 3억 원가량을 배상해야 한다는 새로운 판결을 내렸다. 감액은 됐지만, 헬기 파손은 정당방위로 보면서도 기중기 수리비는 일부 책임지라는, 납득하기 어려운 결론이었다. 그 결과, 노동자들은 10년이 지나 비로소 국가폭력 피해자임을 인정받고도 여전히 가해자 대한민국에 배상금을 물어줘야 한다.2009년에 국가폭력을 지시한 진짜 책임자들은 모두 공직에서 퇴직하고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았고, 손해배상 시효 만료로 어떤 배상 책임도 지지 않는데 말이다.
국가는 무릇 강자를 견제하고 약자를 보호해야 한다는 것이 사람들의 상식이다. 지난 1년간 노동조합과 시민사회단체들이 노조법 2·3조 개정을 통해 기업의 무분별한 노동자 대상 손해배상 소송을 규제하자고 한 것도 국가가 응당 그런 역할을 해야 한다고 믿어서였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대한민국 정부는 그런 기대로부터 너무나도 멀리 동떨어져 있는 듯하다. 심지어 국가폭력 피해자들에게 ‘가해 도구’의 수리비를 부담시킨 후안무치함은, 파업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갚을 수도 없는 액수의 천문학적 손배소송을 제기하는 기업들의 비정함과 비교해 결코 덜 잔혹해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14년간의 집요한 국가 소송은 기업들에게 일종의 모범 사례로서 손해배상 소송을 더욱 부추기는 효과를 냈을 것이다. 더구나 정부는 틈만 나면 노동조합을 ‘불법세력’으로 비난하고, 노조법 개정안은 아직 국회 본회의에 상정조차 되지 않았는데 대통령 거부권부터 거론하며 펄쩍 뛰고 있다. 노동자들에게 수십억에서 수백억 원 소송을 제기한 현대차, 씨제이(CJ)대한통운, 현대제철, 대우조선해양 등의 사용자들을 이보다 더 의기양양하게 만들 방법이 또 있을까.
우리에게는 노동자를 맞서 싸울 상대로 여기는 ‘원고 대한민국’이 아닌, 노동자를 책임지는 ‘국가’가 필요하다. 국가다운 국가, 노동자들의 희망과 평범한 사람들의 상식이 통용되는 진짜 국가는 여전히 우리에게 쟁취해야 할 미래로 남아있다. 그러나 느리더라도 변화의 순간이 우리를 찾아올 것이다. 그러니 쌍용차 노동자들이 그래온 것처럼, 우리도 더 굳세게, 더 꼿꼿하게 우리의 목소리 내기를 멈추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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