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법 2·3조 개정을 주저하는 분들에게

한겨레 2023. 9. 4. 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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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봉투법’]

‘노조법 2·3조 개정 운동본부’와 양대노총 조합원 등이 2023년 8월22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왜냐면] 정흥준 | 서울과학기술대 경영학과 교수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에 견줘 유독 비정규직 노동자가 많다. 2022년 기준 전체 임금노동자의 37.5%가 비정규직이니 열 명 중 네 명은 비정규직인 셈이다. 비정규직에 대한 우려는 비단 그 수가 많아서 때문만은 아니다. 근본 문제는 심각한 차별이다. 2022년 고용형태별 근로실태조사를 보면, 300명 이상 대기업 정규직의 임금을 100이라고 할 때, 같은 규모 대기업 비정규직 임금은 65.3%였고, 300인 미만 기업 비정규직 임금은 43.7%에 불과했다. 갈수록 만연해지는 정규직과 비정규직, 대기업과 중소기업, 원청과 하청 간 소득격차는 비정규직 당사자의 차별만이 아니라 자녀 세대의 교육격차로 이어져 가난까지 대물림한다. 세계에서 가장 출생률이 낮은 나라가 된 이유도 노동시장 내 구조적 차별과 무관하지 않다.

우리 노동시장은 왜 이렇게 기형적인 모습이 되었을까. 주된 이유 중 하나는 기업이 비정규직을 활용해 이윤을 남기더라도 실질적 책임은 지지 않아도 되는 법·제도적 허점 때문이다. 일상에서 쉽게 마주하는 사내하청, 용역, 특수고용 노동자들은 모두 원청 사업주가 존재하고, 원청의 사업을 위해 일하지만 원청을 상대로 처우개선을 요구할 권리는 보장받지 못한다. 원청은 현행 노조법 2조를 근거로 노동자의 교섭 등에 응해야 하는 사용자는 근로계약을 체결한 당사자로만 제한된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하청, 용역, 특수고용 등 간접고용 노동자는 노동조합이 있다고 해도 실질적 권한을 가진 원청 사업주와 교섭하는 것이 불가능한 구조다. 오히려 원청 사용자는 하청, 용역, 특수고용 노동자가 노동조합을 만들면 계약을 해지해 노조활동을 무력화시키기도 한다. 이러한 이유로 노동조합을 설립한 정규직은 사용자와 협상을 통해 매년 임금 및 노동조건을 개선하지만 비정규직은 노조를 만들어도 처우를 개선할 방법이 없어 시간이 흐를수록 소득격차가 커지는 악순환이 반복돼 왔다.

다행히 지난 6월, 국회는 사용자의 범위를 근로조건에 실질적 영향을 미치는 자로 확대하고 불법파업으로 인한 손해배상은 파업 책임에 비례해 청구하는 노조법 2·3조의 개정을 국회 본회의에 부의했다. 이에 대해 경영계는 노조법 2·3조를 개정하면, 비정규직 노동자가 원청을 상대로 파업을 일삼을 것이며 파업으로 인한 손해배상도 물을 수 없어 파업 천국이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과도한 상상이다. 노사 교섭이 활발해지면 오히려 파업은 줄어들기 때문이다. 국제노동기구(ILO)에서 제공하는 36개국의 단체협약 적용비율과 파업으로 인한 근로손실일수 간 관계를 분석해보면, 경영계의 주장과 달리 둘은 반비례 관계로 나타난다. 이러한 결과는 노사 간 교섭이 활발해지고 자율적 협약체결이 늘어날수록 오히려 갈등은 줄어들어 파업으로 인한 근로손실일수는 줄어든다는 것을 의미한다.

노조법 2·3조 개정은 우리 사회가 오랫동안 해결하지 못한 정규직과 비정규직, 원청과 하청 노동자 간 차별을 줄이는 데 크게 기여할 것이다. 나아가 노동시장 내 이유 없는 차별이 줄어들면 소득격차도 줄어들고 자연스럽게 다수 국민이 경제활동에 참여해 경제가 활성화하는 선순환 구조가 가능하다.

안타까운 것은 이같은 긍정적 효과에도 불구하고 정부·여당은 기업 이익을 과도하게 침해할 수 있다는 이유로 노조법 2·3조에 대한 국회 본회의 상정을 거부하고 있다. 틈만 나면 민생을 이야기하고 사회적 약자를 보호한다고 외치면서 노조법 2·3조의 개정을 미뤄선 곤란하다. 약속대로 다가오는 정기국회에서 개정을 논의해야 한다. 윤석열 대통령도 “오로지 국민만 바라보고 가겠다”는 약속을 실천하려면 노조법 2·3조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할 경우 거부권을 행사해선 안 된다. 열악한 하청·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위한 노조법 2·3조 개정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하는 것은 대통령의 명백한 권한남용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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