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범도 논란, 강제이주 악몽 떠올린 고려인들

나윤상 2023. 9. 4. 1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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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산주의 국가에서 태어난 것이 죄가 아니다
한국에서 가족 이루며 행복감 느껴

윤석열 정부가 쏘아올린 공산주의 이념 논쟁에 광주 고려인마을은 정적에 휩싸였다. 이념논쟁이 고려인들에게 어떻게 작동될 지 모르기 때문이다. 이들은 이 광풍이 조용히 지나가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사진은 고려인마을에 있는 홍범도 장군 흉상 / 광주 = 나윤상 기자

[더팩트 l 광주=나윤상 기자] 윤석열 대통령이 ‘공산 전체주의’가 반국가적 세력이라고 말하고 정부가 홍범도 장군 흉상 이전 추진 논란을 일으켜 2023년 대한민국이 난데없는 독재정권 시절 ‘반공’과 ‘멸공’ 이념논쟁을 떠올리게 할 정도로 파장이 크다.

이념논쟁에 대해 정치권의 프레임싸움과 진보⋅보수 역사적 관점의 차이로 해석하는 분석이 많지만 이를 몸으로 체감하며 가장 불안하게 바라보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고려인들이다.

고려인들은 이념논쟁과 더불어 홍범도 장군 흉상 이전 논란에 대해 "어떤 일인지 알고 있다"고 말하면서도 이야기하는 것을 극도로 꺼렸다.

자칫, 이 논란의 불똥이 고려인들에게 튀어 대한민국에서 쫓겨날 수 있다는 공포 때문이다.

광주시 광산구 월곡동에는 7000여 명의 고려인들이 살고 있다.

고려인 마을에는 홍범도 공원이 있다. 지난해 광복절에는 이 곳에서 홍범도 장군 흉상 제막식이 열렸다.

제막식은 고려인마을의 성대한 축제처럼 마을 사람들로 북적이며 대대적인 행사가 열렸던 곳이다.

4일 광주 월곡동 홍범도 공원에는 이주 고려인 가족들이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는 모습이 보였다/ 광주 = 나윤상 기자

4일 취재진이 찾은 홍범도 공원에는 몇 명의 아이와 엄마가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을 뿐이었다.

거리에 지나가는 고려인들에게 홍범도 장군 흉상이전 논란에 대해 묻자, 그들은 "모른다"며 대답을 회피했다.

"모른다"며 회피하는 그들의 눈가에는 불안감이 팽배해 보였다.

고려인 마을 신조야 대표(68)도 "홍범도 장군을 알지 못했다. 한국에 와서 영화 ‘봉오동 전투’를 보고 나서야 알게 됐다" 고 말했다.

취재진이 "고려인 마을에 홍범도 공원도 있고 흉상 제막식도 했는데"라는 질문에 신 대표의 대답이었다.

신 대표의 이어진 대답은 "고려인들은 현재 누구도 그 문제에 대해 말 안한다" 며 "한국에서 살고 있지만 대한민국 국민이 아니니까 언제 쫓겨날 줄 모르니까 그렇다" 고 말했다.

신 대표가 태어난 곳은 우즈베키스탄이다. 그녀의 부모들은 1937년에 스탈린에 의해 중아아시아로 강제 이주한 고려인 가족 중 하나였다.

고려인들이 정착한 지역은 소련이 해제되면서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우크라이나 등 중앙아시아 독립 국가가 되었다.

고려인들은 중앙아시아로 강제로 이주된 이후 자녀들에게 뿌리에 관한 이야기는 일절 해주지 않았다. 민족 정체성에 대한 이야기는 스탈린 독재 하 소련에서는 죽으라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카자흐스탄 세계적 화가이자 고려인 빅토르 문도 "90년 소련의 개혁⋅개방정책이 없었다면 죽을 때 까지 카자흐스탄인의 정체성으로 삶을 마감했을 것" 이라고 말했다.

홍범도 공원에 있는 장군의 소개. 설명란에 고려인사회의 정신적 지주라는 설명이 무색하게 정부는 공산주의자라는 이념논쟁을 촉발시켰다/ 광주 = 나윤상 기자

살아남으려고 숨긴 조상의 정체성은 고려인들에게 커다란 혼란을 가져다주었다. 얼굴 생김새와 삶의 방식이 다르다는 이유로 역으로 차별받고 나라를 떠나라는 핍박이 이어졌다.

소련이 붕괴된 후 차별과 불안감을 떨쳐내고자 대한민국에 들어온 고려인들에게 이념논쟁은 논란이 아닌 다시 조국에서 쫓겨날 수 있다는 무서움으로 다가왔다.

고려인 대부분이 공산권 국가에서 한국으로 온 것이기 때문에 공산주의를 맹목적으로 비판하는 상황에서 그들이 자칫 타겟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신 대표는 "우즈베키스탄에서도 얼굴 생김새가 다르다고 엄청난 차별을 견디고 살았다. 부모의 나라에 어렵게 자리를 잡고 있는데 (이념 논쟁 때문에) 대한민국을 떠나라고 하는 말이 나온다면 고려인들에게는 공포이자 무서운 이야기" 라며 한 숨을 쉬었다.

고려인 마을의 고려인들은 공산주의 이념과 상관없이 대한민국에 들어와서 행복을 찾고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가질 수 있었다.

그들의 희망은 홍범도 공원에서 볼 수 있었다. 고려인들의 아이들이다. 그들은 적게는 2명, 많게는 5명의 아이들을 낳아 가족을 이루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그들의 발목을 붙잡고 있는 것은 대한민국의 국적자가 아닌 비자를 받아야 하는 불안한 신분이다.

신 대표는 "고려인으로 태어난 것은 죄가 아니다." 면서 "고려인들이 맛있는 고기나 밥을 먹는 것도 아니다. 다만 대한민국에서 열심히 일한 만큼 살 수 있어서 행복함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며 이념논쟁이 대한민국을 휩싸이는 것에 대해 경계했다.

kncfe00@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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