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단 바꾼 북극곰…지구온난화에 적응 중?
북극곰 개체수 그대로 유지 ‘반전 결과'
“바다표범뿐 아니라 순록 사냥” 분석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살라’는 말이 멸종위기에 처한 북극곰에 들어맞을지도 모르겠다. 노르웨이령 스발바르 제도에 서식하는 북극곰이 변화한 환경에 맞춰 ‘식단’을 바꾸는 등 지구온난화에 적응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어서다.
영국 가디언은 스발바르 제도가 지난 50년간 평균기온이 4℃ 상승했을 정도로 지구온난화 직격탄을 맞았지만 북극곰 개체수는 감소하지 않았다고 최근 보도했다.
‘차가운 해안’을 뜻하는 스발바르는 노르웨이 최북단과 북극점 사이에 위치한 군도다. 가장 큰 섬인 스피츠베르겐섬엔 거대한 종자 저장고가 있는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지난해 12월 기준 107만종 이상이 잠자고 있는 이곳은 ‘새로운 노아의 방주’, ‘최후의 날 저장고’라고 불린다.
하지만 전체 면적의 60%가 빙하로 덮여있는 스발바르는 북극해 관문에 위치하고 있어 지구온난화에 취약하다. 북극지역 온난화가 다른 지역보다 빠르게 진행되는 현상인 ‘북극 증폭(Arctic Amplification)’ 때문이다. 눈과 빙하는 햇빛을 반사하지만 녹을 경우 반대의 효과가 발생한다. 더 많은 태양복사 에너지를 지표나 해양으로 흡수시켜 온난화가 심화된다.
노르웨이 환경청에 따르면 스발바르 제도의 평균기온은 1971년 이래 4℃ 상승했다. 전 세계 평균기온보다 5배나 빠른 수준인데 이같은 추세가 지속되면 평균기온이 2100년까지 10℃ 가량 상승할 수 있다.
환경보호단체 ‘북극곰 인터내셔널’에 따르면 북극곰은 시베리아·알래스카·캐나다·그린란드 등 북극 전역에 걸쳐 19개 개체군이 서식한다. 바다표범이 주요 먹이인데, 이들에 가까이 접근하기 위해선 해빙(바닷물로 된 얼음)이 필요하다. 해빙이 녹으면 사냥하기 어려워 개체수 감소로 이어진다.
스발바르 제도엔 북극곰 300여 마리가 서식한다. 동쪽에 위치한 러시아 군도 등을 포함한 전체 바렌츠해 지역의 북극곰 수는 3000마리가량으로 추정된다.
흥미로운 대목은 이 지역 북극곰 개체수가 감소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스발바르 극지연구소에서 20년 넘게 북극곰을 연구한 존 아스 교수는 주요 원인으로 순록 사냥을 들었다. 북극곰이 바다표범뿐 아니라 육지에 있는 순록을 표적으로 삼는 등 사냥방식을 바꾸고 있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온난한 기후 덕에 순록 서식지가 스발바르 제도 전 지역으로 확장됐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2021년 국제학술지 ‘글로벌 체인지 바이올로지’에 게재된 연구에 따르면 이끼류인 ‘그라미노이드’ 등 북극식물이 잘 자란 덕에 겨울철 먹이 걱정을 덜게 된 순록의 개체수가 증가했다.
아스 교수는 "해빙이 눈에 띄게 줄었을 정도로 큰 변화를 겪는 가운데 북극곰들이 잘 적응해 나가고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고 밝혔다.
알래스카와 캐나다에선 따뜻한 기후에도 잘 견디는 피즐리(Pizzly) 개체수가 증가하고 있어 과학자들의 이목을 끌고 있다. 피즐리는 북극곰과 회색곰의 교배종이다. 북극 해빙이 줄어 굶주림을 못 이기고 남하한 북극곰이 회색곰과 빈번하게 접촉하면서 교배종이 증가한 것이다. 피즐리는 북극곰처럼 보이지만 발과 다리에는 회색곰처럼 갈색 얼룩이 있다. 라리사드산티 미국 밴더빌트대학교 고생물학 교수는 “피즐리는 변화무쌍한 기후에 더욱 잘 견디며 특히 따뜻한 기후에 서식하기 적합한 개체”라고 설명했다.
‘끓는 지구’의 시대, 북극곰이 환경에 맞게 적응해가고 있는 걸까. 하지만 이를 일반화하기엔 이르다는 지적도 있다. 북극곰 19 개체군 중 3개에서 감소세가 확인되고 있어서다. 특히 캐나다 허드슨만 서부의 개체군은 2016년 842마리에서 2021년 618마리로 급감한 것으로 추정된다. 국제 북극곰협회·워싱턴 대학교·와이오밍 대학교 연구진들은 온실가스 배출량에 따라 북극곰의 생존율이 낮아졌다는 내용의 연구결과를 8월31일(현지시각) 국제학술지 '사이언스'에 발표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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