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김규식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 회장 | “동일인 지정제 명문화, 코리아 디스카운트 우려”

문수빈 조선비즈 기자 2023. 9. 4.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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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식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 회장 서울대 법학, 전 수림자산운용 전무이사 및 리서치 본부장, 전 금융감독원 법률고문, 전 한국자산관리공사 리스크심사위원 사진 문수빈 기자

“정부의 입법 취지와 목적은 동의한다. 하지만 그에 따른 결과는 의도하지 않은 부정적인 결과, 즉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낳을 수 있다.”

정부가 대기업집단의 총수, 즉 동일인 지정 기준을 명문화하겠다고 발표하자 김규식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이하 포럼) 회장은 이같이 말했다. 동일인은 상호 출자 제한 등을 위해 계열사의 범위를 판단하는 준거점으로 법률엔 없으나 1986년부터 실무에서 쓰인 개념이다.

6월 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가 ‘동일인 판단 기준 및 확인 절차에 관한 지침’ 제정안으로 동일인에 대한 개념 판단 기준을 법제화하겠다고 하자,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에서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동일인 제도가 명문화되면 이사회에서 선출한 경영진이 아닌, 국가가 지정한 동일인이 회사를 이끌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포럼은 기업 가치를 중시하는 금융투자업계의 투자자와 전문가를 중심으로 자율적으로 결성된 사단법인이다. 행동주의 펀드를 이끄는 이채원 라이프자산운용 대표, 강성부 KCGI 대표, 이창환 얼라인파트너스자산운용 대표 등이 소속돼 있다. 동일인 지정 과정에서 주주 의견이 반영되기 힘들다는 점, 주주가 최고경영자(CEO)를 정하기도 전에 동일인이 지정될 수 있다는 점을 들어 포럼은 주총과 이사회가 형식적인 요식 행위로 전락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포럼은 7월 19일 공정위에 해당 제정안에 대한 의견서를 제출했다. 다음은 김 회장과 일문일답.

공정위에 제출한 의견서에서 ‘동일인은 우리나라 기업 경영에 있어 어쩔 수 없어 보이는 현실을 규율하기 위한 것’이라고 표현했는데.
“우리나라는 개발 독재를 해왔던 국가다. 박정희 정부는 기업에 각각의 권역을 주고 재벌 체제를 만들어서 (이들이) 성장하도록 국가적으로 지원했었다. 전두환 정부까지만 해도 재벌 총수는 국가가 임명한 사람이었다. 경영권을 국가가 부여한 것이다. 각 그룹이 출혈 경쟁하지 않도록 관리하고 경제성장을 성공적으로 이뤄냈다. 1세대 창업주의 경영 승계 시점이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와 겹치면서 2세대로 경영 승계하는 과정에서 지배구조를 선진화해야 한다는 논의가 시작됐다.

선진국형의 지배구조는 지주사 체제를 만들어 지주사만 상장하고 자회사는 비상장으로 남기는 것이다. 하지만 한국은 그렇게 하지 못하고 (지주회사가) 자회사 지분을 20%(이상 보유하도록)만 하고 (자회사의) 상장을 허용했다. 이러다 보니 재벌들의 경제력이 분산되지 않았다.

지배구조 선진화와 경제력 집중 제어 등을 막기 위해 정부는 과도기적으로 동일인을 지정했다. 동일인을 기준으로 계열사를 관리하겠다는 취지였다.”

1세대에서 2세대로 경영권이 넘어가는 시기에 정부가 어떻게 조율했어야 한다고 보나.
“지주사만 상장하게 하고 (지주사가) 자회사 지분율을 최소 50% 이상 확보하도록 하면 구조조정이 될 수 있었다. 정부가 자회사 지분율 50%를 넘기라고 했다면 재벌 그룹 간 구조조정이 있었을 것이다. 지주사 지분율을 올려야 하니 매각할 건은 매각하는 등 서로 교환했을 것이고 현재처럼 선단식 체제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격렬한 (재계) 반발도 있었다. 경제력 집중을 제어해야 하는 정부로선 동일인을 지정해 동일인 중심으로 (기업을) 제어하는 특수한 제도를 도입했다. 하지만 이젠 국가가 재벌의 경영권, 경제력 집중을 남용하는 걸 모두 관리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국가가 전체적으로 관리하는 상황에서 주주 권리가 소외되고 주총을 통한 선진적인 기업 지배구조가 작동하지 않는 부작용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선진국의 승계는 무엇이 다른가.
“선진국에선 선대 회장이 사망하면 복수의 후보를 두고 10년 이상 검증한다. 후보 간 경쟁을 통해 누가 조직을 이끌기에 가장 뛰어난 사람인지 주주에게 보여준다. 주총 때 프레젠테이션도 하면서 주주가 새로운 CEO에 불안해하지 않도록 하는 과정을 거친다.

선대 회장이 사망하면 경영 승계 검증을 받은 후보 중 누굴 선임할지 결정할 주요 주주협의체가 만들어지고 대표이사후보추천위원회가 이를 검증한다.”

회사에 지배력을 미치는 사람을 동일인으로 지정하는 것이지, 동일인으로 지정한다고 해서 어떤 권한이 따라오는 것은 아니지 않나.
“(회사에서 사실상 직위가 없거나 모호한 이가) 지배력을 행사하면 안 된다. 기업의 공식적인 직책을 맡고 있지 않으면서 경영에 개입하면 안 된다는 뜻이다. (공정위의 이번 조치는) 동일인으로 이를 제도화하는 것이다. 이사회 보드 멤버가 아닌데 경영권을 행사한다면 이를 제어해야지, 제도화해서 추인하는 효과를 내면 안 된다. (그의 경영이) 적법하다는 의미를 부여하면 안 된다.”

동일인 제도는 어떻게 수정돼야 하는가.
“주총과 이사회 중심으로 돌아가야 하는 거버넌스에서 주총과 이사회에서 CEO를 선임하기 전에 동일인을 지정해 주총과 이사회를 요식행위로 보이게 하는 것은 안 된다는 것이다. 또 서서히 선진적 거버넌스 시스템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인식을 공유해야 한다. 포럼이 원하는 바는 주총과 이사회 중심으로 회사가 경영되는 것이다.

법인을 동일인으로 지정하자는 게 포럼의 제안이다. 궁극적으로는 동일인 지정 제도를 폐지하고 기업집단법이라는 상법의 한 챕터를 만들어 거버넌스 속에서 규제하는 식으로 만들어 가야 한다. 상법상 기업집단이라는 개념을 도입해서 상법 속에서 주총, 이사회, 거버넌스적 제도를 어떻게 녹일지 논의하고 선진적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경제력 집중 현상은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관점에서 주총이 제어해야 한다. 우리나라의 경제 규모는 커지고 복잡해졌다. 우리 기업이 해외에 자회사를 두기도 한다. 일일이 공정위가 규제할 수 없다.”

선진 거버넌스를 구축하기 위해 또 어떤 것이 필요한가.
“공정위 역할이 중요하다. 상법을 통한 견제로 넘어가려면 공정위, 법무부, 금융위원회, 국민연금, 시민단체, 학계, 우리 포럼 등 협의체를 만들고 공정위가 주축이 돼 새로운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동일인 제도는 미래가 아닌 경제력 집중을 제어해야 하는 당장 현재의 목적을 달성하려는 것이다. 우리 포럼은 이를 인정하되 개인이 아닌 법인을 동일인으로 지정하자고 제안한다. 개인이 지배력을 남용하는 등 과도기적 혼란이 있을 수 있다. 이는 우리 사회가 감당해야 할 리스크다. (불미스러운) 사건이 일어난다면 이사회와 주총으로 지배 총수의 경제력 남용 현상을 막으면 된다. 법 외적인 총수에 의해 기업이 지배당하는 건 매우 후진적인 구조다.”

주주와 이사회가 회사를 제대로 견제할 수 있을지에 대해선 우려의 시선이 있는 게 현실이다.
“이제는 주주들이 막을 수 있는 여건이 갖춰졌다. 소액주주 연대도 많아졌으며 대부분 기업은 주주의 감시를 받고 있다. 모든 주주가 단타를 치는 건 아니다. 장기 투자하는 주주도 있다. 이들은 기업 경영에 관심이 많아 기업 가치가 훼손된다면 적극 대응한다. 회사에 피해를 줬다면 주주 대표 소송으로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있다. 규제는 주주 가치를 올리고 국민 복리를 증진하는 방향으로 가해져야 한다. 동일인 제도보다 주총에 의한 규제, 상법에 의한 규제가 이 방향과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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