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철근 공장 한가운데 스마트팜 만든 대한제강 | “공장에서 버려지는 폐열로 오이·토마토·딸기 키운다”

부산=김우영 기자 2023. 9. 4.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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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 부산 사하구 대한제강 신평공장 한가운데 있는 유리 온실과 내부. 사진 대한제강 3 유리 온실에서 수확한 피콜리노. 사진 김우영 기자

8월 9일 찾은 부산 사하구 대한제강 신평공장. 정문에 들어서자, 야적장에 쌓인 쇠막대 ‘빌릿(billet)’ 더미가 이곳이 철근 생산 공장임을 한눈에 보여 줬다. 야적장 뒤 압연 공장에는 30m 높이의 굴뚝이 솟아 있었는데, 굴뚝과 연결된 파이프라인을 눈으로 따라가 보니 반투명 유리 건물과 이어져 있었다. 공장 관계자에게 건물의 정체를 물어보니 “채소와 과일을 키우는 유리 온실”이라고 했다. 철근 공장 한복판에 유리 온실이라니. 그 규모만 무려 4400㎡(약 1330평)에 달한다.

섭씨 35도를 넘어서는 덥고 습한 야적장과 유리 온실 내부는 딴판이었다. 실내 온도는 섭씨 25도 안팎을 유지했고 습도도 낮아 쾌적했다. 마침 온실 안쪽 작물 재배 구역에선 ‘피콜리노’라는 품종의 오이 수확이 한창이었다. 국내 농가에서 주로 재배하는 오이와 달리 짧고 뭉툭한 게 특징이다. 이곳 직원이 방금 딴 피콜리노를 껍질째 베어 물자 ‘아삭’하는 소리와 함께 과육이 터져 나왔다. 모두 유기농으로 재배하고 있어 안심하고 바로 먹을 수 있다고 한다.

이곳에서 생산하는 피콜리노의 양은 3.3㎡(1평)당 150㎏ 규모다. 일반 노지(露地) 대비 단위면적당 생산량이 최대 2.5배가량 많다. 단순한 온실이 아니라 스마트팜 시스템으로 온습도뿐 아니라 양분과 수분을 통제하는 게 비결이다. 스마트팜이란 정보통신기술(ICT)을 접목해 원격 및 자동으로 작물을 키우는 과학 기반의 농업 방식을 말한다. 다른 구역에서 재배 중인 방울토마토와 딸기 역시 수확량이 노지보다 2배가량 많다는 게 이곳 직원의 설명이다.

그러나 아무리 스마트팜이라고 해도 1000평이 넘는 유리 온실의 온습도를 유지하려면 냉난방 비용이 상당할 수밖에 없어 보였다. 실제로 전력만 활용해 온실을 냉난방할 경우 매달 1000만원의 비용이 필요할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날 이곳의 전력 사용량은 ‘0원’에 가깝다는 게 대한제강 관계자의 설명이다. 그 비결은 유리 온실과 파이프로 이어진 압연 공장 굴뚝에 있었다. 바로 공장에서 나오는 버려지는 열, ‘폐열(廢熱)’이었다.

철근 뽑아내는 열기로 온실 냉난방

대한제강 압연 공장에서 생산되는 철근의 양은 연간 240만t에 달한다. 스크랩(고철)을 녹여 쇳물을 만들고 이를 통해 생산된 빌릿을 액화천연가스(LNG)를 활용한 섭씨 1600도의 고열로 가열해 부드럽게 만든 뒤, 회전하는 롤링밀(압연 기계) 사이에 빠르게 밀어 넣으면 된다. 그럼 일정한 두께의 철근이 뽑아져 나온다. 밤낮으로 뜨거운 열기가 공장 굴뚝을 타고 쉼 없이 뿜어져 나오는 이유다. 이때 굴뚝에서 나오는 열기의 온도가 섭씨 300도에 가깝다. 대한제강 관계자는 “매년 회사의 네 개 공장에서 철근 생산을 위해 사용하는 LNG 사용량만 4800만㎥인데, 금액으로 따지면 500억원”이라고 설명했다. 1989년 압연 공장이 문을 연 뒤로 대한제강은 30년 넘게 이 폐열을 버려온 셈이다.

마침 미래 먹거리를 고민하던 회사에서 직원들을 대상으로 새로운 사업 아이디어를 공모했고, 이 공장 폐열을 활용해 스마트팜 사업을 해보자는 아이디어가 나왔다. 신동명 당시 경영기획팀장이 제시한 이 아이디어는 2021년 9월 대한제강의 신규 사업으로 정식 채택, 2022년 5월 야적장 위에 유리 온실을 착공해 올해 1월 완공됐다.

폐열은 유리 온실의 냉난방에 활용된다. 굴뚝에서 나온 고온의 배기가스를 파이프로 끌어와 우선 300t짜리 물탱크 안의 물을 데운다. 섭씨 0도에서 70도까지 물의 온도를 올리는 데 12시간이면 충분하다. 겨울에는 이 온수를 유리 온실 바닥에 설치된 파이프 안으로 흘려보내 복사열 방식으로 실내를 데운다.

냉방에는 흡수식 냉동기를 사용한다. 이때도 온수가 필요하다. 흡수식 냉동기는 저압일 경우 낮은 온도에서도 물이 증발하는 원리를 이용해 상온의 물을 차갑게 식히는 역할을 한다. 피부의 땀이 기화하면서 주변의 열을 흡수해 시원해지는 것과 같은 원리다. 이때 차갑게 식은 물에 바람을 쐬어 온실 내부를 시원하게 만든다. 이 과정에서 증발한 수분을 흡착제가 흡수하는데, 이를 말려 재사용하기 위한 탈착 공정에서 외부 열원인 온수가 필요하다. 덕분에 대한제강은 공장이 가동하는 날이면 계절에 상관없이 최소한의 에너지로 작물을 재배하는 데 최적의 환경을 만들 수 있다. 대한제강은 앞으로 태양열 패널을 설치해 외부 전력원으로부터 완전한 독립을 추진할 방침이다.

“타 공장에도 폐열 활용 솔루션 제공할 것”

대한제강이 반년 이상 유리 온실에서 재배에 성공한 작물은 토마토, 파프리카, 오이, 딸기 등이다. 지금은 파파야와 바나나 같은 열대 과일뿐 아니라 바질 등의 잎채류도 실증 목적으로 재배 중이다.

다만 유리 온실에서 재배한 작물을 팔아 수익을 내겠다는 계획은 아니다. 작물 사업으로 수익을 내는 게 쉽지 않기 때문이다. 대신 대한제강은 자사처럼 공장의 폐열을 활용할 수 있는 공장들에 유리 온실 같은 스마트팜을 적용할 수 있도록 일명 ‘폐열 활용 솔루션 비즈니스’ 모델을 구축하고자 한다. 대한제강 관계자는 “정부 부처뿐 아니라 에너지 공기업 등에서 폐열 활용 스마트팜과 관련해 많은 문의가 들어오고 있다”며 “기업에 온실을 구축해 주는 것을 넘어 우리가 온실을 위탁받아 운영하는 사업까지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글로벌 시장조사 업체 BIS리서치에 따르면 세계 스마트팜 시장 규모는 올해 206억달러(약 27조6143억원)에서 2026년 341억달러(약 45조7111억원)까지 성장할 전망이다.

Plus Point
Interview ‘폐열 스마트팜’ 기획한 신동명 대한제강 스마트팜사업개발팀 팀장
“국내 최대 탄소 배출 산업이지만 탄소 발자국 감축에 기여”

신동명 대한제강 스마트팜사업개발팀 팀장전 대한제강 기획팀장, 미국 공인회계사 사진 김우영 기자

“국내에서 폐열을 활용한 스마트팜은 대한제강이 1호입니다.” 대한제강 신평공장에서 만난 신동명 스마트팜사업개발팀 팀장은 유리 온실을 안내하며 이렇게 말했다. 사내 아이디어 경진대회에서 폐열 스마트팜 사업 모델을 제안한 인물이 바로 신 팀장이다. 어떤 계기로 이런 아이디어를 냈는지, 앞으로의 사업 계획은 무엇인지 물었다. 다음은 일문일답.

대한제강은 왜 공장 한가운데 농장을 만들었나.
“철강업은 국내에서 가장 많은 탄소를 배출하는 산업으로 꼽힌다. 점점 심각해지는 기후 위기와 식량 위기 상황에서 공장의 폐열을 활용한다면 탄소 발자국을 줄이는 것은 물론 식물의 생육 환경을 조성하는 데도 적합하다고 봤다. 마침 철강업 외 신규 사업을 고민하던 회사의 니즈와도 맞아떨어졌다.”

참고한 사례가 있나.
“일본에서 공장 폐열로 온실을 운영한 사례가 있었다. 한국에서도 공장에서 발생한 폐열을 인근 농가에 공급하겠다는 계획이 있었지만 실현되지 않았다. 폐열 활용 스마트팜은 대한제강이 1호 사례다.”

온실에서 재배한 작물을 팔아 수익을 낼 수도 있는데.
“개인이 아닌 기업이 온실 작물 재배를 통해 경제성을 갖추려면 그 규모가 최소 1만9800㎡(약 6000평) 이상은 돼야 한다. 지금 유리 온실은 일종의 실험실에 가깝다. 다양한 작물을 재배해 쌓은 데이터로 유리 온실에서 키우기에 가장 적합한 작물을 찾아 최적의 비즈니스 모델을 구축하는 게 목표다.”

식물 공장 사업도 염두에 두고 있나.
“태양 빛 대신 발광다이오드(LED) 조명으로 작물을 재배하는 식물 공장의 경우 당장은 경제성이 없다. 초기 투자비와 운영 비용을 고려할 때 지속 가능성이 떨어진다. 반면 온실은 태양 빛을 무료로 사용할 수 있다. 온도와 습도만 잘 조절하면 된다. 어쩌면 10~20년 뒤 기술 발전으로 식물 공장의 경제성이 확보될 수 있다. 사업 가능성은 열어두고 있다.”

앞으로의 계획은.
“한국은 지역별로 발전소뿐 아니라 대규모 공장도 많다. 폐열 에너지원이 충분하다는 뜻이다. 대부분 공기 중으로 버려지는 폐열의 활용도는 무궁무진하다. 대한제강의 성공적인 스마트팜 케이스를 바탕으로 폐열을 활용하기 원하는 다양한 산업체에 맞춤형 솔루션을 제공해 주는 게 우리의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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