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승기] 포르셰 카이엔 | 스포츠카 특성 담은 SUV…더 빠르고 정교해졌다
포르셰 카이엔은 브랜드 간판 제품이다. 지난해 전 세계 판매된 30만9884대의 포르셰 가운데 9만5604대(30.9%)를 차지해 가장 많이 팔린 포르셰에 등극했다. 국내에서는 인기가 더 높다. 지난해 판매된 8963대의 포르셰 중 4102대(45.8%)가 카이엔이었다.
포르셰가 1990년 후반 처음으로 스포츠유틸리티차(SUV)를 만든다고 했을 때 시장에서는 부정적인 반응이 컸다. 스포츠카만을 만들어 온 포르셰의 전통성을 버렸다는 이유에서다. 지금 카이엔은 포르셰가 재정적으로 어려웠을 때, 회사의 매출을 책임진 효자 상품으로 여겨진다. 1세대 신형이 등장했을 때는 마침 SUV가 인기를 끌고 있기도 했다. 포르셰의 완벽한 캐시카우(Cash Cow·현금원)가 바로 카이엔인 셈이다. 카이엔의 이름은 매운 고추를 의미한다. 이 때문에 SUV면서도 브랜드의 스포츠카 특성을 담아, 아주 매콤한 달리기 실력을 뽐낸다. 성능에 따라 여러 제품으로 판매되는데, 어떤 차를 차든 포르셰만의 역동적인 주행 감성을 보여준다. 8월 17일 국내 출시된 신형 카이엔을 지난 5월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에서 먼저 경험해 봤다.
카이엔의 크기는 길이 4930㎜, 너비 1983㎜, 높이 1698㎜다. 휠베이스(앞바퀴 중심과 뒷바퀴 중심 사이의 거리) 길이는 2895㎜다. 경쟁차로 꼽히는 BMW X5와 비교해 너비는 13㎜ 넓고, 높이는 67㎜ 낮다. 같은 SUV지만 카이엔이 비율적으로는 더 스포츠카 감성에 가깝다. 스포츠카는 넓고 낮게 디자인되는 것이 특징이다.
기존 제품과 비교해 외관 디자인의 변화는 크지 않다. 이전 제품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던 부분은 그대로 두고, 부족했던 점을 보완하는 데 힘썼다. 새로 나온 제품은 3세대의 부분변경 모델로, 보통 부분변경 모델은 극적인 디자인 변화가 없는 것이 일반적이다. 오래된 자동차 만들기의 공식 같은 것이다.
포르셰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스포츠카 911의 디자인이 곳곳에 엿보인다. 911처럼 전면에 직선적인 연출을 통해 인상을 또렷하게 가다듬었다. 새롭게 장착된 HD 매트릭스 헤드램프는 미래적인 느낌을 준다. 차종에 따라 차체의 일부와 휠 디자인도 변화한다. 또 원하면 얼마든지 자신이 원하는 디자인이나 옵션을 적용할 수 있다. 후면도 911 디자인이 여기저기 들어갔다. 램프의 형상이 911을 꼭 닮았다. 직선이 강조된 전면과 달리 뒤쪽은 풍만하게 그려졌다. 앞쪽은 날렵하면서 뒤쪽은 풍부한 볼륨을 보여주는 이런 디자인도 전형적인 스포츠카 디자인이다.
실내는 전기 스포츠카 타이칸 따라 하기
실내는 포르셰가 지속적으로 추구하는 디지털화를 단번에 볼 수 있도록 변화했다. 순수 전기 스포츠카 타이칸을 따라간다. 앞으로 모든 포르셰의 실내가 이처럼 변한다고 한다. 기어 레버가 원래 있었던 자리에 있지 않고 타이칸처럼 중앙 디스플레이의 왼쪽에 자그맣게 들어간다. 기어를 조작하는 느낌이 많이 사라진 셈이다. 자동차 발전에 따른 시대상이 기능과 디자인에 적용된 것이다.
새로운 기어 레버는 손맛이 떨어진다. 이 차가 스포츠카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기어를 직접 움직이며 속도를 조절하는 그런 맛이 덜하다. 계기판과 중앙부, 조수석에 각각 들어간 디스플레이는 성능과 기능의 시각화로 대변되는 최신 자동차 실내 디자인이다. 조수석 디스플레이는 운전석에서 보이지 않아 운전 중이라도 시선이 가지 않아 안전하다. 다만 너무 많은 기능을 가진 탓에 머리가 어지러울 정도다. 여러 기능을 넣는 것보다 꼭 필요한 기능만 추렸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기본 모델인 카이엔은 V6 가솔린 엔진을 얹었다. 출력(최고 360마력)이 이전보다 조금 올랐고, 토크(51㎏f·m)도 향상됐다. 변속기 무게를 덜고, 기술적 완성도를 높여 경쾌한 움직임을 내는 것이 인상적이다. 출발 가속의 질감이 아주 매끄럽다. 순간적인 속도를 내야 하는 추월 상황이나 고속 달리기를 할 때도 이 차는 아주 능수능란한 모습을 보인다. 시승이 이뤄진 오스트리아의 일반 도로는 폭이 좁고, 굴곡이 잦은데, 이런 환경에서도 큰 몸집을 민첩하게 움직이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게다가 시승 당일에는 비가 왔다. 노면이 다소 미끄러울 법도 했는데, 이미 속도가 붙은 차체는 자세를 아주 안정적으로 잡아냈다.
함께 경험한 E-하이브리드(국내 내년 출시 예정)는 전기모터가 적극적으로 성능에 개입해 질주 쾌감이 더 크다. 홀가 게어만 포르쉐코리아 사장은 이에 대해 “전기모터를 장착하고 있지만, 스포츠카 유전자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전기모터만 움직여 단독으로 최대 90㎞(WLTP 기준)를 달릴 수 있는 고용량 배터리가 장착된 탓에 차가 약간 육중한 느낌이 든다. 둔하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오히려 고속에서는 무게에 따른 속도감이 생긴다. 이런 무게는 곡선 주로 등에서 원심력이나 가감속 때의 관성을 더욱 커지게 만들어 불안한 마음이 생기기도 하는데, 카이엔은 이마저도 모두 조율해 내며 아주 잘 달린다.
8단 자동변속기는 스트레스가 거의 없다. 상당히 민첩하게 속도를 조절하기 때문에 높은 속도에서도 여유만만이다. 저속에서도 기민하게 차가 반응한다. 스티어링휠(운전대) 뒤쪽의 패들시프터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면 수동 운전의 재미도 느낄 수 있다.
쾌적함 추구⋯매끄러운 달리기 느낌
이번 카이엔의 개발 콘셉트는 쾌적함이다. 그만큼 주행의 전 영역에서 매끄러운 달리기가 가능했다. 특히 앞바퀴처럼 각도를 틀 수 있는 뒷바퀴 조향 시스템은 차의 전반적인 민첩성을 크게 올리는 효과를 낸다. 속도에 따라 곡선 주로에서 뒷바퀴가 꺾이는 방향이 달라진다. 어댑티브 에어 서스펜션은 승차감을 부드럽게 하면서도 차의 거동을 단단하게 잡는다. 도로의 상처나 작은 돌멩이 등에서 오는 충격을 모두 흡수하는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국내에서 옵션으로 장착 가능한 HD 매트릭스 헤드램프는 시야 확보 외에도 도로 상황을 실시간으로 인식해 반응한다. 3만2000개의 마이크로LED가 내는 빛은 밝고, 정교하다. 도로 상황에 맞게 빛을 조절하기 때문에 마주 오는 차의 운전자가 눈이 부실 일이 없다. 카이엔 가격은 1억3310만원, 카이엔 쿠페는 1억3780만원이다. 기본 가격이 과거에 비해 13% 올랐는데, 뒷바퀴 조향 시스템(300만원), 20인치 휠(230만원), 에어 서스펜션(540만원), 매트릭스 LED 헤드램프(290만원) 등의 옵션을 기본화했다. 이 때문에 옵션을 고려하면 기존에 비해 오히려 2% 가격이 떨어진 효과가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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