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완의 사이언스카페 | [Interview] 페트라 요라시 유럽종자협회 박사 | “기후변화·식량 안보 대안은 유전자 교정 작물”
7월 7일(이하 현지시각) 유럽위원회(EC)는 ‘유전자 교정 작물(gene edited crop)’에 대한 규제를 완화하는 내용의 법안을 제안했다. 유전자 교정은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 같은 효소 단백질로 유전자를 구성하는 특정 염기들을 자유자재로 잘라내고 교체해 원하는 특성을 구현하는 기술이다. 유럽은 유전자 교정 작물은 기존 육종 방식으로 개발한 식물과 차이가 없다고 보고 유전자 변형 농작물(GMO)로 분류하지 않기로 했다. 일반 농작물과 같이 별도의 표시 없이 자유롭게 개발하고 판매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번 규제 완화는 유럽이 다른 곳보다 GMO를 강력하게 규제했다는 점에서 큰 변화로 받아들여졌다. 유럽종자협회(Euroseeds)의 식물육종혁신기술 대변인인 페트라 요라시(Petra Jorasch) 박사는 “2001년에 나온 GMO 법으로 유전자 교정 같은 혁신 기술들을 규제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의견을 받아들였다”고 말했다. 요라시 박사는 독일 함부르크대에서 식물분자생물학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20년 이상 종자 정책 부문에서 활동했다. 8월 6~11일 대전컨벤션센터에서 열린 국제식물생명공학총회에 참석하기 위해 방한했다.
기존 육종과 같은 방식, 속도·효율 높여
요라시 박사는 “GMO와 유전자 교정 작물 모두 식물의 유전자를 바꾸지만,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고 말했다. GMO는 농작물에 박테리아처럼 전혀 다른 생물의 유전자를 가져와 삽입하는 방식이지만, 유전자 교정은 작물의 원래 유전자를 이용한다는 점에서 기존 육종과 다를 바 없다는 것이다.
인류가 농업을 시작한 이래 지금까지 해온 전통 육종법은 서로 다른 유전자형을 가진 작물을 교배해 새로운 특성을 부여하는 방식이다. 이를테면 크고 맛이 없는 양배추 품종과 작고 맛있는 양배추 품종을 교배시켜 크고 맛있는 양배추를 만드는 식이다. 유전자 교정은 양배추의 크기와 맛을 좌우하는 유전자를 섞어 육종과 같은 효과를 낸다.
요라시 박사는 “기존 육종을 이용해도 병충해에 강하고 수확량이 높은 품종을 개발할 수 있지만, 유전자 교정은 육종의 속도와 효율을 훨씬 높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육종은 작물이 다 자라야 결과물을 알 수 있어 10년 이상 걸리지만, 유전자 교정은 이미 관련 유전자를 알고 섞기 때문에 원하는 결과물을 바로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유럽이 유전자 교정 작물에 대한 규제를 완화하기로 한 배경에는 전 지구적인 기후변화로 기상이변이 심각해지고 병충해가 늘고 있는 상황이 있다. 이로 인해 증가하는 인구에 충분한 식량을 제공하기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세계농업기구(FAO)는 지구 인구가 70억 명에서 2050년 96억 명으로 늘어나면 농업 생산량이 지금보다 70% 늘어야 한다고 발표했다. 가장 현실적인 대안은 GMO지만 소비자의 거부감이 크다. 기존 육종과 같은 원리인 유전자 교정은 그 대안이 될 수 있다.
요라시 박사는 “유전자 교정은 수확량을 높인 작물을 개발할 수 있는 동시에 이전보다 농약을 덜 쓰는 지속 가능한 농업을 실현할 수 있다”고 말했다. 독일 50개 육종 업체가 공동으로 곰팡이병에 강한 밀을 유전자 교정 방식으로 개발하고 있다. 요라시 박사는 “독일의 유전자 교정 밀 품종이 유럽의 밀 재배지 절반에 적용되면 곰팡이를 죽이는 농약 살포를 2500만 번 줄일 수 있다”며 “농약을 덜 쓰고도 같은 수확량을 얻을 수 있어 농업의 지속 가능성이 커진다”고 말했다.
미국, 일본은 제품 출시, 영국도 규제 완화
미국과 일본, 영국은 유럽보다 앞서 유전자 교정 작물에 대한 규제를 완화했다. 미 농무부는 2016년 유전자 교정으로 변색을 예방한 양송이버섯을 GMO 규제 대상에서 제외했다. 일본 사나텍 시드는 2021년 유전자 교정으로 가바(GABA) 성분을 다섯 배까지 늘린 토마토를 시판했다. 신경전달물질인 가바는 혈압을 낮추고 스트레스를 완화하는 데 도움을 준다. 영국은 3월 유전자 교정 식품 개발과 판매가 가능하도록 법을 바꿨다. 유럽은 작물만 규제를 완화했지만, 영국은 가축까지 포함했다.
하지만 유럽사법재판소는 2018년 유전자 교정 작물이 GMO에 관한 법률에 해당한다고 판결했다. GMO와 같이 규제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다가 2021년 유럽위원회 집행위원회가 GMO 법률이 유전자 교정 작물에 적합하지 않으며, 혁신적인 작물 개발에 걸림돌이 된다는 정반대 결론을 내렸다.
요라시 박사는 “유럽은 5년 전부터 기후변화와 인구 증가에 대비해 지속 가능한 농업에 대한 논의를 시작했다”며 “최근 전 세계적인 가뭄이나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으로 인한 식량 안보 문제로 그 중요성이 더 주목받았다”고 말했다.
특히 소비자도 유전자 교정 작물에 대한 시각이 많이 바뀌었다. 요라시 박사는 “소비자가 받아들여야 시장이 존재할 수 있다”며 “일반인 대상 조사에서 소비자가 GMO와 유전자 교정 작물을 확연하게 구별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여기엔 일본의 가바 토마토나 미국에서 나온 오래 가는 샐러드처럼 소비자가 바로 혜택을 체감할 수 있는 유전자 교정 식품들이 한몫했다.
유럽위원회가 법안을 제출하면 유럽의회가 논의해서 최종적으로 법을 제정한다. 요라시 박사는 “법 제정 시기는 2026년이나 2027년 정도로 생각하고 있다”며 “재배 시험 과정을 감안하면 유전자 교정 신품종 출시는 2030년쯤 가능하다”고 말했다.
“한국 정부안은 ‘약한 GMO’로 규정, 한계”
일부에서는 유전자 교정 작물이 GMO처럼 소수의 다국적 종자 회사가 시장을 장악하는 도구가 될 것이라고 우려한다. 요라시 박사는 정반대라고 말했다. 그는 “GMO는 규제가 워낙 까다로워 중소 종자 업체가 상용화 문턱을 넘기 어렵지만, 유전자 교정은 개발 비용과 시간이 훨씬 적게 들어 중소기업에 적합하다”고 말했다.
실제로 GMO 한 종을 상업화하기까지 10년 이상 1000억원 넘는 투자가 필요해 다국적 기업이 아니고서는 시장 진입 자체가 어려웠다. 반면 유전자 교정은 품종 개발비가 3억~5억원 정도여서 한국을 포함해 전 세계 종자 업체가 뛰어들 수 있다는 것이다. 요라시 박사는 “3년 전 유럽종자협회 조사에서 중소업체 80%가 이미 유전자 교정 작물을 연구하고 있다고 답했다”고 말했다.
우리 정부도 유전자 교정에 대한 규제를 완화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하지만 미국이나 일본, 유럽보다 규제 완화 폭이 작다는 말이 나온다. 요라시 박사는 “한국은 미국이나 유럽과 달리 유전자 교정 작물을 좀 가벼운 GMO로 보고 덜 규제하자는 쪽으로 생각한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실제로 유전자 교정에 대해 일본은 ‘게놈(유전체) 편집’이라 하고 유럽은 ‘새로운 유전체 기술(NGT)’이라는 명칭을 쓰지만, 한국 정부 개정안은 ‘신규 GMO’라고 부른다. 또 5개 부처의 위해성 심사 대상에서 제외하는 대신, 7개 부처 대표로 구성된 심사위원회에서 위해성 사전 검토를 하도록 했다.
요라시 박사는 “미국, 유럽은 GMO에 요구되는 규제를 대부분 없앴지만, 한국 정부안은 일부 규제만 완화하는 방식”이라며 “한국 기업들이 세계 유전자 교정 시장에 진출하는 데 걸림돌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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