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칼럼] 무역 전쟁에서 보조금 전쟁으로

앤 크루거 존스홉킨스대 국제관계대학원 교수 2023. 9. 4.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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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16일(이하 현지시각)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백악관에서 열린 ①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시행 1주년 행사에서 “이 법은 미국의 일자리와 경제성장의 가장 큰 동력 가운데 하나”라고 밝혔다. 기후변화 대응을 명분으로 한 대규모 투자를 담은 IRA가 시행된 뒤, 미국 내 투자가 늘고 일자리가 창출됐다고 자화자찬한 것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그러면서 IRA가 ‘제조업 르네상스 법’이라고 불린다며 “왜냐하면 일자리를 미국으로 다시 가져오고, 미국에서 생산하게 만들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필자는 IRA를 비롯해 반도체 칩과 과학법(CHIPS and Science Act·칩스법) 등 미국 정부가 산업 정책을 통해 경제에 개입하면서 각종 부작용에 부닥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일례로 다른 나라가 자국 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또 다른 보호주의 정책을 내세울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유럽연합(EU)은 유럽 중심의 원자재 공급망을 구축하기 위한 ‘핵심원자재법(CRMA)’을 만들어 바이든 정부의 보조금 정책에 맞서고 있다. CRMA는 일명 ‘유럽판 IRA’로 불린다. 필자는 산업 보조금으로 지출되는 자금을 교육과 직업 훈련, 연구 및 인프라 구축에 사용하면 글로벌 산업 경쟁력을 강화하는 데 훨씬 이로울 것이라고 주장한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전임 행정부의 관세와 무역 장벽을 거의 유지하며 많은 경제학자에게 실망을 안기고 있다. 실제로 대부분 전문가의 예측과 달리 미국은 바이든의 ‘바이 아메리칸(Buy American·미국산 구매)’ 정책 같은 보호무역주의 조치를 추가적으로 시행해 자국 소비자와 납세자에게 더 높은 비용을 초래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재임 당시 미국은 철강 수입품에 25%의 관세를 부과하고 수입 알루미늄에 10%의 관세를 부과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중국과 무역 전쟁을 시작했고,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과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환태평양 12개국과 협상한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서 탈퇴했으며,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은 재협상을 통해 ② USMCA(미국·멕시코·캐나다무역협정)로 명칭을 바꿨다.

앤 크루거 존스홉킨스대 국제관계대학원 교수현 스탠퍼드대 국제개발센터 선임연구원, 전 IMF 수석 부총재

트럼프는 세계무역기구(WTO)를 통한 다자간 접근 방식이 훨씬 더 효과적이고 미국 동맹국에 해를 덜 가할 것임에도 불구하고 이런 조치를 일방적으로 결정했다. 그런데 바이든 행정부는 여기서 나아가 친환경 기술과 재생에너지에 대한 수천억달러의 보조금을 포함한 4300억달러(약 576조4150억원) 규모의 IRA와 강력한 미국 반도체 산업 육성을 목표로 하는 2800억달러(약 375조3400억원) 규모의 칩스법을 제정하는 등 전면적인 산업 정책을 통해 경제에 개입하고 있다.

백악관은 칩스법이 미국 내 반도체 생산을 강화하고 ‘수만 개의 좋은 임금의 노조 건설 일자리와 수천 개의 고숙련 제조 일자리’를 창출하는 동시에 수천억달러의 추가 민간 투자를 동원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 법안은 칩 생산의 ③ 리쇼어링(reshoring·생산 기지 본국 회귀)을 촉진하기 위해 연구개발(R&D) 및 인력 교육에 520억달러(약 69조7060억원)를 할당하고 자국 제조 업체에 25%의 세금 공제를 제공한다. 하지만 이 법안은 미국에 기반을 둔 기업에 보조금을 지급함으로써 외국 및 해외 생산 업체를 사실상 차별하는 법안이다. 마찬가지로 IRA는 미국산 전기차 구매자에게 7500달러(약 1000만원)의 보조금을 지급해 미국산 모델이 중국 및 일본 모델과 경쟁에서 보다 유리하게 만들고 있다.

그러나 보조금 정책 시행은 종종 시행 국가에 해롭다는 것을 여러 연구가 증명하고 있다. 이러한 정책은 경쟁을 감소시키고, 혁신을 억제하며, 비용을 높이고, 수입에 의존하는 수출 업체에 불이익을 주는 경향이 있다. 더 심각한 문제는 한 국가가 자국 생산 업체의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보조금을 도입하면 다른 국가가 또 다른 보호주의 정책으로 대응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보복과 맞대응은 다른 국가와 무역 협력국의 경제에 피해를 주게 된다.

이러한 ‘보조금 전쟁’에서 확실한 승자가 없을 것은 이미 분명하다. 상대국이 보복성 보조금을 얼마로 상정하느냐에 따라 원래 국가의 보조금 효력이 전부 혹은 일부 무효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상은 반도체, 배터리, 전기차 같은 분야에서 특히 두드러진다. 예를 들어 유럽연합(EU)은 최근 반도체 산업을 강화하기 위해 430억유로(약 62조6725억원) 규모의 보조금을 승인했으며, 한국과 일본도 국내 칩 생산에 보조금을 지급하는 계획을 발표했다. 한편 이 분야 기업들은 미국에서 IRA 보조금과 세금 공제 혜택을 받기 위해 미국에 시설을 설립하거나 투자하고 있다.

미국이 대부분의 경쟁국을 능가하는 보조금을 지급할 능력이 있음을 고려하면 바이든의 보조금 정책은 자국의 반도체 제조 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대가가 따를 수밖에 없다. 대만 TSMC 설립자인 모리스 창은 최근 전 세계 하이엔드 반도체의 90% 이상이 생산되는 대만보다 미국에서 반도체 제조 비용이 50% 더 비싸다고 예상했다. 그는 미국의 보조금 정책이 이러한 비용 격차를 해소할 수 있을지 회의적이다. 그러나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의 애덤 포즌소장에 의하면 이러한 경제적 ‘디커플링(decoupling·탈동조화)’의 심각한 대가는 앞서 언급된 ‘무역 장벽’보다도 ‘생산성 성장 저하’다.

게다가 산업 보조금으로 지출되는 자금의 상당 부분이 낭비돼 모든 납세자의 부담을 가중할 가능성이 크다. 이러한 자금을 교육, 직업 훈련, 연구 및 인프라 구축에 대신 사용하면 국내 및 전 세계의 산업 경쟁력을 강화하는 데 훨씬 더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유감스럽게도 지나 러몬도 미국 상무부 장관은 최근 칩스법을 다른 국내 산업을 지원하기 위한 예시로 치켜세우고 있다. 다른 국가들도 비슷한 정책으로 대응할 것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과거 트럼프 정부가 중국을 상대로 벌인 ‘무역 전쟁’이 이제는 승자가 없는 소모적인 ‘글로벌 보조금 전쟁’으로 변모한 것으로 보인다.

ⓒ프로젝트신디케이트

Tip

① 백악관은 IRA 시행 1주년을 맞은 8월 16일 IRA의 성과에 대해 전기차 공급망, 태양광 제조 등 총 1100억달러(약 147조4550억원) 이상의 민간 부문 투자 발표와 청정에너지 관련 투자로 일자리가 17만 개 이상이 창출된 점을 꼽았다. 실제로 현대차와 LG에너지솔루션 등이 IRA 시행에 대응해 현재 미국 곳곳에 생산 공장을 짓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한국 기업은 지난 1년간 1억달러(약 1341억원) 이상의 대미 투자 프로젝트를 20건 발표했다. 유럽 기업(19건)과 일본 기업(9건)의 대미 투자보다 많았다.

② USMCA는 미국, 멕시코 ,캐나다 3국 간 재화와 서비스의 이동에 대한 각종 관세·비관세 장벽을 철폐한 자유무역협정이다. 1994년에 발효된 NAFTA를 대체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코트라는 USMCA와 NAFTA의 주된 차이점으로 원산지 규정 강화, 노동 가치 비율 신규 도입 등을 꼽고 있다.

③ 해외에 진출해 있는 자국 기업을 각종 세제 혜택과 규제 완화 등으로 자국에 불러들이는 정책을 일컫는다. 미국 제조업 자국 복귀를 지원하는 단체 ‘리쇼어링이니셔티브’에 따르면 2022년 미국에서 리쇼어링과 외국인 직접투자(FDI)에 따른 제조업 고용은 36만4904명으로 전년 대비 53% 증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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