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나의 시네마 에세이 <85> 캐스트 어웨이] 인생의 파도는 내일 또 무엇을 실어다 줄까
배가 난파됐다. 모두가 가라앉고 당신 혼자 살아남았다. 마침 수영해서 닿을 수 있을 만한 거리에 무인도가 보인다. 찢어진 구명보트 위엔 빵 한 덩이, 연인의 사진이 끼워진 시계, 담요 한 장, 물 한 병 그리고 배구공이 있다. 헤엄을 쳐야 하니 꼭 하나만 가져갈 수 있다. 당신은 무엇을 선택할까.
척 놀랜드의 인생을 지배하는 건 시간이었다. 가장 빠르고 정확한 택배 운송 회사에서 일한다는 자부심으로 척은 1분 1초를 다투며 세계 곳곳으로 출장을 다닌다. 그는 시간을 정확히 지키는 것, 할 수만 있다면 시간을 앞지르는 것이 인생 최고의 가치라고 믿는다. 사랑하는 켈리와 함께 있을 때도 그가 귀 기울이는 것은 ‘빨리빨리 더 빨리’ 하고 다그치는 시계의 초침 소리다.
크리스마스 휴가를 보내고 다시 출장길에 오르는 척에게 켈리는 그녀의 사진을 넣은 오래된 회중시계를 선물한다. 조금 더 여유 있게, 조금 더 느긋한 시간 속에서 켈리를 생각해 주길 바라는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시계를 받아 주머니에 넣은 척은 금방 돌아오겠다는 약속을 남기고 비행기에 오른다.
내일도 태양은 떠오르겠지만, 내일도 일출을 보게 될지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척이 탄 회사 전용기는 항로를 이탈하고 태평양 한가운데서 갑작스럽게 추락한다. 조금 전까지 함께 이야기하며 웃던 동료들은 모두 죽었다. 어느 해변으로 떠밀려 온 척은 혼자 눈을 뜬다.
높은 절벽 위에 올라 내려다본 섬은 으르렁거리는 사자의 이빨처럼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가 겹겹이 에워싼 작은 무인도다. 수평선 끝에서 깜빡이는 불빛을 향해 간절히 손을 흔들어 보지만 배는 곧 멀어진다. 목청껏 외쳐 불러도 별처럼 먼 세상인 듯 그의 목소리는 닿지 않는다. 항로를 벗어난 거리와 시간을 어림잡아 계산해 본 척은 구조될 확률이 희박하다는 걸 인정한다.
그는 구조를 기다리는 대신 구명보트를 타고 먼바다로 나서기로 한다. 트로이 전쟁을 마치고 귀향길에 오른 오디세우스를 오기기아섬에 7년 동안 붙잡아 둔 바다의 님프 칼립소처럼, 홀로 외로웠던 섬은 척과 살기로 결심한 것일까. 파도는 척을 거칠게 내동댕이쳐 해변으로 돌려보낸다. 산호초도 섬의 경비병인 듯 파도에 뒤집혀 곤두박질친 그를 창처럼 찌르고 칼처럼 벤다.
척은 꼼짝없이 섬에 갇힌다. 주머니에서 꺼낸 켈리의 시계만이 그에게 남은 빛이다. 그녀 곁으로 돌아가려면 살아남아야 한다. 하지만 세상 밖으로 한 발만 나와도 먹는 것, 입는 것, 신는 것, 몸을 가리고 잠자리를 펴는 것, 무엇 하나 쉬운 게 없다.
척은 수만 년 전의 원시인처럼 지혜를 짜내 야생에서 생존할 방법을 찾아낸다. 돌도끼를 만들어 단단한 코코넛 열매를 깨 마시고, 나무 창을 만들어 게를 잡는다. 손바닥에 피가 나도록 나뭇가지를 마찰시켜 프로메테우스처럼 불도 피운다.
해변으로 떠밀려 온 택배 상자들 속에는 생존에 아무 쓸모가 없을 것 같은 잡동사니만 들어 있다. 택배는 물건만 전해주는 일이 아니었다. 사람과 사람, 마음과 마음을 이어주는 일이었다. 그런데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 세상 그 자체란다’라고 쓰여 있는 누군가의 생일 축하 카드 문구는 사실일까. 무인도에서의 생존도 아름다운 세상, 그 자체가 될 수 있을까.
누구나 종종 무인도를 꿈꾼다. 연인과 함께하는 달콤한 파라다이스가 아니어도 출퇴근 시간, 정체된 도로의 자동차 안에서 혼자 운전하는 동안, 버스나 지하철에서 이어폰을 끼고 귀를 막는 순간, 우리는 무인도에 오른다. 온종일 참아내야 할 복잡한 인간관계, 하루 종일 견뎌낸 잡음과 소음에서 해방된 시간이다. 하지만 세상과 연결되어 있다는 안도감이 잠깐의 고립을 즐기게 할 뿐이다.
척이 견디기 힘든 것도 외로움이었다. 사진 속 켈리는 저 멀리 반짝이는 밤하늘의 별만큼이나 멀었다. 그에겐 바로 여기, 무인도의 두려움과 막막함을 나눌 친구가 필요했다. 그는 택배 상자에서 꺼낸 배구공에 눈·코·입을 그려 넣는다. 윌슨이란 이름도 붙인다.
4년의 세월이 흘렀다. 서둘 것 하나 없이 척에게 풍요로운 건 시간뿐이다. 그는 이제 어엿한 무인도 생존 전문가다. 물고기 잡기, 불 피우기의 달인이다. 동굴벽화도 그리고 ‘여기에 척 놀랜드가 존재했노라’는 기록도 새겼다. 그에겐 아늑한 동굴이 있고 함께 눈을 마주 보며 이야기하고 웃고 울 수 있는 친구 윌슨도 있다.
이만하면 나쁘지 않지, 뭐, 하고 안주할 즈음, 삶은 또 인간을 시험한다. 선물을 던져 주지만 무엇에 쓸지는 가르쳐주지 않는다. 어느 날, 파도는 낯선 물건 하나를 해안으로 실어 온다. 척의 눈앞에 나타난 건 추락한 기체 일부였다. 보통 사람에겐 재활용조차 불가능한 쓰레기지만 척은 크게 눈을 뜬다. 그것은 척을 가두고 있는 파도를 넘어서게 할 돛이 될 터였다. 그는 뗏목을 만들고 윌슨과 함께 섬을 탈출한다.
1500일이나 품어준 섬이었다. 앞으로도 수십 년, 섬에서 안전하게 살아가야 하는 게 아닐까. 파도를 넘지 못하고 뒤집혀 죽을 수도 있었다. 섬을 벗어나더라도 망망대해를 떠돌다 굶어 죽거나 말라 죽을지도 몰랐다. 그러나 살아남은 이유는 돌아가기 위해서였다. 죽더라도 머물다 죽기보다는 희망 안에서 죽으리라. 윌슨에게도 드넓은 세상을 보여주리라. 척은 힘껏 노를 젓는다.
우리는 때로 낯선 희망보다 익숙한 절망을 택한다. 잘 모르는 기쁨보다 잘 아는 슬픔에 안주한다. 돌아간들 바라던 세상은 아닐지 모른다. 그리워한 사람은 떠나고 없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난 계속 살아갈 거야.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떠오를 거고 파도에 또 뭐가 실려 올지 모르니까”라고 척이 말했지만, 빵이든 담요든, 무엇이 주어지고 무엇을 선택하든 중요한 건 그다음이다.
지금 가진 것보다 더 크고 높은 것, 더 깊고 푸른 것을 찾아 나서지 않는다면 이미 살아 있는 게 아닐지 모른다. 삶은 추락과 상실, 고통과 외로움이 충만한 여정이다. 그걸 알면서도 생명은 절대 멈추지 않는다. 살아있다는 건 나아간다는 것이다. 살아간다는 건, 거친 파도를 넘어 매일 조금씩 더 멀리, 더 넓은 바다를 향해 떠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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