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종도의 음악기행 <74> 윌리엄 크리스티 정원] 바로크 춤곡의 리듬에 흠뻑 젖을 수 있는 신비로운 곳

안종도 2023. 9. 4.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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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방데(Vendée) 지역의 작은 마을 티레(Thiré)에 있는 윌리엄 크리스티 정원. 바로크식 정원을 배경으로 곳곳에서 바로크 음악을 들을 수 있다. 사진 안종도

‘왕의 춤’ ‘마리 앙투아네트’같이 프랑스 바로크 시대 영화를 보면 종종 화려한 궁전을 배경으로 기하학적인 모양으로 다듬은 동화 같은 정원 한가운데서 음악가들이 연주하는 장면이 나온다. 화면 속에는 궁정인들이 장 바티스트 륄리와 장 필립 라모의 화려하고도 우아한 음악을 감상하며 춤을 추는 모습이 이어진다. 필자는 이를 보며 ‘저 아름다운 음악을 저런 공간에서 들으면 과연 어떤 느낌일까’ 상상하곤 했다. 이후 프랑스 베르사유 궁전에 갔을 때 투어를 담당했던 가이드는 정원 곳곳에서 실제로 연주가 이뤄지기도 했다고 설명했었다. 륄리의 서신을 비롯해 당시 와토 등 궁정 화가들이 그린 그림에도 정원에서 연주하는 모습을 자주 찾아볼 수 있다.

안종도연세대 피아노과 교수,독일 함부르크 국립음대연주학 박사, 전 함부르크국립음대 기악과 강사

어느 날 프랑스를 방문한 한 친구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친구는 바로크 양식 정원 한가운데 하프시코드가 놓여 있고, 그 옆에 노래하는 성악가들과 함께 연주하는 현악 연주자들이 보이는 사진을 보내줬다. 주위에 둘러앉은 관객도 보였다. 필자가 그간 영화에서 보았던 장면과 그 관객의 다른 점은 17~18세기 코스튬 대신 반팔 티셔츠와 청바지를 입고, 하이힐 대신 운동화와 샌들을 신고 있었다는 것뿐이었다. 그 친구는 프랑스 방데(Vendée) 지역의 티레(Thiré)라는 작은 마을에 있는 윌리엄 크리스티 정원에서 열리는 음악 축제에 참가 중이었다.

윌리엄 크리스티는 우리 시대 현존하는 바로크 음악 거장 중 한 명일 것이다. 하프시코디스트이자 지휘자, 또 레 자르 플로리상(Les Arts Florissants)이라는 세계 최고의 바로크 음악 전문 단체를 창단한 이다. 자신의 이름과 단체의 이름을 내걸고 전 세계 곳곳에서 축제와 음악회를 개최하고 있다. 한국에도 종종 찾아와 관객의 호평을 받고 있다.

자연을 사랑하고 특히 정원에 많은 관심을 보였던 크리스티는 1985년 우연히 방문한 프랑스 방데 지역의 티레에 있는 17세기 빌라 건물을 보게 됐다. 그는 이 건물을 보자마자 즉시 한 아이디어가 떠올랐고, 거기서 자신이 무엇을 원하고 무엇을 원하지 않는지 분명히 보았다고 했다. 그는 이 건물 주위로 황량하게 방치됐던 부지에 그간 꿈꿔왔던 정원을 실현하기로 한다. 이 정원이 인간의 손으로 빚어낸 작품이 되길 바랐던 그는 조경사 소피 마트랑쥬(Sophie Matringe)와 함께 4헥타르에 달하는 부지에 프랑스 바로크 양식과 이탈리아 매너리즘 양식이 혼합해 깃든 아름다운 정원을 꾸려 그의 꿈을 실현했다. 이후 2012년부터 그는 자신의 단체 레 자르 플로리상과 함께 이곳에서 음악 페스티벌을 개최하고 있다.

윌리엄 크리스티와 레 자르 플로리상이 세계적으로 명성을 얻고 있는 것에 반해 이 정원과 축제를 알고 있는 이들은 그렇게 많지 않은 듯하다. 이유는 바로 이 정원의 위치 때문일 것이다. 프랑스 수도 파리에서 남서쪽으로 약 400㎞ 떨어진 곳이고 티레에서 가장 가까운 공항이 약 100여㎞ 떨어져 있는 낭트(Nantes) 국제 공항이다. 문제는 낭트에서 티레까지 타고 갈 만한 마땅한 대중교통 수단이 없다는 것이다. 기차와 버스 편도 없는 워낙 작은 마을이고, 영어로 안내도 잘 안 돼 있다. 숙박 시설 및 편의 시설도 부족한 탓에 프랑스에 거주하는 사람이 아니면 쉽게 찾아갈 용기가 나지 않을 것이다.

필자도 몇 번 가려고 시도했으나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도 있었고 여러 일정으로 바빴다. 사실 진짜 문제는 따로 있었는데, 필자는 장롱면허인지라 운전해서 그곳까지 갈 엄두가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행히 이번에 이 페스티벌을 소개해 준 친구가 다시 방문한다기에 비행기를 타고 프랑스 낭트에 도착해 친구가 운전하는 차를 함께 타고 티레에 가게 됐다.

낭트에서 티레로 가는 동안 옥수수밭, 해바라기밭이 사방에 끝도 없이 펼쳐졌다. 산이 없는 완만한 구릉지대에 굽이굽이 펼쳐진 국도를 지나다 저 멀리 오래된 성당 탑에 매달린 종이 보이기 시작했고 곧 티레 마을에 도착했다. 이어서 바로 윌리엄 크리스티 정원으로 향했고 입구에서 예약한 티켓을 찾아 안으로 들어갔다.

친구가 보내줬던 사진처럼, 아니 17세기 유화와 영화에서 보던 것처럼 바로크식 정원을 배경으로 곳곳에서 음악 소리가 들렸다. 정원 세 군데에서 동시에 15분간 연주회가 열렸다. 이후 15분은 관객이 다른 곳으로 이동해 여러 다른 프로그램을 감상할 수 있게 배려했다. 정원 곁에 흐르는 시냇물 앞을 무대 삼아 류트 연주자와 바로크 테너가 17세기 바로크 가곡을 불렀다. 또 다른 곳에서는 윌리엄 크리스티의 하프시코드와 함께 다른 현악 연주자가 나무 그늘에 자리 잡고 트리오 연주를 하고 있었다. 풀밭에 두 다리를 뻗고 앉아 눈을 감고 음악을 감상하며 시간 가는 줄 모르는 동안 이따금 들려오는 바람 소리와 새소리는 음악에 아름다움을 더했다. 정원에서는 오전부터 점심까지 정원 투어 및 아티스트와 대화가 진행됐다. 오후 4시부터 6시 30분까지는 정원 음악회가, 오후 8시부터는 정원의 중앙이나 근처 성당에서 오페라나 독주회 같은 메인 프로그램이 그리고 오후 11시부터는 명상을 겸한 음악회가 자정까지 열렸다.

워낙 바로크 음악을 좋아하고 자주 연주하는 필자지만, 정말 잠자는 시간 빼고 눈 떠 있는 시간 모두 바로크 양식의 정원에서 바로크 음악을 감상하니 음악을 듣지 않는 순간에도 바로크 춤곡의 리듬이 마음속에서 일렁이며 삶의 즐거움을 끊임없이 불러일으키는 것 같았다.

비록 짧았던 2박 3일간 일정이었지만 세상과 단절된 것 같은 이 신비로운 곳에서 관객으로서 조용히 음악에 흠뻑 젖을 수 있어 행복한 시간이었다. 정원 밖을 걸어 나와 다시 정신 없는 도심으로 차를 타고 나오는 길이 생각보다 그리 아쉽지만은 않다. 정신 없이 바쁜 삶이 있기에 또 조용한 평온과 따뜻한 위로를 주는 음악에 대한 갈망이 커지고 그 위로와 갈망은 그에 합당한 대우를 나로부터 받을 테니까 말이다.

Plus Point
윌리엄 크리스티 정원 음악 축제
(Festival Dans les Jardins de William Christie)

사진 안종도

올해 윌리엄 크리스티 정원 음악 축제는 8월 19일(현지시각)부터 8월 26일까지 개최됐다. 매년 8월 2~3번째 주에 보름간 개최되니 내년에라도 만약 방문하려면 홈페이지를 통해 정확한 날짜를 미리 확인하는 게 좋다.

축제는 주로 17~18세기 바로크 음악으로 구성된다. 윌리엄 크리스티, 폴 애뉴 그리고 레 자르 플로리상 단원 같은 유명 뮤지션의 연주를 바로 눈앞에서 감상할 수 있고 연주 중간 정원 한쪽에 서서 그들과 편히 대화할 수도 있다. 페스티벌 공동 감독인 윌리엄 크리스티와 폴 애그뉴는 이 페스티벌의 중요한 목적이 다음 세대 음악가를 길러내는 것이라고 말한다. 뉴욕에 있는 줄리아드 스쿨과 파트너십을 통해 학생들이 이 페스티벌에 참여하도록 하고 또 레 자르 플로리상 단원으로 선발해 커리어를 쌓을 기회를 제공한다고 했다. 실제로 많은 연주에서 다수의 국제적 학생이 참여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특히 오페라 공연에는 전 세계 250여 명의 지원자 중 8명을 선발해 레 자르 플로리상 정규 오페라 공연에 데뷔할 기회도 줬다고 한다. 프로그램 곡목과 연주자 구성에도 인종, 성비 그리고 바로크 음악을 넘어 힙합, 팝, 비보이 등 현대 대중문화와 융합하려는 다양성을 위한 각별한 시도도 보여 인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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