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스크 벗자 대박 … K립스틱 올 1억2천만개 수출
코로나19로 막혀 있던 '글로벌 공급망'이 뚫리면서 흥미로운 트렌드가 감지된다. 재택근무가 끝나고 마스크를 벗으면서 세계적으로 립스틱 수요가 급증했는데, 다양한 색상과 뛰어난 품질로 무장한 한국 제품 판매량이 급증한 것이다. 특히 일본 등 아시아권은 물론 미국과 유럽 등에서도 한국 립밤과 틴트 제품이 'K뷰티'의 상징으로 떠올랐다. 한편에서는 이른바 '짝퉁'을 만드는 중국 공장이 본격 가동되고 항만 운송이 활발해진 영향으로 지난 2~3년간 주춤했던 밀수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주로 롤렉스, 루이비통 등 한국인이 선호하는 명품 카피 제품이다.
국내 색조 화장품 브랜드 롬앤은 일본에서 '립 틴트 맛집'으로 입소문이 나 대박을 터뜨렸다. 특히 롬앤의 '쥬시 래스팅 틴트'는 다양한 색감과 선명한 발색, 예쁜 용기로 일본 화장품 마니아들에게 호평받고 있다. 매년 일본 뷰티 플랫폼 '립스(LIPS)'와 '엣코스메'에서 판매 최상위권을 차지할 정도다. 틴트란 입술에 발라 일정 시간 착색을 유발하는 화장품을 일컫는다.
이 덕분에 롬앤 브랜드를 전개하는 아이패밀리에스씨의 매출도 고공 행진하고 있다. 롬앤의 지난해 매출액은 853억원으로 이 중 수출 비중은 60%가 넘는다. 롬앤의 올해 2분기 일본 매출액도 전년 동기보다 73% 증가했다.
가까운 일본과 중국에만 해당되는 얘기가 아니다. 국산 화장품이 북미와 유럽에서까지 인기를 끌며 전 세계적으로 인기가 치솟고 있다. 값이 상대적으로 저렴하면서도 뛰어난 제품력, K팝을 위시한 한류 인기, 유튜브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활용한 온라인 마케팅 강화로 과거에 비해 K뷰티의 위상과 인지도가 한층 올라간 덕이다.
4일 관세청은 올해 들어 7월까지 립스틱을 비롯한 입술 화장품 수출액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63.5% 늘어난 1억9800만달러로 역대 최대 실적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수출 중량은 3415t으로, 개당 28g이라고 가정하면 약 1억2200만개 분량이다. 지난 한 해 전체 수출량의 86%에 해당한다. 제품 유형별로 립스틱은 2300만개(649t), 틴트·립밤·립글로스 등은 9900만개(2766t)에 달한다.
국가별 수출은 올해 수출액을 기준으로 했을 때 미국이 42.2%로 비중이 가장 높았다. 그 뒤로 일본(15.1%)과 중국(9.5%), 베트남(7.8%), 프랑스(3.9%)가 뒤따랐다. 수출 상위 5개국 중 중국을 제외한 4개국의 1~7월 수출액은 동기간 역대 최대 규모를 기록했다. 미국과 일본, 프랑스의 올해 7월까지 수출액은 이미 지난해 연간 실적을 뛰어넘었다.
룩셈부르크처럼 새롭게 시장을 개척한 국가도 있다. 한류가 일부 팬 중심에서 사회 전반으로 확산한 2018년 이후 국내 화장품 수출국은 매년 전 세계 100개국 이상에 달한다. 또 지난해 122개국에 수출하며 역대 최다 수출국 기록을 쓴 데 이어 올해는 7월까지 125개국에 수출해 관련 기록을 경신했다.
국산 입술 화장품이 수출 호조를 보이는 배경으로 관세청은 코로나19 사태로 감소한 수요가 엔데믹을 맞아 마스크를 벗으면서 정상화된 점을 꼽았다. 여기에 불경기에 비교적 저렴하면서도 심리적 만족도가 높은 작은 사치 성격의 '립스틱 효과'가 나타났다고 풀이했다.
또한 입술 화장품을 수출하고 있는 주요국 중 한국만 높은 수출 증가세로 순위가 상승한 점을 짚고 한류의 영향력을 요인으로 지목했다.
국내 최대 화장품 기업인 아모레퍼시픽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립밤의 성장세가 두드러진다고 밝혔다. 지난해 7월부터 올해 6월까지 아모레퍼시픽그룹의 주요 립밤 제품들은 북미에서 전년 대비 195% 늘어난 매출을 올렸다. 특히 세계적 K팝 스타인 블랙핑크의 멤버 제니가 모델인 브랜드 '헤라'는 대표 립밤 제품인 '헤라 센슈얼 스파이시 누드밤'의 판매량이 같은 기간 191%나 증가했다.
또 눈에 띄는 곳은 롬앤과 같은 중견·중소 화장품 업체다. 클리오, 라카, 티르티르, 조선미녀 등 국내 중견·중소 화장품 업체들의 브랜드도 해외에서 인기를 얻고 있다. 클리오는 인기 걸그룹 아이브의 안유진을 모델로 기용해 미국과 일본, 동남아시아에서 입지를 넓히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K뷰티가 잘나가자 화장품 제조업체도 특수를 누리고 있다. 국내 대표 화장품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제조자개발생산(ODM) 업체인 한국콜마와 코스맥스는 올 2분기 매출과 영업이익이 동반 성장해 양사 모두 분기 최고 실적을 냈다. 특히 코스맥스는 올 1~7월 립스틱 제품군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67% 상승했다.
화장품 업계 관계자는 K뷰티의 인기가 전 세계적으로 높아지는 것에 대해 "아무래도 한류 영향이 가장 크다"면서 "K팝과 K드라마, K영화 등이 인기를 끌면서 스타들의 화장법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고 자연스레 한국 화장품 인지도가 올라갔다"고 말했다. 이어 "한국 화장품이 가성비가 좋은 데다 해외 브랜드에 비해 상대적으로 신제품 출시가 빠르다는 점, 유튜브와 SNS를 활용한 마케팅 등이 인기 요인으로 꼽힌다"고 덧붙였다.
[김효혜 기자 / 이진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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