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흑자 무조건 좋다?…내수부진 심해도 발생합니다

유승호 2023. 9. 4.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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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승호의 경제야 놀자
상품 수출입이나 여행수지로
해외로 빠져나간 돈보다
들어온 돈 많을 때 경상흑자
수출보다 수입 더 줄어 생기는
불황형 흑자땐 성장동력 약화
경제 전반에 주름살 키워

한국은 수출로 먹고사는 나라다. 연간 수출액이 국내총생산(GDP)의 3분의 1을 넘는다. 그런데 요즘 수출이 잘 안 된다. 지난달까지 수출은 전년 동월에 비해 11개월 연속 감소했다. 누적 무역적자가 239억7000만달러에 달한다. 경상수지는 흑자를 유지했지만 수출보다 수입이 더 크게 줄어 생긴 이른바 ‘불황형 흑자’라고 한다. 그렇다면 무역수지와 경상수지는 반드시 흑자여야 하는 것일까.

 경상수지와 무역수지는 별개?

경상수지와 무역수지 중 포괄하는 범위가 더 넓은 것은 경상수지다. 무역수지는 상품 수출입 금액만 집계하는 데 비해 경상수지엔 상품 수출입에 더해 여행 운수 등 서비스 거래와 해외 투자에 대한 배당, 이자 등이 포함된다. 따라서 상품 수출입이 적자를 내더라도 여행수지가 흑자거나 해외 주식·채권에 투자해서 얻는 배당·이자 소득이 높으면 경상수지는 흑자를 낼 수 있다.

경상수지의 범위가 더 넓지만 그렇다고 경상수지가 무역수지를 포함하는 개념은 아니다. 두 가지는 별도 개념이다. 집계 기관도 경상수지는 한국은행, 무역수지는 산업통상자원부로 다르다. 다만 경상수지 세부 항목 중 무역수지와 비슷한 개념이 있다. 상품수지라는 항목이다. 상품수지도 무역수지와 마찬가지로 상품 수출입을 나타낸다. 하지만 집계 방식과 대상에 차이가 있다.

국내 조선사가 해외 선사에서 주문받아 배를 만드는 것을 예로 들어 보자. 국내 조선사가 선금, 중도금, 잔금을 나눠 받으면 상품수지에는 그때그때 받은 금액이 수출로 반영된다. 그러나 무역수지엔 배를 완성해 해외 선사에 넘길 때 수출로 집계된다.

국내 기업의 해외 법인 수출도 상품수지와 무역수지 간 차이를 일으키는 요인이다. 삼성전자가 베트남에서 생산해 미국에 판매한 스마트폰은 무역수지엔 잡히지 않는다. 그러나 상품수지엔 ‘중계무역 수출’ 항목으로 들어간다. 기업의 해외 투자가 늘면서 무역수지에 반영되지 않는 수출이 증가하고 있다. 그래서 무역수지는 적자인데 상품수지는 흑자고, 이에 따라 경상수지도 흑자를 내는 일이 생긴다.

 경기 좋아지면 경상수지는 나빠진다?

경상수지가 흑자라는 얘기는 외국에서 벌어온 돈이 많다는 뜻이다. 이 때문에 경상수지는 흑자를 많이 낼수록 좋다고 생각하기 쉽다. 소비+투자+정부지출+순수출(수출-수입)로 표현되는 GDP 계산식도 이런 오해를 불러일으킨다. 경상수지가 적자, 즉 순수출이 마이너스(-)면 경제성장률이 떨어진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GDP 계산식에서 수입액을 빼는 것은 그 금액이 소비, 투자, 정부지출 중 한 가지에 포함돼 있어 중복 계산을 피하기 위해서다. 다시 말해 경상수지 적자 자체는 GDP 증감과 관련이 없다. 한국은 1960~1980년대 만성적인 경상수지 적자를 내면서도 고도성장을 이뤘다.

불황형 흑자를 우려하는 것도 수입이 줄어드는 만큼 내수 소비와 투자가 부진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지난 5월 ‘최근 경상수지 변동 요인과 시사점’ 보고서에서 “소득이 늘면 외국 상품 수요가 증가해 경상수지 흑자가 감소한다”며 “내수 경기 개선이 경상수지 흑자 폭을 줄인 한 요인”이라고 분석했다. 뒤집어 말하면 경상수지 흑자는 소비 투자 등 내수 경기 부진을 반영하는 신호일 수 있다는 얘기다.

 경상수지와 외환위기의 관계

한국이 경상수지에 민감한 것은 과거 경험의 트라우마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외환위기와 글로벌 금융위기 모두 경상수지 적자가 장기간 지속된 후에 발생했다. 하지만 현재 한국 대외 건전성 지표를 감안하면 한두 해의 경상수지 적자로 외환위기를 맞을 가능성은 크지 않다.

작년 말 기준 한국의 외환보유액 대비 단기 외채 비율은 39%였다. 대외 금융자산에서 대외 금융부채를 뺀 순대외자산은 GDP 대비 46%였다. 외환위기 때는 단기외채가 외환보유액의 세 배에 이르렀다. 글로벌 금융위기 때는 1400억달러의 순대외부채가 있었다.

경상수지 적자가 아무런 문제가 안 된다는 얘기는 아니다. 경상수지 적자가 장기화하면 국내 기업의 생산이 위축되고 환율이 올라 물가 상승 압력이 커진다. 또 순대외자산이 줄어 대외 건전성에 문제가 생긴다. 경상수지 흑자 또는 적자 자체보다는 해외에서 유입된 자본과 외국으로부터 수입한 원자재, 설비를 얼마나 생산적으로 활용하느냐가 더 중요하다. 경제교육연구소 기자 ush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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