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부채비율부터 낮추자"… 자본 취급 영구채 발행 늘었다
재무구조 개선에 효과 있지만
이자부담 크고 차환 리스크도
일반 회사채보다 주의 요구돼
상장사들이 최근 재무구조 개선을 위해 영구채 성격을 띠는 신종자본증권 발행에 나서고 있다. 회계상 자본으로 인정받아 일시적인 부채비율 관리가 용이하지만 금리 부담이 커질 수 있고 추후 차환 작업이 이행되지 않을 시 급격히 재무구조가 악화될 수 있어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4일 증권업계에 따르면 이달 초 풀무원은 30년 만기 전환사채(CB)를 발행하는 데 성공했다. 연합자산관리(유암코)와 키움프라이빗에쿼티, 하일랜드에쿼티파트너스 컨소시엄은 '로하스사모투자합자회사'를 설립해 풀무원이 발행하는 1000억원 규모 CB를 인수했다. CB의 만기 이자율은 8~9.5%로 결정됐다. 발행 후 5년이 경과할 때마다 연복리 2.5%를 가산하는 스텝업(Step up) 조항도 붙어 있다.
영구 CB와 같은 신종자본증권은 주식과 채권의 중간 성격을 띠는 하이브리드 채권을 말한다. 만기가 정해져 있으나 발행사의 결정에 따라 연장할 수 있어 영구채로 여겨진다. 이 같은 특성으로 인해 회계상 부채가 아닌 자본으로 인정돼 발행사의 재무 부담을 줄이면서 자금 조달이 가능한 방법으로 꼽힌다.
풀무원은 이번 조달 자금으로 기존 신종자본대출과 관계사 차입금을 상환할 것으로 알려졌다. 연초 800억원 수준의 신종자본증권 및 신종자본대출의 조기상환권(콜옵션)을 행사하면서 큰 자금을 투입해 유동성이 줄어들자 외부 조달에 나선 것으로 전해진다. 증권가에서는 풀무원의 연이은 영구채 차환 작업이 주가에 부담을 줄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한유정 한화증권 연구원은 "향후 CB 전량 행사 시 20.7%에 달하는 주식 수 증가로 기업가치(밸류에이션) 부담이 가중될 것"이라고 의견을 밝혔다.
풀무원 외에도 유가증권시장에서는 효성화학이 지난달 말 700억원 규모 채권형 신종자본증권을 발행하기로 했다. 만기는 30년, 최초 이자율은 연 8.30%에 달한다. 만기 도래하는 기업어음을 상환하기 위한 조달로 알려졌다. 회사는 지난달과 9월 중 만기 도래하는 기업어음 각각 400억원, 1000억원을 상환할 방침이다. 이번 영구채는 2년 후부터 스텝업 조항이 적용된다. 최초 이자율에서 처음 3년은 3.5%, 다음 5년은 4.5%, 그 이후부터 만기까지 5.5%를 가산하는 식이다. 중도 상환하지 않을 경우 최대 13%대까지 금리가 인상될 수 있어 부담이 크다.
효성화학의 부채비율이 올 상반기 8900%대까지 치솟는 등 재무건전성이 크게 나빠진 만큼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는 분석도 있다.
중견기업뿐 아니라 코스닥의 중소형 업체들도 지분율 희석 없이 운영 자금을 확보하기 위한 수단으로 영구채를 선택하는 사례가 이어지고 있다.
그동안 코스닥 시장에서 영구채를 통한 자본 조달은 흔치 않아 이례적이라는 평가다. 영구채 성격의 CB는 조기상환권과 가파른 가산 금리 조항 등을 고려해 재무가 뒷받침되는 코스피 상장사들이 주로 선택해왔다. 실제로 2012년 비금융 일반기업의 영구채가 최초 발행된 이후 CJ CGV, SK해운, 대한항공 등 대부분 대기업 계열사와 코스피 상장사가 주를 이뤘다. 지난 3월 반도체 패키징 및 테스트 전문기업인 하나마이크론은 30년 만기의 480억원 규모 전환사채를 발행했다. 코스닥 상장기업 최초로 영구 교환사채(EB)를 발행하는 사례도 있었다. 지난 7월 아이티엠반도체는 국내 증권사와 운용사 등의 기관을 대상으로 215억원 규모의 영구 EB를 발행했다. 영구 EB의 대상은 회사가 보유한 자기 주식이다. 회사 측은 올 하반기 수주 물량 증가에 따른 운영 자금 및 신제품 연구개발 자금을 확보하는 차원에서 영구채 조달에 나선 것으로 전해진다. 배터리 공정장비 기업 나인테크도 지난달 영구 CB를 통해 160억원을 조달했다.
지난해 말 흥국생명 콜옵션 사태 이후 기업들의 차환 리스크가 부각된 만큼 신종자본증권 발행을 두고 걱정의 목소리도 나온다. 국내 자본시장에서는 영구채 발행 회사가 중도상환일에 콜옵션을 행사하는 것을 거의 불문율처럼 여기고 있어 이행하지 않을 시 시장에 미치는 여파가 클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발행사가 차환자금을 회사채가 아닌 영구채로 조달하는 경우 재무구조는 유지되지만, 실질적인 재무상태가 개선되지 않을 소지가 있다. 또 일반 회사채 발행을 통해 영구채를 조기상환할 경우 발행사의 재무구조가 급격히 악화될 가능성도 있다. 자산운용업계의 한 관계자는 "영구채는 일반 회사채에 비해 위험이 높은 상품이고 영구채 조기상환 시점에 발행사의 재무구조가 악화될 위험이 있다"며 "최근 기업 경영 환경이 어려워 기존 영구채로 조달한 업체들도 주의가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조윤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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