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법정] '뱅크시 당했다'의 역설
되레 작품가격 18배 뛰는 효과
2018년 10월, 최대 규모 양대 옥션하우스 중 하나인 뉴욕의 소더비 경매 현장. 일 년에 두 차례 전 세계 미술계의 큰손들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작품을 차지하기 위해 입찰 경쟁을 벌이는 가을의 '메이저 세일'이 한창 진행 중이었다. 신원을 철저히 숨긴 채 거리를 전전하며 활동해 '얼굴 없는 예술가'라 불리는 뱅크시의 대표작 '풍선을 든 소녀'의 차례였다.
"땅땅땅!" 경매사가 현재 최고 응찰가를 세 차례 외친 후, 더 이상 (응찰의 표시인) 패들을 드는 이가 없자 낙찰을 알리는 경매봉을 두드렸다. 이때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단상 위에 걸려 있던 작품이 드르륵드르륵 파쇄되기 시작한 것이다. 일순간 정적이 흘렀다. 경매사 직원들도 놀란 표정으로 물끄러미 바라봤다. 절반쯤 찢겨나갔을 때 부랴부랴 분쇄를 멈췄다.
곧바로 뱅크시의 소셜미디어에 영상물 하나가 올라왔다. 자신이 꾸민 일이라는 자백이었다. 언젠가 이 작품이 경매에서 팔려나갈 것을 예상하고 액자 내부에 파쇄기를 설치했으며, 경매 현장에 잠입해 리모컨을 이용해 원격으로 파쇄기를 작동시켰다는 설명이었다.
뱅크시는 예술이 지닌 본연의 가치는 사장된 채 자본화되고 상업화되는 것에 저항한다. 다 함께 향유하고 공유해야 할 예술이 일부 호사가들의 독점 대상이 되는 것에 반발한다. 이름도 얼굴도 숨긴 채 평범한 이웃들, 또는 가난하거나 슬프고 고통받는 이들을 찾아 전 세계를 누비며 야음을 틈타 담벼락에 그림을 그리고 사라지는 이유다.
"파괴하고자 하는 충동도 창조적인 충동이다."(피카소) 그가 자신의 작품을 스스로 파괴한 것 또한 창조적 파괴이자 행위 예술로의 확장이었다. 뱅크시는 작품의 제목도 바꿨다. 더 이상 '풍선을 든 소녀'가 아니라 '사랑은 쓰레기통에 있다'이다. 작품의 의미가 경매장에서 거래되는 순간 쓰레기통에 버려졌다는 풍자였다.
이 사건은 미술계 최고의 화제가 되었다. 소더비 측은 이 도발적인 뱅크시의 예술 철학 및 표현 방식을 빗대 "뱅크시 당했다"고 했다. 작품이 낙찰과 동시에 파괴되었으면 이 훼손된 작품에 대한 책임은 누가 부담해야 할까. 거래가 완료되었으니 낙찰받은 구매자일까, 관리에 실패한 경매회사일까. 정작 작품을 파괴한 예술가 본인은 소재 파악도 안 되니 말이다. 그러나 쓸데없는 고민이었다. 시장은 뱅크시의 의도와는 정반대로 반응했으니까.
2021년 10월, 런던의 소더비 경매장. 절반이 잘려나간 이 작품은 3년 만에 다시 경매에 출품됐다. 낙찰가는 2540만달러(약 301억원). 2018년 140만달러(약 16억5000만원)였던 작품이 3년 만에 무려 18배가 뛰었다. 전체를 파쇄할 계획이었으나 미수에 그친 대가일까. 계획대로 전부 다 파쇄했다면 작품의 가격은 더 올랐을까.
[캐슬린 김 미국 뉴욕주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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