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이코노미스트] 혁신과 보호주의가 공존하는 '산업정책'
철지난 산업정책 재소환
일부 동아시아 국가 빼면
성공사례 그다지 많지 않아
기성세대에게 '산업정책'은 익숙하지만 철 지난 느낌이 물씬한 용어다. 이 용어에 대한 정의는 시기마다 다르겠지만 대체로 '시장 기능이 효율적으로 자원을 배분하는 데 실패했을 때 국민 경제의 전반적인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정부가 개입해 산업 간 자원 배분을 조정하는 정책'을 지칭한다. 대부분의 경제학자들은 산업정책에 대해 더욱 부정적인데 시장 실패보다 정부 실패에 의한 사회적 손실이 더욱 크다고 배워왔기 때문이다. 이렇다 보니 산업정책은 '자유무역'과 '시장주의'에 밀려 근 40년 동안 '장롱면허'처럼 취급돼왔다. 이랬던 산업정책은 최근 시장경제의 메카인 미국과 유럽에서 가장 핵심적인 정책으로 복귀한 후 영향권을 넓혀가고 있다.
산업정책이 귀환한 배경은 향후 산업경쟁력을 좌우할 AI나 기후친화적 산업에서 중국이 차지하고 있는 지위다. 중국은 시장주의와는 거리가 먼 경제 시스템하에서 국영 기업 주도로 이들 산업에 자원을 집중하고 핵심 원자재 공급망을 장악했다. 그 결과 AI, 재생에너지, 수소, 전기차, 배터리 등 첨단 산업에서 미국과 유럽을 위협하는, 심한 경우 앞선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었다. 이를 목격한 서방의 정치권은 '자유무역'이나 '시장주의'가 한국을 포함한 동아시아 경제나 중국이 추격자의 지위를 넘어 첨단 산업에서 '비교 우위'의 지위에 오를 수 있도록 틈을 내줬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보인다.
세계 리더십을 둘러싼 미국, 중국, 유럽의 기술 경쟁은 이들 국가 모두가 특정 부문에 막대한 보조금을 지급하고 역내 생산 비중을 충족하지 못한 기업을 보조금 혜택에서 배제하는 보호주의적 색채가 짙은 '산업정책'을 채택하는 결과를 낳았다. 반도체 부문에 520억달러를 할당하는 '칩과 과학법(Chips and Science Act)', 탄소중립을 목표로 청정에너지와 친환경 핵심 산업에 3420억달러라는 역대급 지원을 할당한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미국에 기반을 둔 기업에만 보조금을 지급하는 '미국산 우선구매법(Buy American Act)'은 사실 중국의 산업정책이나 멀게는 1970년대 수출 중공업을 육성했던 우리의 산업정책을 복제한 것과 유사하다. 중국과의 경쟁에서 보여준 조 바이든 정부의 태도는 도널드 트럼프 정부와 다르지 않다.
이러한 공격적 산업정책에 대한 비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역사적으로 동아시아 경제를 제외하면 강력한 산업정책이 고도 성장을 이룬 경우는 많지 않다. 기반이 약한 산업으로 자원을 몰아주는 것은 사실 상당히 위험한 결정이기 때문이다.
글로벌 경제에의 영향은 더욱 부정적이다. 한 국가가 보호주의적 색채가 강한 산업정책을 실시하면 교역 관계에 있는 국가들 역시 유사한 산업정책을 고민할 수밖에 없다. 실제 유럽연합에서는 미국의 IRA 이후 미국이 제공하는 보조금을 찾아 자국 기업이 미국으로 이주하는 것을 막기 위해 유사한 산업정책을 채택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 바 있다. 이 경우 자유무역은 훼손되고 국가 간 치열한 무역분쟁이 발생할 수 있다.
이러한 우려에도 불구하고 보호주의를 동반한 산업정책은 군비경쟁처럼, 이미 시위를 벗어난 활처럼 확산되고 있다. 한쪽이 강력한 산업정책을 쓴다면 생존을 위해 상대방도 비협력적 산업정책을 써야 하기 때문이다. 어떤 이유로 시작됐건 우리에겐 모두 수출시장인 국가들 사이에서 유행하고 있는 보호주의를 동반한 산업정책이 반가운 소식은 아니다. 수출이 타격을 받을 수 있고 기업이 역내 기업에만 주어지는 혜택을 찾아 이동하면 국내 일자리는 줄어들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디지털과 기후친화적 산업에서의 산업경쟁력이나 경제외교에 보다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오형나 경희대 국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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