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인' 유길채 vs '바람사' 스칼렛 오하라 [김지현 기자의 게슈탈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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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7년 발간된 미국 소설이자 동명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와 MBC 금토드라마 '연인'(황진영 작가)에 등장하는 두 남녀 주인공은 혹자들의 말대로 사뭇 닮았다. 스칼렛 오하라(비비안 리)와 유길채(안은진)는 난세 속에서 겪는 시련을 통해 성장하는 주체적인 여성이고, 레트 버틀러(클라크 케이블)와 이장현(남궁민)은 온실의 꽃처럼 아름답지만 잡초의 근성을 지닌 두 여인을 사랑하는 남성이다.
지난 3일 방송된 '연인' 파트1의 엔딩을 두고 잡음이 시끄럽다. 파트1이 방영되는 내내 엇갈리던 장현과 길채가 재회하며 사랑을 속삭이더니, 금세 다시 틀어지며 서로 다른 이와 인연을 시작하는 모습이 예고됐다. 장현을 두고 돌아 선 길채의 모습이 설득력을 갖지 못한 것일까. '바람사'를 도용했다는 논란까지 제기됐다.
'연인'과 '바람사'가 흡사한 부분이 있는 건 맞다. 전쟁의 소용돌이에 엇갈린 남녀 사랑을 그린다는 점, 남녀주인공 캐릭터가 흡사한 점이 그렇다. 정말 2023년 방영된 K-드라마 '연인'은 1940년대 미국에서 개봉된 영화 ‘바람사’를 도용했을까. 연상되는 부분은 있지만, 도용으로 해석하는 건 무리가 있어 보인다.
길채는 어느 한국드라마의 여주인공과 달리 변동성이 강한 마음을 지녔다. 길채는 제 마음을 표현하는데 주저함이 없다. 상황을 아랑곳 않고 절친과 정혼할 남자인 남연준(이학주)에게 직진한다. 뒤늦게 장현에 대한 사랑을 깨달으면서도, 실질적 어려움을 함께 한 남자 구원무(지승현)에게 의지하는 모습도 보인다.
순애보 캐릭터가 아닌 길채는 종종 민폐 여주라는 비아냥을 받았다. 조선시대 규수가 일방적으로 남성에게 마음을 표현하는 건 비현실적이고, 엎친데 덮친격 절친의 남자를 마음에 품은 것이 괘씸했나 보다. 만약 길채가 장현의 사랑을 깨닫고 순애보적 면보를 보였다면 시청자들은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적어도 '뒤통수 결말'(파트1)이라는 푸념은 따르지 않았을 것이다. 작가는 이 같은 반응을 전혀 예상하지 않았을까. 왜 굳이 길채 주변에 여러 남성 캐릭터를 둔 것일까.
여성 캐릭터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스칼렛 오하라를 길채와 비견할순 없지만, 작가가 길채라는 캐릭터에 부여한 '성장' 키워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여인을 다각적 시선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길채는 극한의 상황을 통해 성장하는 여인이다. 병자호란이 발발하기 전 남연준(이학주)를 유혹하려 그네를 타던 길채와 은애를 겁탈하려는 오랑캐를 살해한 길채는 다른 사람이다. 전쟁이 끝난 후에도 마찬가지다. 모든 것이 휩쓸려 나간 삶의 터전에 돌아 온 길채는 휴지조각이 된 동전, 통보를 모아 유기그릇을 만들어 낸다. 같은 난세 속에서도 가장 변화무쌍한 내면의 변화를 겪는 것이 바로 길채라는 여인이다.
이는 길채가 주변의 남성들을 바라보는 마음에도 변화를 일으키지 않았을까. 길채에게 연준은 병자호란이 발발하기 전 순수한 상태로 존재했던 자신을 상징하는 인물이고, 구원무(지승현)는 벼랑 끝에 몰린 길채가 느낀 생존에 대한 불안을 일시적으로 잠재울 수 있는 존재다. 반면 정현은 그 모든 것을 초월하는 본연의 자신이 사랑할 수 있는 존재일 것이다. 정현은 그 모든 과정을 거치는, 길채의 우여곡절과 성장을 상징하는 존재다.
길채의 존재 이유는 이 모든 것을 거치며 발생한다. 정현은 그 모든 것을 안을 때 빛나는 이다. "저 남자(연준)는 당신을 품을 수 있는 사내가 못 된다"는 정현의 대사가 이를 말해준다. 레트 버틀러가 전설적 남성 캐릭터로 회자되는 이유는 장미인 스칼렛 오하라의 가시까지 사랑한 남자였기 때문이다.
길채라는 캐릭터가 줏대가 없다거나 민폐로 해석될 수 없는 또 다른 이유, 작가의 전작이 보여준 세계관에서 엿볼 수 있다. 여성의 주체성은 황진영 작가의 이전 작품에서도 주요한 장치였다. 백제를 시대적 배경으로 한 ‘제왕의 딸. 수백향’의 여주인공 수백향(서현진)은 시대를 초월하는 내적 힘을 가진 여성이었다. 숱한 사건들을 겪으며 정치적 힘을 쟁취하고 스스로 제왕이 된다. 수백향과 길채는 급작스런 환경 변화로 인해 시련을 맞고 성장한다는 점에서 닮았다.
'바람사','연인'의 멜로가 흔한 로맨스물과 달리 극적인 힘이 있는 건 난세를 배경으로 해서다. '연인'에서 '바람사'가 자꾸 연상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두 작가가 과거, 시대를 해석하는 방식은 완전히 다르다. 황 작가는 병자호란에 대한 해석을 인조의 이기심 보다 소현세자의 눈으로 욺기는데 주력한다. 왕자가 처한 상황에 감정을 이입하는 정현의 눈은 현재의 눈으로 당시를 바라보는 후손들의 시선이기도 하다. 정현이 마음에 품은 왕은 인조가 아닌 소현세자다. 파트2에서 정현은 소현세자의 편에 섰다 죽음을 맞이할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설정 자체가 시대에 대한 작가의 해석을 말해준다.
‘바람사’는 미국 문학사에서 중요하게 거론되지만 논란도 따르는 작품이다. 남북전쟁(1861-1865)을 해석하는 마가렛 미첼 작가의 시선이 백인 권력층 중심으로 그려서다. 원작 소설은 물론 동명의 영화까지 백인우월주의로 대표되는 남부의 문화는 화려하게 소개하면서도, 노예들은 이기적인 존재로 묘사되거나 끝까지 주인에게 충성하는 단순한 캐릭터로 한정시켰다. 스칼렛의 고난은 더 이상 부릴 노예가 없어 초라해지는 것으로 묘사되고 농지는 과한 세금으로 빼앗길 위기에 처한다.
스칼렛과 길채가 전쟁으로 고난을 겪고 변모하는 여성들인 건 맞다. 변화에 따라 남성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진 것도 비슷하다. 그러나 무작정 '연인'이 '바람사'를 무단 인용했다는 결론을 내리는 건 섣부르다. 전쟁의 위기 속에서 주체적인 힘을 갖고자 하는 여성 캐릭터를 모두 '스칼렛 오하라의 아류'로 해석하는 것은 지나친 일반화가 아닐까.
[티브이데일리 김지현 기자 news@tv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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