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론직설]"한미일 협력, 정권 교체 영향 없도록 제도화···中 압박에 결연한 의지를"
美 핵우산 강화·압도적 재래식 군사력 구축으로 도발 막고
핵잠수함 한국 기항 빈도 대폭 늘려 북핵억지력 강화 필요
대북 전단 살포 금지법 폐지하고 대북 확성기 방송 재개를
통일부, 정책 ·집행 기능 분리로 '대북지원부' 오명 벗어야
한반도를 둘러싼 동북아 안보 지형이 급변하고 있다. 미중의 패권 경쟁과 글로벌 공급망 재편은 국제 질서의 신냉전·블록화 현상을 가속화하고 있다. 북한이 핵·미사일 고도화와 잇단 도발로 위협하는 가운데 한미일 3국 정상은 최근 미국 캠프데이비드에서 정상회의를 갖고 안보·경제·기술 공조를 격상하기로 합의했다. 이용준 세종연구소 이사장은 4일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한미일 3자 협력을 서둘러 제도화함으로써 정권 향배와 관계없이 외교적 연속성을 유지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자유·민주·법치를 추구하는 선진국형 가치 외교를 정착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외교부 북핵대사를 지낸 이 이사장은 “북한이 넘볼 수 없을 정도로 한국이 압도적 재래식 군사력을 갖추게 된다면 북한 핵무기는 사실상 쓸모없는 물건이 될 것”이라면서 “대북 전단 살포 금지법을 폐지하는 등 북한 인권에 대한 관심을 높일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달 미국 캠프데이비드에서 열린 한미일정상회의의 성과는 무엇인가.
△한미일정상회의의 최대 성과는 문재인 정부 시절 사실상 와해됐던 3국 간의 안보 협력을 제도화하고 공조의 영역을 경제·안보 분야까지 확장했다는 점이다. 특히 3국 간 합동 군사훈련의 정례화는 국내 정치 측면의 손실 가능성을 감수한 결단이었다고 생각한다. 윤석열 정부의 외교·안보 정책 정상화를 통해 친중·친북으로 기울었던 우리 외교 노선이 자유민주 진영으로 완전히 복귀한 셈이다.
-한미일 협력이 정권 교체와 관계없이 지속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한국의 정치 변화나 한일 관계의 악화 속에서도 3국 간 안보 협력이 지속될 수 있을지에 대한 우려가 미국과 일본 내 전문가들 사이에서 나오고 있다. 한미일 안보 협력이 정권 향배와 관계없이 외교적 연속성을 유지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 한미일 3자 협력 진전의 속도를 높여 협력을 제도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호주·뉴질랜드를 추가해 5자 간 안보협력체를 형성하는 것도 지속성 유지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중국이 한미일 협력에 대해 거세게 반발하고 있는데.
△중국 정부는 과거 5년간 한국이 중국의 영향권에 복속한 것으로 간주해왔기 때문에 자신의 영향권에서 이탈하는 한국에 대해 반발하고 있다. 그러나 중국의 협박에 크게 신경 쓸 필요가 없다. 과거 우리가 중국에 대해 모호한 입장을 취할 때마다 중국의 간섭과 압박이 더 심했다. 중국으로부터의 이탈을 기정사실화하고 한미일 결속을 강화하면 오히려 중국이 한국을 함부로 대하지 못하게 된다. 한국은 아무리 협박해도 중국의 뜻대로 휘둘리는 나라가 아니라는 인식을 심어줘야 한다. 그렇게 되면 중국도 다시는 사드 제재와 같은 무리수를 두지 못하고 오히려 유화적 접근을 해올 가능성이 크다.
-중국과의 관계는 어떻게 방향을 설정해야 하는가.
△우리가 주권국으로서 중국에 할 말을 다 하고 지내야 한다. 우리는 그동안 중국이 위협하고 겁을 주면 쉽게 굴복하는 나라라는 인식을 심어주는 외교적 과오를 범했다. 문재인 정부의 대중국 ‘3불(3不) 약속’은 주권국가로서 있을 수 없는 굴욕 외교의 산물이다. ‘사드 추가 배치 불검토, 미국 미사일 방어 체계 불참, 한미일 삼각 군사 동맹 불가’의 굴레에서 벗어나 정상적 대중 관계를 설정해야 한다. 미국의 디리스킹 정책과 공급망 통제는 과거 한국의 비약적 경제 발전을 가능하게 했던 중동 특수와 중국 특수에 이은 세 번째 큰 기회로 작용할 수 있다.
-일본의 과거사 문제 등은 여전히 걸림돌로 남아 있다.
△감정적인 문제와 국가 간 협력 문제는 구분해야 한다. 일본은 한국의 외교와 안보, 경제에 있어 불가결한 파트너이기 때문에 미래를 내다보고 협력을 강화해 나가야 된다.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 문제도 감정을 떠나 과학적 방식으로 접근해야 된다. 한국은 중국과 함께 태평양 국가 가운데 가장 늦게 5년 후에나 영향을 받는 나라인데 유독 한국과 중국에서 강력한 반대가 제기되는 현 상황이 과연 정상적인지 성찰해야 한다.
-북한 핵 문제는 어떻게 풀어야 한다고 보는가.
△외교적 협상이나 설득을 통한 비핵화 가능성은 오래전에 물 건너갔다고 본다. 북한이 100개 내외의 핵무기를 보유한 상황에서 이를 모두 포기하고 비핵화에 동의할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북한은 김정일 시대 이래 핵 폐기는 협상의 대상이 아니라는 입장을 견지해왔다. 북한이 향후 미국과의 협상에 다시 나온다고 하더라도 그 이유는 제재 조치 해제 때문이며 비핵화를 수용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따라서 핵을 보유한 북한과 핵이 없는 한국 사이의 불균형한 대치 상태가 장기간 지속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대한 우리의 대응 수단은.
△한국의 대칭적 핵 억지력 보유 방안으로 독자 핵무장, 전술핵 재배치, 핵 공유 협정 등이 거론되고 있다. 하지만 가까운 시일 내 이들 방안이 실현될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 따라서 현 시점에서 한국이 취할 수 있는 현실적인 대응책은 고도의 미사일 방어망 구축을 포함한 재래식 군사력의 확충이다. 북한이 핵 무장에 집착해 온 이유는 전쟁 재발 시 핵 위협을 통해 미군의 개입을 저지하고 한반도를 적화통일하겠다는 일념 때문이었다. 그러나 만일 북한이 도저히 넘볼 수 없는 압도적 재래식 군사력을 한국이 갖추게 된다면 북한 핵무기는 사실상 쓸모없는 물건이 될 것이다.
-미국의 핵우산 강화는 실효성이 있다고 보는가.
△한국과 미국은 4월 백악관 정상회담을 계기로 한미핵협의그룹(NCG) 창설과 미 핵잠수함의 수시 한반도 기항에 합의했다. NCG는 유사시 핵 사용 권한을 미국이 갖는다는 점에서 근본적인 한계를 갖고 있다. 하지만 핵잠수함의 한국 기항은 북한이 가장 두려워하는 실질적인 핵 억지력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핵잠수함이 기항하는 빈도와 체류 기간을 늘려나간다면 미국 전략핵무기가 상시 배치된 것과 동일한 효과를 얻을 수 있어 큰 억지력이 될 것이다.
-북한이 최근 심각한 경제난에 시달리고 있는데.
△북한은 2017년 유엔 안보리가 채택한 강력한 수출 금지 조치로 심각한 경제난을 겪고 있다. 북한의 대외 수출 규모는 90% 이상 줄었다. 그러나 북한의 경제난은 단지 유엔 제재 때문은 아니며 북한 당국의 정책 실패에 따른 인재(人災)이기도 하다. 당국의 장마당 억압 등 사회주의적 통제 정책은 북한 경제에 큰 타격을 주고 있다. 북한이 경제난을 해결하려면 시대착오적 사회주의 경제 체제의 개혁이 급선무다. 북한이 베트남처럼 농지의 사유화만 허용하더라도 식량난은 대부분 해결될 수 있을 것이다.
-북한의 인권 문제에 대해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통일부가 북한 인권에 대한 국내외 관심을 높이는 데 앞장서야 한다. 북한 동포들이 자신들의 인권 상황에 대해 더 많이 알 수 있도록 대북 전단 살포 금지법을 폐지하거나 탄력 운영해 외부로부터의 정보 유입을 크게 늘려야 한다. 김정은 정권이 가장 싫어하는 대북 확성기 방송도 즉각 재개할 필요가 있다. 앞으로의 대북 정책은 북한 정권이 아니라 철저히 북한 주민에게 초점을 맞춰 시행돼야 한다.
-통일부의 정책 대전환이 절실하다는 목소리가 나오는데.
△앞으로의 대북 정책은 맹목적인 퍼주기에서 벗어나 시간이 걸리더라도 북한을 변화시키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 통일부는 북한에 많이 퍼줄수록 예산과 조직이 늘어나다 보니 ‘대북 지원부’가 됐다. 이처럼 통일부와 북한 사이의 이해관계가 일치한다면 객관적인 시각에서 북한을 바라보지 못하게 된다. 통일부가 관장해온 대북 지원 사업은 대북 정책 수립 및 협상 기능과 완전히 분리해 각각 별개의 부처에서 맡도록 만들어야 한다. 아울러 북한의 쌈짓돈처럼 운영돼온 남북협력기금을 폐지하고 예산 당국과 국회의 통제를 받도록 대북 지원 시스템을 변경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우리가 지향해야 할 가치 외교란 무엇인가.
△우리의 핵심 가치인 자유·민주·법치를 대외 정책에서도 똑같이 추구하는 것이 선진국형 가치 외교다. 이를 통해 국격을 높이고 자유민주주의의 확산에 기여하는 것이 우리 국익과도 합치된다. 눈앞의 이익을 위해 기본 가치를 유보하고 침묵하는 것은 극복돼야 할 후진국형 이익 중심 외교의 잔재다. 2020년 중국은 한국에 대한 사드 제재를 훨씬 능가하는 보복 조치를 동원해 호주의 굴복을 강요했다. 그러자 스콧 모리슨 호주 총리는 “호주의 주권은 무역에 휘둘릴 문제가 아니다”라면서 “우리는 중국의 압박 때문에 우리의 가치관을 팔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이것이 바로 선진국형 가치 외교다.
-현 정부의 외교·안보 정책 방향을 조언한다면.
△윤석열 정부는 이전 정부의 그릇된 외교·안보 정책을 바로잡고 비정상을 정상화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왔다. 하지만 아직 가야 할 길이 멀다. 한미일정상회의에서 합의된 3자 안보 협력도 이를 행동으로 옮겨 이행하는 과정이 남아 있다. 아태 지역의 미국 동맹국 중 한국만 불참해 온 남중국해 ‘항행의 자유 작전’ 참여 문제가 제기될 가능성이 높다. 중국이 대만을 침공할 경우 한국이 자유민주 진영과 행동을 함께할 것인지도 미지수다. 중국의 거센 압박을 극복하고 외교적 자주성과 연속성을 유지하는 것은 중요한 숙제다.
◆He is···
1956년 충북 진천에서 태어나 경기고와 서울대 외교학과를 졸업했다. 외시 13회로 공직에 입문해 북미1과장,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 정책국장, 북핵외교기획단장, 북핵대사, 차관보 등을 지낸 북핵 전문가로 꼽힌다. 주말레이시아 대사, 주이탈리아 대사를 역임했으며 한미협회 상근 부회장을 거쳐 6월부터 세종연구소 이사장을 맡고 있다.
정상범 수석논설위원 ssang@sedaily.comCopyright © 서울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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