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마음에 난 상처는 전치 몇주일까?[문화칼럼]

이선명 기자 2023. 9. 4. 1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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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자신의 아들을 담당하던 특수교사를 아동학대 혐의로 고소해 비판을 받고 있는 웹툰작가 주호민. KBS 방송화면



#행복이 뭘까? 사람마다 기준이 다를 것이다. 하지만 기준은 달라도 각자 행복이라는 감정이 무엇인지는 분명 알고 있다.

#2014년, 하는 일도 제대로 되지 않고 심적으로 어렵고 힘들었을 때 서은국 교수의 <행복의 기원>이라는 책을 읽었다. 책 제목답게 인간이 느끼는 행복이라는 감정에 근원적으로 다가갔다. 두 사람이 등장했다. 한 명은 아리스토텔레스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이 행복을 위해 산다고 말했다. 또 한 명은 다윈이다. 다윈은 인간이 행복을 목표로 하고 있다기보다는 가장 기본적인 ‘생존’을 위해 얻은 경험적 수단이라고 말했다.

#행복을 위해 산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이 멋져 보이긴 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2014년은 너무나도 잔인한 한해였다. 그래서 난 다윈의 말이 더 크게 와 닿았다. 당장 지금, 작은 행복도 느껴지지 않았고 이러한 삶의 상황이 미래에도 달라질 것 같지 않았기 때문이다. 자신감이 떨어지니 사람과 어울려 놀기 좋아했던 내가 홀로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요즘 말로 하면 MBTI가 극단적으로 E에서 I로 바뀌었던 순간이었을 것이다.

#지난 2023년 7월 18일, 한 초등학교 선생님은 행복이란 감정을 영원히 느끼지 않아도 되는 선택을 했다.

#선생님이 되는 과정은 행복이었을 거다. 당연히 모든 과정이 행복할 수는 없었겠지만 내가 선생님이 된다는 것, 실제 임용되어 발령을 받는 것, 아이와 교감하는 것, 아직은 미숙하지만 하나씩 배워나가며 성취하는 아이들을 보며 선생님은 분명 행복을 느꼈을 것이다.

#부모가 되는 과정은 행복이었을 거다. 당연히 모든 과정이 행복할 수는 없었겠지만 내가 부모가 된다는 것, 태어난 아이를 내 품에 안아보는 것, 뛰고 구르는 것이 아니라 뒤집기만 해도 그 날을 기록해두고 싶을 정도로 부모는 분명 행복을 느꼈을 것이다.

#무엇이든 첫 번째 경험은 강렬하다. 두 번째 경험과 세 번째 경험, 그리고 N번째 경험은 그 맥락은 같지만 첫 번째를 이길 수 없다. 내 사랑의 결정체인 자식도 혼자서만 육아를 하다보면 ‘독박 육아’라는 단어가 어김없이 등장하고 힘들고 버겁다. 적절히 학교라는 곳이 하루에 몇 시간 정도는 교육과 탁아소의 역할을 담당해준다. 독박 육아 시간은 조금 줄었지만 여전히 신경 쓰이고 손이 많이 가는 어린 존재다. 부부가 서로 누가 더 육아에 시간을 많이 할애했느냐의 싸움은 이제 학교로 ‘당연하듯이’ 넘어간다.

#왜 우리 아이만 차별하느냐, 왜 우리 아이만 차갑게 대하느냐, 왜 우리 아이만 신경쓰지 않느냐. ‘왜 우리 아이만’이라는 단어 뒤에 숨어 사실상의 ‘독박 화풀이’를 선생님에게 전가한다. 여기서 상상도 할 수 없는 일들이 우리 주변에서 버젓이 일어나고 있었다. 모닝 콜을 해달라는 사람, 아이가 과일을 좋아하니 과일을 따로 준비하라는 사람, 학벌로 깎아내리는 사람, 아이가 다쳐서 학교를 못 갔으니 선생님이 직접 집으로 찾아와 보충 수업을 하라는 사람, 이런 특정 상황이 아니라면 우리 아이가 마음이 상했다며 이른바 ‘우리 기분 상해죄’를 외치며 폭언과 욕설, 성적 발언과 임신한 선생님을 향한 입에 담기 힘든 발언들이 분명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내 아이의 행복을 위해 선생님의 행복을 완전히 짓밟아버리는 행위는 정당한가.

#행복의 기원이라는 책에서는 인간의 고통 진원지는 상처 부위가 아니라, 뇌라고 한다. 뇌의 전방대상피질(anterior cingulate)이라는 부위가 활성화되면 이것이 곧 고통이라는 신호로 바뀐단다. 우리가 먹는 진통제는 아세타미노펜(acetaminopen)성분이 있고 앞서 말한 전방대상피질을 비활성화시켜 고통을 줄여주는데, 놀라운 것은 몸의 상처뿐만 아니라 심리적 상처가 있을 때도 이 약은 효능을 발휘한단다. 그렇다면 책에서 설명한 심리적 상처는 무엇일까? 외로움, 배신감, 이별 등 인간관계에 금이 가는 것들이라고 한다.

#선생님의 마음을 어루만지기 위해 국가에서 타이레놀이라도 단체 보급을 해야 할까.

#선생님이 가르치던 학생에게 맞아서 전치 3주라는 기사를 봤다. 동료 교사 1800여명은 엄벌 탄원서를 냈다고 한다. 3주가 지나면 선생님 몸의 상처는 아물겠지만 마음의 상처는 아물까? 교통사고 한번이라도 난 사람들이라면 전치 몇주의 판단을 받아본 적이 있을 것이다. 없더라도 전치 몇주가 어떤 의미라는 것은 다들 알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 알고 있을 것이다. 몸의 상처가 의학적으로 다 나았다는 판정을 받더라도 갑자기 찾아오는 ‘후유증’이 있다는 것을.

#선생님의 마음에 난 상처는 전치 몇 주일까? 선생님들이 가지고 있는 마음의 상처는 감기처럼 찾아왔다가 치유가 될까 아니면 교통사고처럼 영원히 남아 후유증을 동반할까.

#이제 더 이상 마음을 어루만져주려는 것으로는 안된다. 명확한 선이 생겨야 한다. 독박 육아가 힘든 것처럼 독박 행정 업무를 없애야 한다. 악성 민원은 전담팀을 만들어 민원 창구를 단일화해야 한다. 아이의 보호자가 학무모라면 선생님의 보호자도 학교에 있어야 한다. 교장이 일선에서 책임제를 실시하며 방관자가 아니라 직접 나서야 한다.

#스승의 날을 7월 18일로 옮겼으면 좋겠다. 선생님의 인권과 노동권, 그리고 아이의 인권과 학습권 그리고 학부모의 궁금증을 풀 수 있는 조화로운 교육이 정착이 된다면 2023년 7월 18일이 그 첫단추였을 것이다. 때로는 이러한 가슴 아픈 일을 정면으로 마주해야 우리 사회가 확실히 바뀐다고 믿고 있다.



▲오창석 ▲작가 ▲대중문화칼럼니스트

정리: 이선명

이선명 기자 57k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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