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국내 중견 철강회사, 성추행 가해자 해고했지만…법원 “부당해고”
가해자 ‘이중징계’ 반발하며 노동위에 구제 신청…노동위 ‘부당해고’
법원 “이중징계에 해당…징계 절차도 문제 있어”
국내 중견 철강회사의 지방 공장에서 성추행 등 직장 내 괴롭힘으로 동료 직원을 숨지게 한 조모씨가 사측으로부터 해고 처분을 받았지만 법원이 이를 부당해고로 판단했다. 철강회사는 성추행 책임을 물어 조씨에게 해고를 통보했으나 조씨가 부당해고 구제 절차를 밟았고, 법원도 부당해고로 본 것이다.
4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행정14부(재판장 송각엽 부장판사)는 특수강 소재를 생산하는 코스피 상장 기업 A사가 중앙노동위원회를 상대로 제기한 부당해고 구제 재심판정 취소소송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했다. A사는 조씨에 대한 해고가 부당하지 않다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성추행 피해자 “강력 처벌 원해”…A사, 사건 공론화 되자 가해자 ‘해고’
2012년 4월부터 A사 군산공장에서 근무하던 피해자 B씨는 2018년 11월 25일 전북 군산 금강 하구 한 공터에 있던 자신의 차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B씨는 자신의 스마트폰에 25분 분량의 영상과 ‘드리는 글’이라는 제목의 유서를 남겼다.
조씨는 다른 직원과 함께 B씨 문신을 확인한다며 옷을 벗게 하거나 야유회 자리에서 B씨를 포함한 남성 직원에게 탈의를 지시한 뒤 나체로 사진을 찍었다. 조씨는 B씨 성기를 만진 인물로도 지목됐다. B씨는 유서에 조씨를 향해 “왜 이렇게 날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 났냐, 성기 좀 그만 만지고 머리 좀 때리지 말라”며 “강력한 처벌을 원한다”고 적었다.
B씨 사망 후 조사에 착수한 A사는 2019년 6월 조씨의 행위가 ‘동성(同性) 간 성추행’에 해당하는 등 부적절하고 기업 질서를 흔들었다며 정직 2개월 처분을 내렸다.
정직으로 마무리되는 것처럼 보였던 이 사건은 지난해 다시 공론화되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A사 대표와 제강 담당 이사가 사고 책임을 지고 자진 사퇴했고, A사는 지난해 2월 동성 간 성추행과 동료 사원에 대한 명예훼손 및 작업장 질서 혼란을 이유로 조씨를 해고했다. 징계 처분 사유서에는 “조씨가 징계위원회에 출석해 진술한 내용을 비춰볼 때, 성희롱 의도가 없었다는 식으로 비위 행위를 부정하고 변명으로 일관하고 있다”며 “조씨의 과거 비위행위가 여러 언론에 보도돼 회사와 직원들의 명예가 심히 실추됐다”고 기재돼 있다.
조씨는 해고 처분에 반발해 지난해 4월 전북지방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했다. 같은 사안으로 정직 처분을 받은 뒤 재차 해고를 통보 받은 것은 이중징계라고 주장했다. 전북지방노동위는 해고 사유가 구체적이지 않은 등 절차에 하자가 있다며 조씨 구제신청을 인용했다. A사는 중앙노동위에 재심을 신청했으나 중앙노동위 역시 ‘동성 간 성추행’으로 정직에 이어 해고 처분을 내린 건 이중징계에 해당한다고 봤다. ‘동료 사원에 대한 명예훼손 및 작업장 질서 혼란’은 징계사유로 인정되지만 수위가 과하고, 조씨에게 해고 사유를 구체적으로 알리지 않아 방어권 행사에 지장을 초래했다며 재심신청을 기각했다.
◇노동위 ‘부당해고’ 판단…행정소송 제기했으나 A사 ‘판정패’
노동위에서 ‘부당해고’로 결론 내자 A사는 지난해 11월 중앙노동위를 상대로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A사는 또 다른 피해자에 대한 성추행이 확인돼 조씨를 해고한 것이고 징계 수위도 정당하다고 주장했다. 특히 추가 피해자 요청으로 2차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 구체적인 내용을 알려주지 않았으며 숨진 B씨 외에도 조씨가 직원들의 성기를 만지는 등 직장 내 성희롱을 저질렀다고 부연했다. 조씨도 징계위원회에 출석해 절차 진행 상황을 확인했고 소명 기회도 가졌으므로 절차가 위법하지 않다고 덧붙였다.
법원은 A사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미 조씨에 대한 징계가 이뤄진 상황에서 ‘동성 간 성추행’을 이유로 해고까지 한 건 이중징계에 해당한다고 봤다. 재판부는 “정직 처분은 조씨가 후배들을 상대로 부적절한 스킨십 내지 성추행을 한 것이 이유”라며 “피해자 개개인이 누구인지 중요하지 않다”고 언급했다. 이어 “징계가 이뤄진 사건에 대해 조씨가 반성하지 않는다는 등의 이유로 이전보다 무거운 징계를 내리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고 설명했다.
징계 절차도 문제가 있다고 판단했다. 징계 처분 사유서를 조씨에게 통지하면서 조씨 행위를 특정하지 않은 데다, A사가 주장하는 동성 간 성추행의 일시와 장소, 상대방과 구체적 상황이 특정되지 않아 조씨의 방어권에 지장이 생겼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조씨 처지에서 ‘동료 사원에 대한 명예훼손 및 작업장 질서 혼란’은 징계사유가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알 수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며 A사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A사는 법원 판결에 불복해 지난달 25일 상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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