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은 거대한 정신병동’ 정신과 전문의가 바라본 강남의 민낯
환자들 상담하며 바라본 ‘이상한 강남’ 에세이 출간
부모의 기대를 채우고 싶어 노력했지만 조현병에 걸려 병원에 입원한 아들과 이제는 그런 아들이 무서워 모임을 핑계로 아들을 보러 가지 않는 엄마. 왕따를 당했다며 병원을 찾아왔지만 알고 보니 다른 학생을 따돌린 주범이면서도 자신이 당한 일만 억울하고 남에게 가한 피해는 아무렇지 않은 아이와 그 부모.
드라마 속 내용이 아니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김정일 원장이 쓴 에세이 <강남은 거대한 정신병동이다>에 등장하는 서울 강남의 숨겨진 이야기다. 김 원장은 1995년부터 강남 지역에서 정신건강의학과 의원과 정신건강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김 원장은 4일 서울 종로구의 한 식당에서 열린 출간 기자간담회에서 “강남은 전국에서 정신과 개업이 가장 많이 늘고 있다”며 “정신 건강은 결코 돈과 비례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다소 자극적인 제목의 에세이를 출간하게 된 계기도 “환자들을 상담하면서 바라본 강남의 위험하고 이상한 삶을 정신건강의학 관점에서 들여다보게 됐던 것”이라고 밝혔다. 책에 소개된 사연은 일부 각색했거나 환자들에게 허락을 받아 담았다.
책에는 부를 물려주기 위해 학구열만 높은 부모와 자식을 의대에 보낸 뒤 극단적 선택을 원한다는 여성, 부모의 재산 상속으로 분열된 가족 이야기 등 강남 사람들의 욕망이 거침없이 담겨있다. 이들은 우울증·불면증·불안증·마약·도박 중독 등 다양한 증상을 호소하며 병원을 찾았다.
그는 학구열이 지나치게 높을 경우 자식의 정신을 병들게 할 확률도 높다고 본다. 김 원장은 “그동안 많은 부자들이 남아도는 돈과 시간을 자신과 그들의 자식을 망치는 데 쓰는 걸 봐왔다”고 했다. 또 “돈 앞에서는 가족·연인·친구 사이에도 배신과 거짓말이 난무한 강남에서 사람들은 행복을 찾기보다는 외로운 상태에서 삶을 지탱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김 원장은 성형중독과 각종 갑질, 마약 등 최근 벌어진 일련의 사건들은 ‘돈’이 근본적인 이유라고 했다.
그는 “맹목적으로 돈을 추구하고 자식의 성공을 위해 모든 걸 내던지는 과정에서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인 감정들이 커졌다”며 “돈의 유무가 열등감과 위화감을 일으키고 이는 과대망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김 원장은 강남뿐 아니라 한국 사회가 병리적으로 신음하고 있다고 봤다. 분당 서현역 칼부림 사건 등 전국 곳곳에서 잇따라 발생한 무차별범죄 배경에도 정신질환이 있다는 것이다. 그는 “히키코모리(은둔형 외톨이)에게는 사회에 대한 공포와 망상 등이 있는데, (무차별범죄는) 자신을 공격하는 이들에게 맞선 (자기) 과잉보호인 셈”이라고 말했다.
김 원장은 “지금까지 진료한 환자 중 99%가 다른 사람을 믿지 않는다고 답했다”며 “우리 사회가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선 인간관계를 통한 공동체 정신을 회복해야 한다. 공동체 교육, 부모 교육 등을 통해 남을 배려하고 공감하는 훈련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이진주 기자 jinju@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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