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에 뿔난 ‘평산’…문재인이 움직인다

박성의 기자 2023. 9. 4.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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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범도 흉상 철거’에 거센 반발…文 “대통령실이 나서라”
“文 지나치게 나서는 게 문제” vs “尹 저격에 맞선 정당방위”

(시사저널=박성의 기자)

"퇴임 후 정치에 관여하지 않겠다는 생각에 변함이 없다."

2022년 2월10일, 문재인 전 대통령은 임기 종료를 3개월 앞두고 진행한 세계 7대 통신사와의 합동 서면 인터뷰에서 이같이 밝혔다. 문 전 대통령은 "전직 대통령으로서의 사회적인 활동도 구상하지 않고 있다"고 했다. 다만 문 전 대통령은 "특별한 상황이 생긴다면 그때 가서 판단할 문제"라고 여지를 뒀다.

이후 경남 양산 평산마을 '책방지기'로 활동하던 문 전 대통령이 다시금 '정치인'으로 돌아선 모습이다. 윤석열 정부가 추진한 '홍범도 장군 육군사관학교 흉상 이전'에 반대 목소리를 개진하면서다. 나아가 문 전 대통령은 '윤석열 정부가 폭주하고 있다'는 수위 높은 비판까지 제기한 것으로 전해진다. 잠행하던 문 전 대통령이 총선을 앞두고 존재감을 키우자, 여당뿐 아니라 대통령실도 촉각을 곤두세우는 모습이다.

문재인 전 대통령(왼)과 윤석열 대통령 ⓒ연합뉴스·뉴스1

'尹정부 성토장' 된 문재인 SNS

한국 정치사에서 대통령은 어김없이 '레임덕'(임기 말 지지율 침체 현상)을 겪었다. 이에 진영을 막론하고 전(前) 대통령은 빠르게 잊혀졌다. 민주당의 큰 기둥이었던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은 가족·측근들의 '비자금·뇌물수수' 혐의로 곤욕을 치렀고, 이명박 전 대통령은 '다스(DAS) 자금 횡령' 혐의 등으로 퇴임 후 수감 생활을 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국정농단' 사태로 탄핵 당했다.

그런 면에서 문 전 대통령의 퇴임 후 행보는 이례적이다. 이른바 '문재인 정부 심판론'으로 정권을 내줬지만, 임기 말까지 문 전 대통령의 지지율은 40%를 상회했다. 최근 발표된 윤석열 대통령의 지지율을 웃도는 수치다. 이에 문 전 대통령은 퇴임 후에도 존재감을 유지하고 있다. '책방지기'로 활동하고 있지만, 그가 SNS에 적는 한 마디, 한 마디가 정치 화두가 된다.

문 전 대통령이 윤석열 정부를 직접 저격하기 시작한 것은 지난 2022년 11월 초부터였다. 당시 문 전 대통령은 '풍산개 파양 논란'과 관련해 "이제 그만들 하시라"며 "지금 (정부)의 감사원이라면 언젠가 대통령기록관을 감사하겠다고 나설지도 모른다"고 지적했다. 올해 1월에는 평산 자택에서 이재명 대표를 만나 "이 정부(윤석열 정부)하고 그 앞에 있던 국민의힘 정부(박근혜 정부)와 비교해 보면 정말로 성적표가 조금"이라고 혹평했다.

최근에는 윤석열 정부를 겨냥한 문 전 대통령의 비판 수위가 더 세졌다. 문 전 대통령은 홍범도 장군 흉상 이전 논란, 세계스카우트 잼버리 대회 파행 운영 등 각종 현안에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문 전 대통령은 지난달 13일 잼버리 대회 파행에 대해 "사람의 준비가 부족하니 하늘도 돕지 않았다"라고 비판했다. 이어 27일 홍범도 장군 흉산 이전을 두고는 "대한민국의 뿌리가 임시정부에 있듯이 우리 국군의 뿌리도 대한독립군과 광복군에 있음을 부정하는 것이냐"며 "여론을 듣고 재고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니 부디 숙고해 주기 바란다"고 했다.

이어 지난 3일에는 페이스북을 통해 "(홍 장군) 흉상 철거는 역사를 왜곡하고 국군과 육사의 정통성과 정체성을 스스로 훼손하는 처사"라며 "육사 차원에서 논의된 일이라 하더라도 이 정도 논란이 커졌으면 대통령실이 나서서 논란을 정리하는 것이 옳을 것"이라고 밝혔다.

문 전 대통령은 윤석열 정부의 이른바 '이념 공세'를 직접 비판하기도 했다. 그는 무기한 단식에 들어간 이재명 대표와 격려 전화를 하며 "윤석열 정부의 폭주가 너무 심해 제1야당 대표가 단식하는 상황이 염려스러워 전화드린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지난 1월2일 경남 양산시 하북면 평산마을 사저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文 돌아올까…대통령실도 촉각

문 전 대통령이 현실 정치에 목소리를 내는 것을 두고 정치권의 시선은 극명하게 갈린다. 일각에선 퇴임한 전 대통령이 현 정부를 비판하는 정견을 내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는 주장도 나온다. 현 대통령과 전 대통령이 '강대강'으로 맞서면 국론이 분열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최진 경기대 정치전문대학원 교수는 "(문 전 대통령이 나서는 것은) 문제가 많다.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 중에서 문 전 대통령처럼 이렇게 퇴임 후에도 활발하게 정치한 사람은 본 적이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퇴임 대통령의 존재감이 부각되면 상대적으로 현직 대통령의 존재감이 줄어들기 때문에 국정 전반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반면 야권에선 확대해석을 경계하는 모습이다. 윤 대통령이 먼저 문 전 대통령을 저격하고 비난한만큼, 문 전 대통령의 최근 발언은 '정당방위'에 가깝다는 주장도 나온다. 경기도 지역구의 민주당 한 의원은 "누구보다 잊혀지고 싶은 건 문 전 대통령 자신일 것"이라며 "그런 문 전 대통령을 2년 내내 괴롭히고 비판한 게 윤 대통령이다. 문 전 대통령은 최소한의 방어권을 행사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총선을 7개월 앞두고 문 전 대통령의 존재감이 커지자 용산 대통령실도 불쾌감을 감추지 않고 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4일 브리핑에서 문 전 대통령의 최근 발언에 대해 "대통령실이 나서지 않는 게 문제가 아니다"라며 "전직 대통령이 지나치게 나서는 게 문제"라고 비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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