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충격, 고대 벽화처럼 그려

이한나 기자(azure@mk.co.kr) 2023. 9. 4.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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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방위 예술가 이피 작가
종로 아트스페이스3 전시
7일 '음식물의 환생' 공연
이피 '침'(2020). 아트스페이스3

결국 생명은 죽음에서 자란다. 고대 원시사회 벽화 같은 대형 그림과 정체를 도통 알 수 없이 괴기스러운 존재들이 실험실 표본처럼 펼쳐져 있었다. 이종의 존재가 뒤섞인 독자적 세계관을 발전시켜온 전방위 예술가 이피(42)의 개인전 '미래 생물 발굴'이 서울 종로구 아트스페이스3에서 열리고 있는 현장이다.

할머니의 죽음에서 받은 충격을 예술적으로 발전시킨 작가가 "구심력을 집중 발휘했다"는 작업물이 전시장에 가득하다. 세밀하고 빽빽한 이미지의 작품들은 괴기스러운 첫인상으로 압도하지만, 하나하나 뜯어보면 독특한 상상력에 귀여움도 풍긴다. 인간인지 동물인지, 외계인인지 로봇인지 구별하기 힘든 존재들은 동양과 서양, 과거와 미래를 관통하는 인류사가 뒤섞인 박물관을 연상시킨다.

어릴 때부터 혼자 있는 시간을 즐기면서 일기 쓰듯 드로잉을 해왔다는 작가는 전시장 한가운데 거대한 테이블을 놓고 화려하지만 무거운 느낌의 잔칫상을 차렸다. 하얀 테이블과 하얗고 둥근 대형 조각 안에 피처럼 검붉은 빛깔 솔방울이나 알 같은 존재들이 쏟아질 듯 담겨 있다. 애프터눈티 세트처럼 배치된 미니 종들은 물론 생물 표본처럼 유리 플라스크 안에 담긴 생명체 조각도 있다. 작은 존재들은 일일이 작가가 꿰매서 만든 또 다른 세상이자 우주다. 인간과 신, 동물이 뒤섞인 원시 제의의 재현 같고, 무한반복 순환 우주 속에 들어선 느낌이다. '서로등이붙은채서로를그리워하는한사람이된두사람'이나 '웅녀를비웃는머리가셋발이아홉용수철머리를가진샴삼쌍둥이웅녀'등 길게 늘어진 개별 조각 제목마저 전시 전체 풍경과 닮아 있다.

실크로드 여행 때 둔황 불화에서 깊은 영감을 얻고 돌아와 고려 불화를 본격 사사한 결과물은 접신하듯 충동적으로 올라온 색깔을 물감과 색연필 등 다양한 재료로 세밀하게 완성한 회화로 펼쳐졌다.

오는 7일 작가는 전시와 연계된 '음식물의 환생' 퍼포먼스를 벌인다. 먹는 행위를 통해 다른 몸의 죽음을 감각하고 타자의 희생을 느끼는 자리다. 작가는 "인간들의 먹는 행위와 탐욕이 지구 다른 생물종을 탄생, 변화시키고 지구를 점점 더 위기로 몰아갈 수 있다는 암시를 받게 될 것"이라고 전했다.

전시는 16일까지.

[이한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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