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줌인] 장항선 판교역 옆, 시간이 멈추고 낭만이 흐른다
시간이 천천히 흐르거나 멈출 수도 있을까?
충남 서천군 판교는 좁은 시골 거리에 오래된 상가와 주택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곳이다. 퇴색한 회색빛 벽과 기둥에 파란색 혹은 붉은색 지붕을 한 건물들이 많다. 한 50~60년 전쯤의 시골 면 소재지에 와 있는 듯하다. 한 쪽에서는 우시장이 열리고, 한쪽에는 뜨내기 장사치가 난전을 편 채 왁자지껄 옷가지와 방물을 사라고 외치던…
판교의 식당과 가게, 부동산, 미용실 등은 간판도 낡고 소박하다. 세련된 끌씨도 아니고 그냥 무엇을 하는 곳인지만 알리면 된다는 듯 무심하다. 어떤 점포는 쌀과 빵, 사진관 간판을 함께 달고 있다. 오랜 세월 가게의 주인과 업종이 여러 차례 바뀌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요즘 서천군 판교면 소재지가 레트로(retro)의 중심에 서 있다. 꽤 많은 관광객과 순례객들이 찾아와 옛날의 풍경을 구경하고 회상하고 음미하고 가는 것이다.
판교는 여느 곳과 시간을 달리한 채 흘러가고 있다. 수십년 된 음식점도 있고 슈퍼도 있다. 도로도 차량이 겨우 2대가 교차할 수 있을 정도로 좁다. 마을을 운행하는 시내버스나 배달 오토바이, 노인들이 마실과 논밭을 오가는 4륜전동차도 서두르지 않고 느리게 도로를 오간다.
(일제강점기-1960년대 거리와 건물 산재)
'시간이 멈춘 마을'은 일제 강점기에서 산업화시대 초기까지 지어진 건물들이 산재해 있다. 오래된 집과 가게는 여전히 사람들이 살고 있다. 20세기 공간에서 21세기의 삶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판교의 시계가 멈춘 것은 철도와 도로 때문이다. 시골 농촌이었던 판교(현암리)는 1930년 장항선 판교역이 문을 열면서 일약 서해안 서천지역의 중심지로 떠오른다.
일제는 이 일대 널찍한 평야지대의 농산물을 수탈하기 위해 판교역을 설치했고, 이를 계기로 정미소와 양곡창고가 들어서고 각종 가게와 양조장, 장터도 생겨났다. 35년에는 판교우편소, 36년에 면사무소, 42년에 판교경찰서, 55년에는 중학교가 문을 열었다. 우시장도 생겼는데 한때는 광천, 논산과 함께 충남의 3대 우시장으로 손꼽혔다. 소장수와 보부상들이 숙식을 해결하는 식당도 속속 문을 열었다. 편리한 교통 덕분에 인근을 아우르는 곡물 가공과 물류, 상업, 행정, 문화의 중심지로 발돋움한 것이다.
이러한 영화는 오래 가지 못했다. 2008년 장항선이 직선화되면서 동네를 지탱해온 판교역이 인근 저산리로 이전했다. 2009년 개통된 서천공주고속도로도 이 동네를 비켜나갔고, 2015년부터 부여-서천읍을 연결하는 국도 4호선도 판교리를 통과하지 않게 되었다. 교통 덕분에 성장한 도시가 교통에서 소외되면서 성장과 변화를 멈추게 된 것이다.
판교면 소재지의 이름은 현암(玄岩)이다. 마을 한쪽에 있는 검은 바위를 동네 이름으로 삼은 것이다. '판교(板橋)'라는 지명은 마을 어귀의 하천을 가로지르는 나무다리를 한자로 적은 것이다.
회색빛 동네 현암리는 T자형으로 시가지가 형성돼 있다. 판교파출소와 판교천에서 현재의 판교역까지 동서로 길게 도로가 있고, 너더리식당 삼거리에서 북쪽으로 2차선 길이 뻗어있다.
삼거리 인근의 너더리식당과 성심부동산, 동생춘(중국집) 등은 옛날식 단층 상가이다. 알미늄 새시에 넓은 유리창을 하고 벽돌을 쌓기도 했지만 건물의 골격은 옛모습 그대로이다. 생활편의 때문에 이리저리 조금씩 손을 보고 고친 것이다.
삼거리에서 조금 떨어진 오방앗간(삼화정미소)은 1936년에 지은 것으로 건물과 설비들이 잘 보전되어 있다. 당초에는 도로를 따라 길게 측면 두칸의 건물로 출발했으나 정미소 기계들이 들어오면서 안쪽으로 증축을 했다. 지금도 가동할 수 있을 정도로 설비가 잘 보전돼 있다.
(옛날 정미소, 주조장, 사진관, 극장 등 눈길)
장미사진관은 이 동네의 랜드마크 같은 2층집이다. 1932년에 완공된 건물로 일제 때 일본인이 쌀을 거래했다고 한다. 3면이 도로에 접한 중심건물로 특이하게도 2층은 한옥식으로 지어 올렸다. 처음에는 쌀집이었으나 해방 이후 주산학원, 사진관, 슈퍼, 예배당 등으로 활용되었다. 노후화됐지만 외관과 자태는 여전히 아름답고 빼어나다.
동일주조장과 동일정미소는 판교의 영화를 상징하는 건물이다. 주조장은 1932년 완공한 건물로 전체적으로는 나무를 사용하여 짓고 외관은 벽돌을 쌓아 장식했다. 처음에는 상가였으나 1950년부터 술을 제조했고, 2000년에 문을 닫았다고 한다. 판교의 전성시대를 간직한 산업시설로 충분한 가치가 있다.
바로 옆에는 동일정미소가 자리잡고 있다. 1970년부터 가동해오다가 2000년 주조장 폐업 때 함께 문을 닫았으나 각종 기계와 설비가 잘 보존돼 있다. 벼와 쌀을 보관했던 창고도 낡기는 했으나 원형에 가깝게 온전하게 보전돼 있다.
옛판교역 앞 3거리 인근의 일광상회도 일제 강점기인 1931년에 지어진 건물이다. 주민들에게 필요한 생필품을 파는 가게로 지금도 영업을 하고 있다. 간판도 예스럽고 알미늄 새시의 유리창에 '소곡주'라고 써 붙인 글씨도 정겹다. 안쪽에 주택을 먼저 짓고 판교지역의 상권이 발달하자 바깥쪽(도로쪽)에 상가를 증축한 상가주택이다.
바로 옆의 옛 중대본부는 1964년에 세워진 철근콘크리트 구조의 2층 슬래브 건물이다. 예비군 중대본부 사무실로 사용하다가 대한적십자사 판교봉사회에서 사용했고 지금은 판교우체국이 입주해있다. 아주 단순한 행정건물로 용도가 몇 차례 바뀌었지만 구조나 내부공간은 거의 변한 게 없다.
동네 주택가 쪽에 남아 있는 판교극장은 1961년에 지어진 건물이다. 처음에는 마을 집회시설로 지어졌으나 나중에 극장으로 활용됐고, 체육관, 당구장, 공장 등으로도 쓰였다. 1층 입구쪽에는 아직도 '저 하늘에도 슬픔이' '꼬마신랑' '별들의 고향' 같은 오래된 포스터가 붙어 있고, 매표소도 있다.
(거리 전체가 근대역사문화공간… 7개 건물은 문화재로)
근래 판교리의 '오래됨'과 '멈춤'이 새롭게 조명되고 있다. 빠르게 산업화, 도시화되면서 사라졌던 근대역사문화공간이 아직도 대한민국 한켠에 살아있음을 알아차린 것이다.
지난 2021년 10월 현암리 일원 2만 2695㎡가 '서천 판교 근대역사문화공간'이라는 이름으로 국가등록문화재에 이름을 올렸다. 오래된 집과 가게 골목이 있는 95필지가 소중한 문화유산으로 공인받은 것이다. 옛모습을 잘 간직한 동일주조장과 동일정미소, 장미사진관, 오방앗간(삼화정미소), 일광상회, 옛 중대본부, 판교극장 등 7개의 건축물은 개별적으로 국가등록문화재로 지정됐다.
현재 판교극장과 오방앗간, 촌닭집, 장미사진관에 대해 보수정비사업을 벌이고 있다. 서천군은 2028년까지 150억원을 7개 근대건축물 등에 대한 종합적인 재생사업을 벌여 근대역사문화공간으로 조성한다는 것이다.
오랜 세월 내버려두고 방치돼 사라질 위기에 놓였던 것들이 새롭게 가치를 인정받고 많은 사람들의 눈과 입에 오르내리는 게 신기하다. 동네 사람들의 삶은 예나 지금이나 변한 게 없는데도…
오래된 거리와 건물들을 잘 보전하고 활용하여 지역경제도 활성화되길 기대한다.
Copyright © 대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금산서 한국타이어 통근버스 빗길사고…22명 다쳐 - 대전일보
- '징역형 집유' 이재명 "항소할 것…1심 판결 수긍하기 어려워" - 대전일보
- 尹 지지율 다시 20%…대국민 담화 뒤 TK·70대서 회복 - 대전일보
- 이재명 1심 당선무효형…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 - 대전일보
- 추경호 "사법부, 이재명의 비겁한 거짓말에 정의 바로 세우길" - 대전일보
- [뉴스 즉설]'오뚝이' 이재명 피말리는 순간, 무죄 vs 80만원 vs 100만원? - 대전일보
- 충남 아산서 럼피스킨 추가 발생…차단 총력 - 대전일보
- 명태균·김영선 결국 구속됐다… 법원 "증거 인멸의 우려" - 대전일보
- 尹, APEC 참석 위해 페루 도착…한미일 정상회담도 계획 - 대전일보
- 한동훈, 이재명 1심 유죄에 "사법부 결정 존중하고 경의 표해" - 대전일보